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레드기획] 삶이 예술이고 예술이 삶이니라

광주 시장 안 셔터 드는 장미란과 부산 광안리 헬스클럽 미술관
등록 2008-09-12 17:10 수정 2020-05-03 04:25

“아따, 겁나게 많이 맹글었네. 요놈들 좀 보시오.”
지난 9월3일 낮 광주 도심의 대인시장. ‘해남상회’를 운영하는 이정자(62)씨의 목소리가 울려펴졌다.
“요것이 다 뭐시다요?”
‘칠성가방’의 김상철(55)씨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홍어집’ 안에 들어섰다. “딱 보면 모르요. 홍어 ‘거시기’재.”
이씨의 거침없는 말에 주변 상인들이 한바탕 웃음을 터트렸다.
“한 달도 넘은 거 같어. 여그 대장이 매일 뭘 만들더라고. 날도 더운디 뭘 그리 열나게 뚝딱거리나 했는데 요놈들이었구먼.”
이씨가 연방 싱글거리며 말했다.

‘일상 속으로 고고!’ 비엔날레는 딱딱하고 무겁다는 편견을 버려라. ‘2008 광주비엔날레’와 ‘2008 부산비엔날레’는 대중의 눈높이를 겨냥해 일상에서 즐길 수 있는 전시 프로그램을 다채롭게 펼쳐 보인다. 사진은 ‘복덕방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는 광주 대인시장의 주차장(왼쪽)과 빈 점포의 셔터(오른쪽). 한겨레21 노형석 기자

‘일상 속으로 고고!’ 비엔날레는 딱딱하고 무겁다는 편견을 버려라. ‘2008 광주비엔날레’와 ‘2008 부산비엔날레’는 대중의 눈높이를 겨냥해 일상에서 즐길 수 있는 전시 프로그램을 다채롭게 펼쳐 보인다. 사진은 ‘복덕방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는 광주 대인시장의 주차장(왼쪽)과 빈 점포의 셔터(오른쪽). 한겨레21 노형석 기자

시장 내 홍어골목에 위치한 ‘홍어집’은 진짜 홍어를 팔지 않는다. 시커먼 홍어 대신 2천여 개의 붉은 합성수지 조형물이 차고 넘친다. 이곳은 지난 7월 초까지만 해도 빈 상점이었다가 일상 속 미술을 표방하는 2008 광주비엔날레의 ‘복덕방 프로젝트’가 시장에서 진행되면서 변신했다. 화가 박문종씨가 작업실을 차리고 홍어 수컷의 생식기를 본뜬 작품을 만들어 내건 것이다. 이씨가 말한 대장이 바로 그다. 박 작가는 주변 상점처럼 작업실 앞에도 ‘홍어 있습니다’라는 문구를 내걸었다. 자세히 보니 한 글자가 더 보인다. ‘홍어 × 있습니다.’ 생식기를 뜻하는 비속어가 보일 듯 말 듯 적혀 있다. 35년간 홍어를 팔아온 이씨가 신기한 듯 말한다.

“우리 같은 사람이 예술이 뭔지 워째 알겄소. 근디 저런 것도 예술이라니께 홍어에 달린 요놈(생식기)도 잘만 해놓으면 예술이 될 수도 있겄소, 잉.”

홍어집에는 홍어 거시기만 있습니다

그는 박 작가가 만든 영상을 보며 “대장이 여기서 배를 타고 나가, 여기에서 홍어를 잡고, 여기 와서 막걸리에 홍어를 먹으면서 노래한다”고 아이처럼 기뻐했다.

‘복덕방 프로젝트’는 시민들과 더욱 친숙한 미술 교감을 실험하는 비엔날레의 과감한 시도다. 대인시장은 10여 년 전 주변에 백화점과 대형 할인점이 들어서고 도청과 시청이 옮겨가면서 쇠락해 지금은 70여 곳의 점포가 비어 있는 실정이다. ‘복덕방 프로젝트’는 이렇게 쇠퇴하는 공간을 전시관으로 활용했다. 지난 7월 초부터 10여 명의 작가들이 빈 점포에 들어가 주변 상인들과 어울려 생활하면서 그들 삶에서 소재를 발굴하고 영감을 얻었다. 그래서 이곳 작가들의 작품에는 상인들의 이야기와 감정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구헌주 작가는 힘겹게 셔터를 들어올리는 상인들 모습에 착안해 역기 대신 셔터를 들어올리는 역도선수 장미란의 모습을 빈 점포 셔터문에 그려넣었다. 마문호 작가는 상인들의 장사하는 모습을 버려진 비닐이나 포대에 바느질로 한 땀 한 땀 드로잉해 넣었다. 또 다른 작가들과 6명의 자원봉사자들은 닫힌 셔터 위에 다닥다닥 붙은 일수 스티커를 꽃 모양으로 다시 붙이고, 아이들 놀이방도 만들었다. 주차 방지용 돌을 놓았던 시장 한구석에는 휴식 공간 팔각정도 세웠다. 기획자 박성현씨는 “우리 삶이 예술이고, 예술이 곧 우리 삶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일상 속으로 스며든 비엔날레는 부산 광안리 해수욕장 부근에서 펼쳐진 ‘2008 부산비엔날레’ 바다미술제에서도 만날 수 있었다. “누구나 눈을 돌리면 모든 곳에서 예술품을 만나고 즐길 수 있는 비엔날레”를 표방한 이두식 운영위원장의 뜻대로 해수욕장, 놀이공원, 목욕탕, 헬스장, 컨테이너 등이 미술마당으로 바뀌었다.

해수욕장에서는 설치미술의 향연이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졌다. 가장 먼저 만난 손한샘 작가의 . 가로 1m, 세로 20m의 차양막 안으로 들어가면 주위는 닫혀 있고, 오직 정면으로 푸른 바다가 펼쳐진다. 거대한 화폭에 살아 있는 바다가 몰려오는 착각을 일으킨다. 을 지나 30m쯤 북쪽으로 가다 보면 모래사장 아래에 숨겨진 도시를 만날 수 있다. 김미애 작가의 이다. 가로 22m, 세로11m, 깊이 1m의 구덩이에 1500여 개의 건물 모양 조형물이 빼곡히 들어찼다. 모래 아래 묻힌 또 다른 도시를 발굴한 듯한 느낌이다. 보빈스키의 도 독특하다. 백사장 한가운데에 설치된 구멍을 들여다보면 지구 반대편 사람들이 같이 쳐다보는 모습이 보인다. 커다란 구멍으로 지구 반대편과 연결된 듯한 가상체험이다. ‘실외공간 전시’는 10월17~18일 펼쳐지는 ‘부산불꽃축제’ 때문에 아쉽게도 서둘러 막을 내린다.

역대 가장 넓은 공간, 동선을 미리 짜라

해수욕장을 돌아본 뒤 좀더 동쪽으로 가면 나오는 놀이공원 인근의 미월드 상가 2·3층과 지하에는 깜짝 놀랄 만한 전시가 기다리고 있었다. 헬스클럽과 사우나탕, 결혼식장에 나무판을 세워 전시관 못지않은 미술관으로 꾸몄다. 이곳에서는 회화, 설치, 사진 등을 비롯해 세계 각국 작가들의 다양한 영상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특히 거대한 나무틀 안에 베이비파우더를 이용해 부산 지도를 만들어 낸 타이 작가 니판 오라니웨스나의 가 호기심을 자극한다. ‘훅’ 불면 날아가버리는 재료의 특성상 관람객의 주의가 필요하지만 별도의 차단 장치는 없다. ‘낭비’라는 비엔날레 주제에 맞게 시간이 지나면서 망가져가는 과정도 작품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바다미술제는 역대 가장 넓은 공간에서 열리는 만큼 적절한 관람 순서를 미리 짜서 움직이는 것이 필요하다. 전승보 전시감독은 “금련산 지하철역에서 출발해 광안리 해수욕장을 거쳐 미월드로 천천히 이동하며 감상하는 것이 좋다”고 귀띔했다.

부산·광주=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