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스탠퍼드 감옥 실험 일지, 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의
▣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사무실을 개조한 감옥은 가짜 티가 팍팍 났다. 감방이라고 하는 데에는 용변 시설이 없어 볼일을 볼 때마다 복도로 나가야 했다. 독방도 임기응변으로 따로 마련됐다. 죄수의 모양새도 영 아니었다. 머리를 실제로 깎지 않고 깎은 것처럼 보이도록 스타킹을 뒤집어썼다. 무섭기보다는 우스워 보였을 것이다. 교도관과 죄수 역을 맡은 이들은 감방에서는 보기 드문 대학이나 대학원에 재학 중인 학생들이었다. 그런데 가짜 티 팍팍 나는 연극무대는 순식간에 진짜 감옥이 되어갔다. 교도관과 죄수 역을 맡은 이들이 자기 역에 몰두하면서 감옥을 만들어낸 것이다.
1971년 행해진 스탠퍼드 감옥 실험은 인간의 악에 관한 충격적인 실험이다. 실험을 고안한 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는 2004년 이라크 아부그라이브 교도소에서 벌어진 사건을 분석하면서 35년 전 실험을 떠올린다. 그리고 2주일로 계획했으나 극도의 불안감이 떠돌아 1주일도 안 되어 멈춰야 했던 실험을 세세한 면까지 기록했다.
짐바르도의 관심은 수감자들이 감옥과 같은 극단적인 상황에 어떻게 적응해나갈지였다. 그래서 교도관의 역할은 죄수에게 감옥과 거의 똑같은 심리적 상태를 부여하는 것이었다. 실험 전날 모임에서 그는 ‘학대를 하지 않’되 진짜로 감옥에 와 있다고 느끼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당부한다. 하지만 교도관 역을 맡은 학생들이 ‘가학성’을 드러내면서 교도관 역시 중요한 분석 대상이 된다. 교도관들은 입소하는 죄수들을 맞는 순간 교도관이 되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일부 교도관들은 수감자들의 성기를 가지고 음경이 작다거나 고환이 짝짝이라는 식으로 조롱”한다. 죄수들은 진짜 경찰의 도움을 받아 연행해왔다. 실험의 일부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죄수 역 학생들은 자신이 짓지도 않은 죄 때문에 주눅이 든다.
첫째 날 17개의 규율이 발표된다. 이름 대신 번호만을 부를 것, 화장실은 5분 안에 끝낼 것, ‘실험’이라는 말을 절대로 입에 올리지 말 것 등이었다. 수감자들의 첫 반란은 첫날 밤을 지내고 일어난 다음날에 벌어진다. 반항을 계속하고 ‘구멍’(독방)에 갇히기를 거듭하던 8612번은 더 이상 있을 수 없다며 짐바르도에게 면회를 요청한다. 짐바르도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자신의 태도가 신기했다. 그는 “평소 나 자신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던 선량한 대학 교수가 아니라 사악한 교도소 관리자처럼 행동했”다. 그리고 8612번에게 ‘정보 제공자’ 역할을 하라고 제안한다. 면담이 끝난 뒤 8612번은 동료들에게 “실험을 절대로 그만둘 수 없다”는 소문을 내고, 죄수들은 불안해한다. 그전에 이미 죄수 역의 학생들은 언제라도 실험을 그만둘 수 있다는 사실을 잊은 듯했다. 결국 “나 저 안에서 미쳐 돌아가고 있다”고 외쳐대던 8612번을 방면된다. 겨우 3일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리고 4일째 또 한 명의 신경쇠약 직전의 죄수 역시 방면된다. 그는 자신이 행한 불복종으로 인해 동료가 고통받는다며 자신이 감옥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만두라고 설득한 것은 짐바르도였다. “내 말을 잘 들어. 너는 819번이 아니야. 너는 스튜어트고 나는 짐바르도 박사다. 나는 교도소 감독관이 아니고 심리학자야. 그리고 여긴 진짜 교도소가 아니고, 이건 단지 실험일 뿐이야.”
모범생들을 권위적인 교도관, 신경쇠약 직전의 죄수들로 완벽하게 변신시킨 것은 무엇일까. 여기서 변수는 단지 감옥이라는 환경 그 자체였다. 그간 받은 교육도 힘이 없었다. 본성처럼 보이던 것도 환상이었다. 저자는 그것을 ‘루시퍼 이펙트’라고 말한다. ‘평범하고 선량한 사람이 악한 행동을 저지르도록 전환시키는 상황과 시스템의 영향력’. 하지만 개인의 힘은 0일까. 결론은 시스템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지만, ‘악’이 튀어나오지 않도록 뚜껑을 닫는 식이라면 얼마나 절망적인가. 개인 행위들의 모음도 ‘시스템’의 요소다. 시스템의 요소가 되어버린다는 ‘행동하지 않는 악’은 최악의 범죄 뒤에 항상 도사리고 있다. 엔론이나 월드컴 같은 기업 비리나 르완다, 다르푸르의 대량학살 등이 그 예다. 인간들의 행동이 시스템이라면 시스템을 바꾸는 것은 개인이다. 이런 행동하지 않는 악을 깨고 거대기업에 대한 양심선언을 하는 사람을 저자는 ‘영웅’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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