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9년 프랑스혁명 이후, 그러니까 로베스피에르와 에드먼드 버크의 ‘좌우 정립’ 이후, 이념 투쟁의 전장을 날아다니는 포탄은 항상 ‘자유’였다. 저마다 자유를 쏘아올리며 좌파와 우파는 각자의 경계를 넓혔다. 혁명을 추동하는 힘은 억압에 맞서는 자유의 갈망이었다. 혁명을 반대하는 힘도 자유의 파탄에 대한 우려에서 시작됐다. 사회주의는 자유를 옭아매는 계급착취 종말의 선언이었고, 신자유주의는 자유를 약속한 시장방임주의의 유토피아였다.
이제 세계 경제체제가 몸서리를 치며 시장자유의 환상에서 벗어나려는 2009년, 세계 좌파의 화두는 다시 자유다. 신자유주의를 통해 우파가 선점했던 자유의 문제를 좌파의 상상력으로 되찾아오려는 노력이 좌우 이념 투쟁의 새로운 전선이다.
‘칼 폴라니’ 파리와 서울서 동시 조명
한국판 4월호는 ‘자유주의적 사회주의’ 또는 ‘사회적 자유주의’의 길을 모색한다. 프랑스 작가 에블린 피예에는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의 경계를 끈질기게 탐색했다. 그는 좌파의 자유주의 재구성을 위해 시장을 “지배 수단이 아니라 자유의 도구”로, 나아가 “자기비판과 자기완성의 조건”으로 승인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시장을 부인하는 전통적 사회주의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자는 뉘앙스가 강하다. 그는 결론을 서두르지는 않는데, “사회적 자유주의를 통해 줄기차게 자본주의 현대화를 추진하는 게 나은지, 아니면 과거로 회귀하는 모습으로 영리하게 변장하는 것이 나은지 결정해야 할 시점”이라고 글을 맺는다.
행여 이를 시장자본주의를 승인하는 ‘개량주의’라고 매도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세르주 알리미 발행인은 한국판 발간을 기념해 쓴 글에서 “새로운 유토피아의 제시가 시급해 보인다”고 했다. 그가 기대는 방향타는 “사회적 관계를 회복하는 상호부조 시스템의 유토피아”다. 시장·국가·상호부조의 공존을 주창했던 칼 폴라니에 대한 그의 주목은 이와 관련이 깊다. 시장의 절멸이 아니라 ‘시장이 아닌 것의 창조’를 향해 세르주 알리미는 펜 끝을 들이밀었다.
위키피디아·구글 특집 관심 끌어폴라니 특집 기사는 한국판에만 실렸는데, 특히 국가권력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 개인의 자유를 추구해온 일련의 풀뿌리 운동(생협·귀농공동체 등)을 노동·농민 등 조직운동과 융합시킬 가능성을 폴라니에게서 찾고 있다. 폴라니야말로 계급·조직·국가를 내세우기에 앞서 ‘인간의 진정한 자유’에 주목한 인물이다.
프랑스 철학자인 앙드레 고르는 ‘자유 시간’이 진정한 해방의 원천이라고 짚었다. 그의 관심 역시 국가권력의 재구조화에 있지 않다. “시간의 해방은 (일자리 창출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존재, 삶의 틀, 도시 생활, 그리고 욕망 총족의 방식, 사회적 협동 방법을 증대시킨다는 데 의미를 두어야 한다”고 썼다. 국가 차원의 시야에만 머물지 말고 ‘개인의 자유 증대’에 주목하라는 주문이다.
일련의 글을 엮은 표지 기사의 주제는 ‘새로운 유토피아를 찾아서’다. 로베스피에르로부터 진화해온 프랑스 좌파는 지금 자유의 문제를 품어안고 좌파적 유토피아의 재구성을 시도하고 있다. 지금, 한국의 좌파는 자유에 대해 뭐라 말할 수 있을까?
이 밖에도 △위키피디아·구글의 의미를 짚은 특집 기획 △‘통화 살포’의 해법이 경제위기의 대안인지를 살핀 쟁점 진단 △일본·이스라엘·그루지야·마다가스카르·한국 등을 아우르는 지구촌 현안 등의 기사가 한국판 4월호에 실렸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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