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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가요제의 추억

대학 시절 친구 2명과 합숙까지 하며 준비해 나간 예선…
1절 마친 뒤 들은 말 “네, 잘 들었어요”
등록 2009-06-18 16:09 수정 2020-05-03 04:25
2000년 <강변가요제>

2000년 <강변가요제>

요샌 그렇지도 않지만, 홍익대 앞 인디신이 없던 시절의 대학가요제나 강변가요제는 무명 뮤지션이 음반을 내고 데뷔할 수 있는 중요한 통로였다. 좀 과장된 얘기겠지만 대학가요제에서 나가려고 대학에 간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내가 대학에 들어갔을 땐 이미 더 이상 가요제 수상이 데뷔의 등용문이 되는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나는 그래도 ‘한 번쯤 가요제에 나가보는 것도 재밌겠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하고 있었다. 나간다면 대상은 아니어도 금상 정도는 충분히 받지 않을까, 뭐 그러면서.

그러던 어느 날 늦은 저녁, 평소 알고 지내던 철학과 친구 A와 B가 찾아왔다. 집 앞 놀이터에서 만난 이들은 대뜸 내게 “강변가요제에 나가보자”는 제안을 해왔다. 용돈이 넉넉해 고가의 음악장비를 많이 가지고 있던 A는 “넌 어떻게 그렇게 뭉툭한 손가락으로 건반을 부드럽게 치냐” “네가 같이 한다면 우린 분명히 대상을 받을 거고 그러면 떼돈 벌어 외제차 타고 다니면서 음악을 할 수 있다” 등 온갖 감언이설을 늘어놓았다. 특별히 할 일도 없던 나는 별 고민 없이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그렇게 일렉트로니카 밴드 ‘트리니티’(삼위일체)에 키보디스트로 합류했다. 다음날부터 A의 방에서 합숙이 시작됐다.

출전곡은 A가 만들어둔 이라는 노래로 정했다. 가사는 ‘당신 이제 남자친구와 헤어졌으니 이제 제발 나한테 좀 와 달라’고 징징대는 다소 비굴한 내용이었다. 멜로디와 코드 진행이 좀 진부했지만, 그런대로 신나는 분위기여서 가요제 출전용으로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편곡이었는데, 곡이 평범한 만큼 최대한 ‘깔쌈’한 사운드를 뽑아내는 것이 관건이었다. 우리는 밤마다 보쌈과 탕수육을 시켜먹으면서 편곡 작업에 골몰했고, 빵빵한 사운드를 위해 나는 건반 두 대를 쌓아놓고 왼손으로 한 대, 오른손으로 한 대를 연주하기로 했다. 리듬감은 좀 부족해도 기타 속주에 능했던 B는 가히 서커스에 가까운 기타 솔로를 만들어 손에 피가 나도록 연습했다. 드디어 1차 예선 날이 밝았다. 그날 아침의 심리학개론 중간고사를 포기하다시피 한 나는 승합차에 온갖 악기를 싣고 멤버들과 여의도 방송사 건물로 향했다.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다 들어간 예심장에는 평소 존경해 마지않던 배철수 아저씨와 봄여름가을겨울의 김종진, 또 요즘 예능 프로그램에 자주 나오는 부활의 기타리스트 김태원 등 쟁쟁한 록스타들이 심사위원으로 앉아 있었다. 김종진 아저씨는 “이 친구들은 비싼 악기가 참 많네”라고 했고, 김태원 아저씨는 끝까지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요란한 전주에 이어 A의 열창이 시작됐고, 나는 얕보이지 않겠다는 마음에 딥 퍼플의 존 로드처럼 큰 몸짓으로 건반을 연주했다. 1절이 무사히 끝나고 야심차게 준비했던 B의 기타 솔로가 시작되는 순간 “네, 잘 들었어요”라는 말이 들렸다. B는 아무것도 못해보고 나왔다며 원통해했지만 A와 나는 ‘이 정도면 보여줄 건 대강 보여줬다’는 마음에 어느 정도 만족스러웠다. 1차 통과는 별 무리가 없겠거니 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며칠 뒤 발표된 1차 예선 통과자 명단에서 트리니티의 이름을 볼 수는 없었다. A는 “가요제에 나가기엔 우리 음악이 지나치게 앞서 있었다”는 말로 B와 나를 다독였지만,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대체 본선엔 어떤 밴드가 나갔을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괜히 속만 상할 것 같아 텔레비전도 보지 않았다. 이후에도 A·B와 몇 번 음악 작업을 같이 했지만, 그들은 내게 다시는 ‘가요제에 나가자’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나중에 알고 보니 둘이 미련을 못 버리고 대학가요제에 나갔다가 또 떨어졌다고 한다).

얼마 전 아주 오랜만에 A를 만날 일이 있었다. 평범한 직장인 아저씨가 된 A는 아직 록스타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예전에 가지고 있던 장비를 많이 처분한 것 같긴 했지만 방 한구석에는 여전히 기타와 건반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음악 얘기, 악기 얘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떠들다 보니 어느새 자정이 훌쩍 넘었다. 다음날 출근 걱정에 A의 집을 나서며 문득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때 가요제나 몇 번 더 나가볼걸 그랬나.

정민영 기자 한겨레 사회교육팀 min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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