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의 사랑과 성에 관한 7편의 단편소설 박정애·신여랑 등
▣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설레는 단어 ‘첫’ ‘처음’. 머릿속을 꽉 채워버리고 온몸을 꽁꽁 묶었던 첫사랑과 첫경험. 갑작스런 몸의 변화와 거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내가 내가 아닌 것처럼 이상해지는 때. 창비 여섯 번째 청소년문학선은 청소년의 성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김리리, 박정애, 신여랑, 이금이, 이용포, 이혜경, 임태희의 단편 7편이 에 모였다. 남자친구와 우정, 엇갈리는 사랑, ‘비밀과 거짓말’, 소녀와의 사랑 등이 흥미롭다. 청소년은 아프고 괴롭게 겪지만, 그 시절을 지나고 보면 이렇게 재밌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하얗게 비밀로 묻어놓은 여자아이의 욕망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박정애의 ‘첫날밤 이야기’는 외할머니의 외할머니 이야기를 손녀의 손녀가 풀어놓는다. 외할머니의 외할머니인 외고조할머니는 이름도 없었다. 큰딸은 큰아기, 작은딸은 작은아기로 불리다가 시집간 집안의 이름을 따서 김실이, 박실이로 불릴 만큼 오래전 밀양에서 일어난 일이다. 외고조할머니는 열두 살에 박실이가 될 운명이었다. 그네는 어린 나이에 다른 집으로 간다는 게 못마땅했다. 그 수단은 떼쓰기나 징징 짜기가 아니라 일장연설과 조직적인 반항이었다. 일장연설이 안 먹히자 손가락을 입속에 넣어 토하다가 혼절을 한다. 부모님은 태도를 바꿔 싹싹 빌지만 시집은 가니, 이름을 얻어 박실이가 된다. 그러니까 박씨 집안으로 이사간 것이다. 시댁은 며느리를 소나 나귀로 아는 집안이어서 “길쌈 다 했거들랑 다듬이질해라, 다듬이질 끝났거들랑 이불 홑청 시쳐라, 홑청 다 시쳤거들랑 버선 기워라…”로 일이 끝이 없는 집안이었다. 작은아기는 시부모가 자리를 비운 사이 며느리 여섯을 선동해 장터로 협률사 구경을 가고 호되게 야단을 듣는 등 ‘주인공’답게 씩씩하다. 시집올 때 열두 살 아이는 나이들어 초경을 하고 처녀가 된다. 서울서 3·1운동이 벌어지고 난 얼마 뒤 밀양 장날을 받아 작은아기의 남편이 만세 운동을 펼친다. 장터에 나갔다가 남편을 본 작은아기는 괜히 설렌다. 그날 밤 작은아기는 마루에 앉은 남편을 껴안는다. 남편은 순사를 피해 멀리 도망가고 작은아기는 그 뒤로 그이를 다시 볼 수 없었다. “작은아기가 기미년 3월13일에도 박 서방한테 마음을 열지 못했으면, 그날 밤에도 진짜 첫날밤을 갖지 못했으면, 외증조할머니도 없고 외할머니도 없고 울 엄마도 없고 나도 없다는 거….” 이 이야기를 하는 소녀는 열여섯 살. 외고조할머니가 박 서방을 껴안은 그날처럼 “제 친구들도 그렇고요, 가끔가끔 칡덩굴 같은 것에 조이거든요. 입속에 새콤달콤 침도 고이고요.”
신여랑이 지은 ‘서랍 속의 아이’도 어린 여자아이의 욕망에 솔직하다. 상담교사에게 전화를 걸던 중학교 2학년 소녀는 3주 동안 연락이 없다. 상담교사는 “어쩌면요, 나는 처음부터 이상한 여자애로, 나쁜 애로 태어났을지도 모르겠어요. …나 사실은 거기 가고 싶었어요. …밤새 다시는 가지 말자고 다짐해놓고도 다음날 거기로 갔어요”라는 소녀의 말에 옛날을 떠올린다. 열두 살, 동네 집들이 텔레비전을 하나둘 들여놓을 때 억척스런 어머니는 이사가면 들이자며 아이들의 소원을 무시한다. 을 좋아하던 소녀는 우연히 소아마비 소년의 방에서 텔레비전을 보게 된다. 단둘이 을 보며 소년에게서 남자의 향기를 맡는다. 그곳에 가면 안 된다고 하면서도 이 보고 싶다는 핑계로 소년의 방으로 간다. 어느 비 오는 날 “다시는 가지 말자”고 다짐하지만 몸은 그곳을 향한다. 소년의 어깨에 몸을 기댔을 때 뒤따라온 어머니에게 들킨다. “내가 그 오빠를 따라갔기 때문에 그런 일이 생긴 게 아니라고요? 내가 잘못이 아니라고요? 주변에 알리고 도움을 받으라고요?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피해자 여성을 동정하는 속에 ‘욕망’은 빠져 있었다. 문제는 복잡해지지만 좀더 솔직해질 수 있다. 그리고 그게 더 진실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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