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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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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방에 훅~ 간’ 박재범 우리 안의 이중성을 까발리다

교포 아이돌의 ‘서툰 한글’에 열광하며 ‘서툰 애국심’엔 야유…
한국 사회의 ‘역린’ 국가주의의 힘과 문제점 드러내
등록 2009-09-17 14:27 수정 2020-05-03 04:25
박재범

박재범

기사는 기사일 뿐, 너무 심각해지지 말자.

작금의 사태를 둘러싼 백가쟁명에 대해 본인의 소견을 밝히면 이렇다. 엄마에게 등 떠밀려 한국에 왔던 미국 출신 이주노동자 아이돌 스타가 보이지 않는 손에 등 떠밀려 한국을 떠났다. ‘이주노동자 아이돌’이라니 대한민국의 위상을 만방에 드높일 형용모순이 아닌가. 아이돌마저 노동자로 만드는 조국의 위대한 경제력! 그렇게 조국은 ‘코리안 아메리칸’이 ‘코리안드림’을 꿈꾸는 새 시대를 열었다.

번역된 문장에 따르면, 시애틀의 비보이는 ‘(미쿡에서 교포) 친구들끼리 한국을 비웃다가 결국 성공하러 한국으로 왔다.’ 더구나 그가 사적인 공간에서 밝혔듯 가족의 빚을 갚아야 하기에, 방송에 나와서 말했듯 시애틀의 엄마에게 쇼핑을 시켜주고 싶어서, 스물두 살의 청년은 돈을 벌고 싶었다. 그의 이름은 2PM의 ‘리드자 바재범’, 교정을 하면 ‘리더 박재범’. ‘짐승 아이돌’의 멤버 중에서도 대세로 불렸던 청년은 9월8일 저녁 6시30분 비행기로 고향 시애틀로 떠났다.

한쪽선 “자살 청원” 다른 쪽선 “복귀 청원”

“한 방에 훅 간다.” 분장실의 강 선생님 말씀이 틀린 것이 없다. 그분이 일요일 밤이면 밤마다 경고하지 않았던가. 평온한 토요일, 9월5일 아침에 그 기사가 뜨기 전까지 코리안드림은 꿈이 아니었다. 오빠들에게 소녀시대가 있다면, 언니들에겐 2PM이 있었다. 대세는 기사 제목 한 방에 훅 갔다. “2PM 재범 ‘한국 역겨워… 美 가고 싶다’.” 역시나 민족의 정기를 수호하는 민족언론 동아닷컴의 특종이었다. ‘한국은 역겹다’(Korea is gay), ‘다시 돌아가고 싶다’(I wanna comeback). 이렇게 이른바 네티즌 수사대의 비밀요원이 인터넷을 ‘털어서’ 찾아낸 영어 슬랭이 기사에 인용돼 있었다. 여성 혐오 발언은 잊혀져도, 표절 논란은 용서돼도, 오직 하나만은 건드려선 안 된다는 대한민국의 ‘역린’(용의 턱 아래에 거슬러 난 비늘로 이를 건드리면 용이 크게 노한다는 전설에서 비롯된 말)을 건드린 것이다. 금칙어 국가다.

박재범의 소속사 JYP엔터테인먼트 건물 벽에 포스트잇을 이용한 시위를 하고 있는 팬들. 사진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박재범의 소속사 JYP엔터테인먼트 건물 벽에 포스트잇을 이용한 시위를 하고 있는 팬들. 사진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어언 4년 전, 연습생 시절에 ‘미쿡’ 친구들과 사적인 인터넷 공간인 ‘마이스페이스’에서 주고받았다는 정황은 정상참작의 이유가 되지 못했다. 분연히 떨쳐일어선 애국자는 댓글로 외쳤다. “제2의 스티브 유, 양키 고 홈!” 스티브 유는 유승준의 영어 이름. 아아, 이렇게 21세기 애국의 길은 인터넷으로 통하고, 게임은 끝났다. 이제 “양키 고 홈”의 외침은 미군이 아니라 연예인을 겨냥한다. 아, 재범이가 훈민정음만 완벽하게 떼어서 선생님의 충고만 알아들었어도!

역시나 다이내믹 코리아! 토요일 기사에 일요일·월요일 확산에 확산. 재범이의 어떤 팬은 마치 김옥균의 삼일천하를 보는 것 같았다고 돌이켰다. 팬카페에 올린 재범이의 사과문은 허사였다. 심지어 다음 아고라엔 자살 청원도 올라왔다. 재범이의 퇴출을 주장하는 이들은 “상도의에 어긋난다”고 사자구호를 외쳤다. 장사치 미국인이 한국인을 봉으로 보았다! 손님을 이런 식으로 대하나? 역시나 이주노동자의 ‘머스트 해브 아이템’, 애국심. 그러니까 소비자로서 정당하게 분노했을 뿐이란 것이다. 민족주의가 아니라 도덕주의가 핵심이란 주장, 근거 없지 않다. 나중엔 재범이가 한국을 좋아하게 되었단 증거들이 나왔지만, 대세를 돌리진 못했다.

‘짐승돌의 리드자’, 역시나 남자거나 마초였다. 2PM의 동생들에게 피해를 주기 싫어서, 이대론 도저히 무대에 다시 서기가 어렵다며 그분은 홀연히 떠났다. 관례상 자숙의 시간을 가지고 다시 돌아올 것으로 짐작한 이들의 뒤통수를 치는 반전이었다. 9월8일 화요일 오후 6시, 공항은 이별의 눈물로 젖었다. 그는 떠나도 논란은 끝나지 않았다. 애국주의로 비판하면 ‘매국노 드립치지 마라’(매국노 발언 하지 마라), 공인도 아닌 시절에 한 얘기라고 하면 ‘빠순이 실드 치지 마라’(빠순이면서 위장하지 마라)는 비아냥이 돌아왔다.

‘짐승 아이돌’로 불리며 인기를 얻었던 2PM. 박재범의 복근은 이들의 남성성을 상징하는 핵심이었다. 사진 한겨레 자료

‘짐승 아이돌’로 불리며 인기를 얻었던 2PM. 박재범의 복근은 이들의 남성성을 상징하는 핵심이었다. 사진 한겨레 자료

9월10일, 사장님이 마침내 장문의 편지를 국민에게 보냈다. 재범이의 소속사 JYP엔터테인먼트의 박진영씨는 “재범이는 참 불량스럽고 삐딱한 아이였다”며 “무엇보다 음악을 만나면서 그가 변한 것”이라고 썼다. 그러나 팬들은 “사장님 나빠요”를 멈추지 않았다. 재범이를 버렸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래서 JYP 불매운동에 나섰고, 돌아오라 청원 서명을 시작했다.

‘더 이상 하나가 아닌 대한민국’을 확인하는 계기

이렇게 재범이를 통해서 드러난 대한민국은 하나가 아니다. 교포 출신 아이돌이 한글을 틀리면, 그것이 오히려 매력이 되었다. 그러나 같은 정체성의 이면인 ‘아메리칸 마인드’가 드러나자 갑자기 ‘팽’을 당했다. 겉은 한국인이지만 속은 미국인이었던 교포 청년. 이른바 ‘바나나’로 불린다는 정체성에 열광하다 야유했다. 그렇게 박재범 사태는 한국 사회가 가진 비동시성의 동시성, 매혹과 야유의 두 얼굴을 비추는 거울이 되었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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