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면 내가 아직도 기타를 가지고 논다는 사실에 ‘너 아직도 음악 안 그만뒀냐’ ‘이제 포기할 때도 되지 않았니’ 따위의 반응을 보이는 부류가 있다. 그런 얘기야 그동안 많이 들어서 이젠 무감각해졌지만, ‘그렇게 오래 했으니 기타 실력이 이젠 프로급이겠네’ ‘나중에 먹고살 일 없으면 기타 치면 되겠구나’ 같은 소리를 들을 땐 당혹스럽다. 중학교 때부터니 기타를 끼고 지낸 지가 10년을 훌쩍 넘겼건만, 아직도 기타 실력은 고만고만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오랫동안 밴드를 함께 했던 Y와 나는 우리의 연주가 썩 훌륭하지는 않다는 사실을 그다지 심각한 결격 사유로 여기지는 않았다. 연주를 잘하는 것보다는 아름다운 노래를 만드는 게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노래가 좋으면 연주가 모자라더라도 사람들이 좋아할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시종일관 연습을 게을리했고 그 결과 경력에 비해 형편없는 연주 실력을 갖게 됐다. 이번엔 그런 얘길 좀 해보려고 한다.
출중한 연주보다 좋은 노래로 승부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건 스쿨밴드 ‘슬랩대시’를 하면서 줄곧 다른 밴드의 곡을 연주하는 일(보통 ‘카피한다’고 표현한다)에 싫증이 날 대로 났기 때문이었다. 자작곡이 없는 대부분의 아마추어 밴드들이 그렇듯, 슬랩대시 역시 유명 록밴드들의 노래를 카피해 연주하곤 했는데, 건스앤로지스와 메탈리카는 당시 우리가 주력으로 카피하던 밴드들이었다(물론 예나 지금이나 고딩밴드 레퍼토리의 고전인 는 빠지는 법이 없다). 남들이 다 아는 노래를 하다 보니 어떻게든 원곡과 똑같이 연주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고 우리는 그들의 라이브 공연 실황 비디오까지 구해 보면서 ‘진짜 같은 짝퉁’이 되려 갖은 애를 썼다. 메탈리카의 같은 노래는 곡 자체도 긴데다 속도까지 빨라 박자를 놓치기 일쑤였는데, 나는 팔 근력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에 생전 안 하던 팔굽혀펴기까지 했다(이 방법은 분명 효과 만점이었다. 모래주머니를 차고 달리다가 맨몸으로 뛰는 것처럼).
열심히 카피해 연주하는 것도 꽤나 즐거운 일이었지만, 분명한 건 아무리 연습해도 결코 우리가 메탈리카가 될 순 없다는 사실이었다. 너훈아가 아무리 노래를 잘해도 절대 나훈아는 될 수 없듯, 팔굽혀펴기로 팔힘을 길러봐야 우린 그들의 곡을 그럴듯하게 연주해내는 복제품 이상은 아니라는 자괴감이 어느 순간부터 들기 시작했다. 다른 멤버들은 ‘새삼스럽게 당연한 걸 가지고 무슨 고민이냐’는 반응이었지만, 나는 이제 자작곡을 만들어 연주하는 밴드를 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런 고민을 하던 즈음 친구의 소개로 만난 Y 역시 기타를 썩 잘 치지는 못했지만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고, 우리는 곧바로 ‘토마토’를 결성했다. Y와 나는 연주력 따위는 신경쓰지 않기로 했고 오로지 품격 높은 사랑 노래를 만드는 데만 골몰했다.
하지만 좋은 노래를 만드는 건 어디 또 그렇게 쉽나. 21세기 러브송을 써내겠다는 굳은 결심으로 한강 둔치에서, 비디오방에서, 화장실에서 음악적 영감을 쥐어짜내가며 이런저런 멜로디와 가사를 썼지만, 동시대인들을 감동시킬 만한 명곡을 만든다는 건 그렇게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후렴 부분이 좋으면 도입부가 진부했고, 도입부가 참신하면 후렴이 밋밋했다. 하지만 Y와 나는 좌절하지 않고 서로의 곡을 치켜세웠고, 등 그런대로 괜찮게 만들어진 몇 곡을 골라 서울 홍익대 앞 클럽 공연을 시작했다. 우리 스스로는 그 정도면 괜찮은 노래들이라고 생각했지만, 토마토가 유명해지지 않은 것으로 봐선 관객의 의견은 좀 달랐던 것 같다.
문득 MP3 플레이어에 담아둔 예전 노래들을 찾아보았다. Y가 만든 노래 가 이어폰을 타고 흐른다. ‘막 내린 커피향이 다 달아나기 전에, 어서 나에게 말해보아요. 나를 좋아한다고….’ 아, 좋다. 대체 이 노래는 왜 못 뜬 거지?
정민영 기자 한겨레 사회교육팀 min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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