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쿠터와 다방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유성용이 ‘스쿠터’를 사랑하는 건 자본화가 덜 된 교통수단이기 때문이다. 정비소에 가면 드라이버와 스패너를 주고 “알아서 고치슈”라는 말이 들려온다. 정말 많이 고장나서 기껏 고쳐봐야 수리비 5만원이 나올까. 도로에서 헬멧을 쓰고 스쿠터를 달리다 스쿠터와 자동차 간 교통사고가 난다면? 어느새 여기저기서 스쿠터들이 쫙 모여들어 사고현장을 빙 둘러싼다. 스쿠터를 타는 사람끼리만 알 수 있는 ‘연대의 눈빛’이 오고 간다. 그리고 무조건 편든다. 유성용은 “퀵서비스 일하는 분, 택배일 하는 분, 자장면 배달하는 분들이 타는 것이 스쿠터다. 약자들이 모여 서로에 대해 배려의 눈빛을 나누는 모습이 너무 정다워 나 역시 스쿠터가 좋다”고 말한다.
유성용은 스쿠터를 타고 다방을 ‘기행’한다. 기행문을 ESC 지면에 연재하기도 했다. 그가 다방을 기행하는 것은 “초대받지 않은 곳”이기 때문이다. “이 지역, 저 지역 다니려고 할 때 여행안내 책자나 소개지에 소개된 곳은 대부분 ‘지역의 명소’이자 ‘지역에서 잘나가는 곳’이죠. 지역에서도 그런 곳에는 ‘다방’ 말고 ‘커피숍’이 있어요. 다방은 옛날 시청이나 구청이 있던 자리 등 구 번화가에 있어요. 과거의 기억을 안고 있는 거죠. 지금 그곳에는 삶에 지친 ‘젊은 언니’들이 티켓을 끊고, 쟁기 들고 낫 든 농부들이 ‘커피’라는 삶의 사치를 누리기도 합니다. 사라진 것들에 대한 뉘앙스가 있는 곳이죠.”
유성용이 10월, 를 펴냈다. “생활 속에서 여행의 뉘앙스를 느낍니다. 살면서 느꼈던 ‘여행의 뒷자락’을 끄적였던 것들입니다.” 4년 전 가을, 를 펴낸 지 1년4개월 만이다. 그때는 “삶에 따귀를 맞고” 1년 반 동안 타이, 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에서 살다가 실크로드를 지나 중국 윈난성에 이르기까지 무작정 걷고 떠돌았다. “내가 여행을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어쩌다 보니 선택하게 됐고, 여행이 나를 굴리고 다녀서, 나는 여행생활자가 됐다. 그 여행생활자의 삶 속에서 나는 나를 최대한 죽이고 이국의 삶과 삶의 풍경에 최대한 집중했다.” 이번에 ‘생활여행자’가 된 그는 “여행 속에서 그래야 하는 것처럼 생활 속에서 나에 대한 관심을 줄이고 내 밖의 풍경과 사건들 속을 헤맸다. 그렇게 누군가의 일상 속을 걸으며 생활을 여행했다”고 말했다.
그는 삶의 어느 자락에서 ‘여행’의 뒷맛을 느끼는 걸까. “지난 초겨울, 서울 청계천 자락에서 무료로 밥을 주는 밥차가 있었다. 그중에 가방 밑에서부터 아주 꼼꼼히 짐을 쟁여넣고 맨 위에 돌돌 단정하게 묶은 모포 하나를 얹은 탄탄한 배낭을 맨 젊은 남자를 봤다. 그의 탄탄한 배낭을 보니 실크로드 카슈가르에서 만났던 눈빛이 선한 친구가 떠올랐다. 사막길에서 밤새워 술을 나눠 마시고 이야기를 나눴다. 그에게 ‘해바라기 같은 어머니는 안녕하시냐’고 안부를 묻고 싶었는데 그 안부를 청계천 밥차 줄에 서 있는 그 남자에게 물어도 될 것 같았다.” 그에게 안부를 묻는 대신 유성용은 그 사람을 바라보느라 신호등을 두 번 놓쳤다. 계속 쳐다보는 눈빛에 현실에서의 그 ‘배낭남’은 유씨를 “퉁명스러운 눈빛”으로 응대하긴 했다.
여행과 생활이 어떻게 다르냐고 물었다. 유성용은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여행과 생활은 어쩌면 서로에 대한 몽중몽과 같아, 그것이 꿈일지라도 어느 하나 생시 같지 않은 것이 없다. 꿈속에서 또다시 꾸는 꿈은 마치 생시 같잖아요.” 서문에 있던 말을, 한 자 틀리지 않고 외워서 답했다. 그만큼 삶과 글에 괴리가 없는 사람이다.
유성용은 ‘여행’과 ‘생활’이 다르지 않기 때문에 ‘투어’식으로 여행을 소비하는 지금의 여행 문화에 적잖은 불편함을 느낀다. “사람들은 일주일 인도를 다녀온 뒤 인도를 다 아는 것처럼 생각하죠. 혹은 자본주의적이고 세속적인 삶에서 도망가기 위해, 혹은 그 경쟁의 삶에 더 잘 적응하기 위해 잠시 떠남을 갖고 싶어합니다. 한마디로 지금 사람들에게 여행은 전날 마신 술을 깨거나 피로를 풀기 위해 마시는 ‘피로회복제’와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이집트를 ‘피라미드 찍고, 스핑크스 찍는’ 식으로 관광하는 미국 여행객들을 비판했던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떠올랐다.
“때때로 자신의 능력을 포기할 줄 알아야죠”그리하여 에는 1년 반의 떠남을 마치고, 또 그 이전 고등학교 교사 생활을 접고 4년간 지리산으로 들어가 차를 내리며 살았던 삶을 접고 다시 서울 하늘 아래 북악산 기슭에 구멍 뚫린 지붕 집을 주워 수리하며 살았던 그의 일상이 녹아 있다. 지붕을 수리하고, 잡초를 뽑고, 창문에 푸른 방충망을 다는 그 모든 과정조차 유성용에게는 여행이다.
유성용의 입에서 문득 익숙한 단어가 흘러나왔다. “다이어트.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자기 능력을 신장하고 세상 속에 실현하고 사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때때로 자신의 능력을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하는 것 같아요. 백수로 사는, 무능력의 삶, 능력을 다이어트하는 거죠.”
10월28일 오후 2시 서울 성북동 그의 집 자락에서 만난 유성용은 그렇게 어울리지 않게 ‘다이어트’를 이야기했다. 그런 그의 글의 미학은 쭈뼛댐이다. 유려하게 이어지지 않고 쭈뼛쭈뼛 이어지는 문장들. 그 끊어짐 속에 사색이 숨어든다. 조금은 쭈뼛대는 느낌으로 유성용이 인터뷰 말미에 말을 이었다. “내 글이 책으로 포장되는 순간, 나 또한 ‘여행을 소비하는 사람’의 이미지가 덮이는 것 같아 조금 불안합니다. 책이 하고 있는 화장을 지우고 읽어줬으면 좋겠어요.” . 화장을 지워주고 마음을 비우고 책장을 넘기면, 무게 없는 삶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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