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밴드의 공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 록스타들이 보여주는 화려하면서도 때때로 기괴한 무대 매너다. 록음악이 많이 부드러워진 요즘이야 좀 덜하지만, 오래전부터 록스타들은 무대 위에서 온갖 과격하고 음란한 언사를 늘어놓으며 비싼 기타와 앰프를 부수곤 했다. 건스앤로지스의 공연 실황 비디오를 밤새도록 돌려보던 고교 시절, 나 역시 ‘언제쯤 저런 걸 해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간절했지만 싸구려 합판 기타 하나도 신주 모시듯 하던 처지라 기타를 부순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어떤 식으로든 모범생처럼 보이지 않으면서 무대에서 강렬한 존재감을 보여줘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감에, 열여덟 살의 나는 한동안 화장실 거울을 보며 ‘기타 액션’을 연습했다. 다리를 어느 정도 각도로 벌릴 것인지, 고개를 약간 숙이고 눈을 치켜뜰지 아니면 거만하게 턱을 치켜들 것인지 등에 대해 정말이지 진지하게 연구하곤 했다.
그렇다. 밴드를 하려면 음악과는 별개로 무대를 어떻게 장악(?)할 것인지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스쿨밴드를 할 때도 그랬지만, 모르는 사람들이 오는 클럽에서 공연을 하게 되면서부터는 더 그랬다. 말랑말랑한 음악이어서 거친 액션까지는 필요 없었지만, ‘사람들 앞에서 무슨 말을 할 것인가’라는 문제는 사람 많은 데서 말하는 걸 내켜하지 않는 내겐 그야말로 고역이었다. 고민 끝에 ‘우리가 코미디언도 아닌데, 억지로 재밌는 얘기를 준비할 것까지는 없다’고 생각했고, 그냥 그때그때 생각나는 말을 주절주절 늘어놓는 게 차라리 자연스럽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관객은 내 ‘토크’에 그리 쉽게 적응하지는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데이지데일’입니다. 인터넷에서 검색하시면 여성의류 쇼핑몰이 나옵니다.”
“….”
“(Y를 소개하며) 이 친구는 이름이 윤×윤이에요. 거꾸로 해도 윤×윤이죠? 허허!”
“…(뒤늦게 어색한 웃음).”
“방금 연주한 곡은 이라는 제목의 노래예요. 눈동자에 축배를 든다니… 무슨 얘길까요?”
“….”
대강 이런 식이었다. 사실 난 관객이 어색해하는 게 재미있었는데, 멤버들은 어떻게 그렇게 분위기를 썰렁하게 만드냐며 난리였고, 우리는 두어 번 더 공연을 해보고 나서 ‘앞으로는 그냥 음악으로 승부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그 뒤로는… 그냥 간단히 노래 제목만 말하고 공연 내내 각자 자기 신발만 보고 연주했다(실제 포스트록의 대표 장르 중 하나인 ‘슈게이즈’는 공연자들이 공연하는 동안 신발만 내려다보며 연주하는 것에서 유래한 명칭이기도 하다).
이런 콘셉트에 대한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친구들도, 클럽 사장님도 “그래, 너흰 그냥 말 많이 하지 말고 그렇게 고개 푹 숙이고 하는게 차라리 더 있어 보인다”고 했고 우리 스스로도 마음이 훨씬 편했다. 내 느낌이지만 관객도 ‘쟤들은 원래 저런 애들인가 보다’라는 생각에 오히려 더 편한 인상을 받았던 것 같고. 가끔 온갖 아기자기한 소품을 동원해 즐거운 쇼를 펼치는 밴드를 보고 부러운 마음이 들 때도 있었지만, 숫기 없는 우리가 할 만한 건 분명 아니었다.
마감에 쫓겨 로커의 무대 매너에 대한 잡설을 늘어놓다가 텔레비전을 켜니 얼마 전 허망하게 세상을 뜬 마이클 잭슨의 추모 공연이 방영되고 있다. 아… 무대 매너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이 ‘팝의 황제’는 정말이지 자신의 노래 (Gone Too Soon)처럼 너무도 일찍 가버렸다. 마이클 아저씨, 10년 전이네요 벌써. 1999년 6월 서울 강남역의 대형 음반 매장 앞에서 당신의 얼굴을 보고 가슴이 얼마나 뛰었는지…. 그것이 우리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니 슬프기 그지없습니다. 먼 곳에서나마 추모하는 마음으로 (Heal the World) 한 곡 통기타로 뽑고 자겠습니다. 내일 또 출근해야 해서 이만. 안녕 마이클.
정민영 기자 한겨레 사회교육팀 min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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