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광복절, 이명박 대통령은 ‘저탄소 녹색성장’ 보따리를 풀었습니다. 2020년까지 3천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녹색 기술 시장을 선도하고, 그린홈·그린카를 추진하겠다는 별난 내용도 들어 있습니다. 가깝게는 2012년(자신의 임기 마지막 해)까지 기후친화 산업을 신성장 동력으로 육성해 현재의 에너지-경제-기후-생태계의 악순환을 선순환 구조로 바꾸겠다는 포부도 드러냈습니다. 과연 몇 년 만에 우리 삶의 근본 조건을 통째로 뒤집을 수 있을까 의문이 드는 대목입니다. 이상헌 교수(한신대)의 비판이 또렷합니다. “기후변화에 대한 기술 지향적인 해결책들을 우선순위도 불분명한 채로 한꺼번에, 그것도 사회적 논의 과정 없이 쏟아냈으며, 이를 실제로 뒷받침할 수 있는 재정적 계획도 불투명”하다는 것이죠(계간 2008년 겨울호).
(난장이 펴냄)의 지은이도 태평양 건너에서 한국 정부의 ‘녹색 거품’을 비판할 정도입니다. 미국 캔자스주 토지연구소에서 일하는 스탠 콕스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만일 그 계획이 성공한다면, 높아진 효율성은 경제 확장에 기여해서 결국 더 많은 에너지 소비나 더 많은 탄소 배출로 이어진다”고 말합니다. 이른바 ‘제본스 패러독스’입니다. “구시대적이고 무모한 산업 확장을 녹색 페인트와 첨단 기술로 포장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말이지요. 지은이가 보기에, 탄소 배출로 인한 위험성을 새로운 산업 발전의 계기로 삼아 위기를 기회로 둔갑시키겠다는 태도는 얼토당토않은 일입니다. 그것은 19세기 후반 미국에 휘몰아쳤던 ‘골드러시’에 견줄 만한 ‘카본러시’(carbon rush)라는 거죠.
혹시 과민성대장증후군을 앓고 계신가요? 그건 ‘가상의 앓음’일 수도 있습니다. 질병의 외연을 넓혀서 병원과 약국을 더 자주 방문케 하는 ‘음모’에 휘말린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인도 파탄체루에는 의약품 원료 공장이 밀집해 있는데 거기선 폐수를 ‘악마의 카푸치노’라고 부른답니다. 항생제, 고혈압 치료제, 궤양 치료제, 알레르기 치료제 등 11가지 의약품이 농축돼 있어서래요. 미국의 경우, 의료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40년 사이 5%에서 16%로 늘었답니다. 1인당 의료비 지출액은 143달러에서 5700달러로 치솟았습니다. 1999~2004년 제약회사의 평균 영업 이윤율이 17%라고 합니다. ‘거대 의료산업 → 거대 경제 → 자연의 죽음 → 열악해지는 공중의 위생 상태 → 거대 의료산업’이라는 순환 도식이 억지는 아닌 셈입니다. 여기엔 질병판매학이라는 ‘신규 학문’을 태동시킬 정도로 막강한 제약회사의 광고 전략이 주효한 탓이 크답니다. “그들은 병원을 짓고, 우리는 병원을 채운다.”
인간 건강보다 이윤율 제고를 사훈으로 삼는 병원. 환자의 몸에 대한 정보는 여전히 불평등해서, 의사 앞에선 제아무리 유식한 이라도 흔히 꿀 먹은 벙어리 되는 현실. 그러므로 과잉 진료, 과잉 처방이 다반사인데다 의약품들 대부분이 ‘제3세계’ 값싼 노동력 착취와 환경오염을 거쳐 생산되는 상황을 지은이는 파헤칩니다. 의료 분야만 이러할까요? 그야말로 ‘다이어트 공화국’이라고 할 만한 우리나라를 생각해보면, 황제 다이어트라 불리는 앳킨스 다이어트가 지구 환경에 얼마나 치명적인지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2006년 조사를 보면, 앳킨스 다이어트를 했을 때 주당 식료품 구매 비용이 85%나 상승한다고 하네요. 탄수화물을 빼고 단백질·지방만을 섭취하는 방식이니까요. 콩과 같은 식물성 단백질보다 닭고기·쇠고기를 생산하는 비용이 8배나 많기 때문입니다. 가령 전세계 과체중 인구가 10억 명이라고 가정하면, 가축의 먹이가 될 옥수수·콩 등의 작물을 재배하기 위해 남한 면적의 10배가 넘는 경작지가 추가로 필요합니다.
유기농 포장 뜯어내면 ‘귀족 마케팅’유기농 딱지를 붙인다 해서 문제가 해결될 수도 없다는 게 지은이의 논지입니다. 지은이가 보기에 유기농 역시 포장을 뜯어내면 ‘귀족 마케팅’에 불과합니다. 녹차를 예로 들어볼까요? 녹차가 한때 커피의 아성을 무너뜨릴 것처럼 보였던 건 그것이 지닌 탁월한 면역 강화 기능 때문입니다. 이른바 항산화성 물질을 다량으로 함유한 식품 1위에 등극한 것이지요. 유기농 차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인도에도 대규모 플랜테이션이 형성됐답니다. 문제는 눈부신 차밭 경관과 달리 거기서 일하는 이들이 직면한 위험이 영양실조라는 점입니다. 그들 가운데 41%의 체질량지수가 18.5 이하인데, 성인의 체질량지수가 그 정도라면 40%가량이 굶어죽을 수준이지요. 유기농 열풍이 대량 생산을 부르고 그것이 환경을 파괴하며 값싼 노동에 동원된 이들이 굶주린다는 것, 녹차보다 쓴 풍경입니다. 여기에다 석탄·석유를 넘어 천연가스마저 고갈시키는 ‘산업의 아귀다툼’을 최종적으로 감당하는 것은 지구촌 서민이라는 사실에 이르면 그저 아연할밖에요. 이 책의 원제가 (Sick Planet)인 이유입니다.
그러면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는 없는 걸까요? “돌이킬 가능성은 전무하다.” 지은이는 카를 마르크스의 이나 제오르제스쿠-뢰겐의 에 기대보지만 뾰족한 수를 내지 못합니다. 차라리 지은이는 어설픈 해결책보다 명징한 경고음을 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자본주의가 아무리 ‘또 하나의 피부’처럼 밀착한 제도라 해도 현혹되지 말고 이성을 찾으라는 것이지요. “더 큰 효율성을 통해 모든 사람이 결핍으로부터 자유롭고 건강한 환경에서 살아가도록 만들겠다는 녹색 자본주의의 약속은 동네 선술집에 걸린 ‘내일은 맥주 공짜’라는 네온사인만큼이나 믿을 수 없는 말이다.” 정작 ‘내일’이 되면 맥주를 공짜로 마실 수 있는 날도 ‘내일’로 연기되는 까닭입니다. 그리고 파국의 징후는 목발질하듯 점점이 다가올지라도 파국은 하루아침이지요. ‘녹색 유혹’은 이성을 마비시키는 마취제라는 게 지은이 주장의 알짬입니다.
전진식 기자 한겨레 편집2팀 seek1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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