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작전 짜는 인디 레이블


그저 음반을 만든다는 것에 만족하던 일종의 공동체에서 전략적이고 기민한 집단으로
등록 2009-05-01 14:29 수정 2020-05-03 04:25

장기하 때문인지 지겹게 나오고 있는 얘기긴 하지만, 그래도 최근 새삼스런 주목을 받고 있는 인디음악 얘길 해야겠다. 예전 같았으면 홍대 앞 라이브 클럽에 가야 볼 수 있던 밴드들이 심심찮게 공중파 음악 프로그램에 얼굴을 내밀고 있고, ‘장기하와 얼굴들’의 음반 판매량은 슈퍼주니어에게는 밀릴지언정, 한 달 넘게 5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영원히 텔레비전에서는 볼 수 없을 것 같던 보석 같은 싱어송라이터 이장혁이 공중파 음악 프로그램의 주인공으로 출연하는 사건까지 있었다.

‘붕가붕가레코드’가 공감을 얻는 것은 응집력 있는 기획 덕분이다. 붕가붕가레코드 ‘소속 가수’ 장기하와 얼굴들의 공연 모습. 사진 <한겨레21> 윤운식 기자

‘붕가붕가레코드’가 공감을 얻는 것은 응집력 있는 기획 덕분이다. 붕가붕가레코드 ‘소속 가수’ 장기하와 얼굴들의 공연 모습. 사진 <한겨레21> 윤운식 기자

하지만 예전에도 인디신에 참신하고 좋은 음악은 차고 넘쳤다. 장기하나 ‘브로콜리 너마저’의 음악에 독특하고 새로운 구석이 있는 건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던 음악을 만들어냈다고 보긴 어려운 것이다. 지금 같은 조건에서라면 이들 못지않은 대중적 성공을 거뒀겠다 싶은 비운의 밴드들도 숱하다. 인디음악이 전보다 다양하고 풍성해진 것도 사실이지만, 몇 해 전부터 눈에 띄는 변화는 예전과 다르게 인디 레이블들이 나름의 전략을 가지고 움직인다는 점이다. 대형 기획사에서 하는 만큼은 아니지만 음악을 생산·유통하는 과정에 어느 정도의 작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게 된 것이 인디신에 꽤나 큰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 예전엔 어땠기에? 돌이켜 생각해보면, 2000년대 초반까지 인디신은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다. 이때까지 인디신은 자본의 논리로부터 벗어나 음악을 생산해낸다는 사실 자체를 중요한 존립 기반으로 삼던 측면이 있었고, 자연히 음반 제작도 조금은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는 일이 많았다. 우리 밴드가 속해 있던 인디 레이블도 비슷했는데(이 회사 금방 없어졌다) 아무것도 모르던 내 눈에도 우리 사장님은 그저 음반을 만든다는 사실에 만족할 뿐, 머릿속에 손익계산서 따위는 없는 것처럼 보였다. 도저히 감당이 안 되는 비싼 스튜디오를 빌려 녹음을 했지만 왜 거기서 녹음했는지 모를 결과가 나왔을 뿐이고, 할 건 해야 한다며 도저히 방송으로 내보낼 수도 없는 조악한 뮤직비디오까지 만들었다. 음반 속지 사진은 심지어 서울 청담동의 고급 스튜디오에서 화장까지 해가며 찍었다. 그런 상황에서 음반 전체를 관통하는 일관된 콘셉트 같은 걸 생각하는 건 정말이지 어려운 일이었다(물론 그렇다고 내가 회사를 잘못 만나 빛을 못 봤다는 얘기를 하는 건 절대 아니다). 그때는 다른 회사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초기 인디 레이블들은 사업체라기보다는 일종의 공동체나 사단에 가까웠고 그만큼 상업적인 고려로부터 거리를 둔 측면이 있었다.

그에 비하면 요즘 인디 레이블들의 움직임은 꽤나 기민해졌다. 음반의 타깃과 홍보 방식, 제작비 등 음반 제작 과정 전반에 대한 전략적인 접근이 이뤄지면서, 나름대로 잘 포장된 음악들이 대중에게 전달되기 시작했다. 고양이나 강아지를 소재로 인디 뮤지션들이 제각기 만들어온 음악을 모아 음반을 내거나, 남녀 뮤지션들을 한 팀씩 짝지워 남녀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문제를 주제로 한 곡씩 공동 작업을 해 음반을 만드는 등 눈에 띄게 참신한 기획들도 많이 이뤄졌고 대중도 이에 적극적으로 화답했다. 저예산도 아닌 무예산에 가까운 방식으로 음반을 제작해온 붕가붕가레코드의 ‘지속 가능한 딴따라질’이 공감을 얻을 수 있었던 것도 가능한 범위 안에서 최대한 효율적으로 음악을 만들어온 응집력 있는 기획 덕분이었다. 이런 움직임이 인디와 주류 음악 사이의 경계를 상당히 허물었고, 그러면서 인디음악의 독특함을 새롭게 발견한 사람들도 많이 늘어난 것 같다.

물론 인디신의 상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들어줄 사람이 없으면 음악을 만들어 팔 이유도 없는 거고, 대부분의 인디 뮤지션들이 음악만 해서는 도저히 생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인디가 지금보다 더 영리하게 대중을 끌어들일 필요도 있다. 게다가 상업화를 우려하기에 인디신은, 주류 음악이 도저히 담아내지 못하는 독특한 에너지를 여전히 충분히 가지고 있다. 같은 음반 제목. 인디가 아니라면 어디서 가능하겠나.

정민영 기자 한겨레 사회교육팀 minyoung@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