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면한 40대 남자 4명, 시게마쓰 기요시의
▣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시게마쓰 기요시는 따뜻한 현실주의자다. 그의 소설에는 아버지가 자주 등장한다. 원래부터 아버지였던 아버지가 아니라 시간이 흘러 아버지가 된 남자다. 사랑이라는 불타는 감정은 옛날 이야기가 되었고 회사에서도 썩 잘 풀리지 않는다. 자식은 커가는데 기특하기보다 서먹하다는 느낌이 먼저 온다. 하지만 아버지다. 진심은 거기 있기에 작은 계기만 있다면 젖어들듯이 행복해진다. 물론 상황을 바꾸는 데까지 나아가지는 않는, 폭소가 아닌 미소다. 124회 나오키상을 받은 〈비타민 F〉는 대단치 않은 소재를 가지고 부쩍 힘이 나는 비타민제를 선물했다.
F는 Family, Father, Friend. 맞다. 보수적이고 수세적이고 못났다. 유치하기도 하다. 하지만 스산하고 비가 실린 찬바람이 후려치는 현실에서 고양이가 아니라도 부뚜막은 필요하다. 시게마쓰의 신작 (고향옥 옮김, 양철북 펴냄)에서도 그의 강장제 약발은 잘 듣는다.
에 실린 네 편의 단편에는 각각 딱 40살의 남자가 주인공이다. 그들은 각자 ‘죽음’을 만난다. 죽음 옆에는 중요한 인물들이 한 명씩 있다. 이들은 죽음만이었다면 바뀌지 않았을 삶을 바꾼다. 모멘텀이다. 그들은 거개가 아이들이다. ‘졸업’의 와타나베는 친구 딸 아야의 방문을 받는다. 아야의 아버지이자 와타나베의 대학 시절 친구인 이토 신은 14년 전 빌딩에서 떨어져 자살했다. 이토 신의 아내가 아야를 임신하고 있을 때였다. 아내는 재혼하고, 아야는 자살한 아버지의 존재를 모르고 있다가 최근에야 알았다. 아야는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물으러 왔다. 와타나베는 그간 잊고 산 친구를 떠올린다. 그리고 아야가 열어놓은 웹사이트에 그와의 추억을 써나간다. 하지만 오래전 일이라 곧 바닥이 나고 만다. 그가 죽을 무렵에는 서로 바빠 연락이 뜸했다. 왜 죽었는지는 당연히 모른다. 그즈음 와타나베는 정리해고 형식으로 파견 근무지 발령이 난다. 친구의 죽음의 비밀은 풀리지 않는다. 친구가 죽은 날에는 비가 왔고, 그는 비가 들이치는 빌딩의 옥상에서 세 개비의 담배를 피웠다. 와타나베는 “그것은 어떤 맛이었냐”라고 14번째 기일 옥상에서 간절하게 외친다. 그 세 개비의 담배 맛을 아는 것, 그게 졸업식이다.
‘행진곡’, 도쿄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오노는 어머니의 마지막을 지키려고 고향으로 온다. 오랜만에 동생 마유미를 만난다. 어린 시절부터 특출했던 오노에게 동생 마유미는 부끄러운 존재였다. 5살 차이 나는 동생은 항상 노래를 불러댔다. 잘하는 노래도 아닌데 어머니는 항상 “잘한다, 잘한다” 해주었다. 무의식 중에 노래를 부르는 버릇은 초등학교 입학식의 엄숙한 분위기에서 사단이 난다. 신입생 축사를 하러 올라갔던 오노는 더듬거리다 내려온다. 마유미는 버릇을 고치지 못한다. 수업 시간에도 난데없이 부른다. 하지만 어머니는 학교에서 야단맞고 돌아온 딸을 “왜 오늘은 카레송을 안 부르니”라며 다독인다. 결국 마유미 선생님은 입에 마스크를 하게 하고 마유미는 학교에 가지 못하는 상태가 되고 만다. 오노의 아들도 명문 중학교에 입학한 뒤 학교를 가지 못하는 공황 상태에 빠져 있다. 오노는 어머니의 ‘마유미의 노래’에서 학교에 보내는 방법을 알아낸다.
‘아버지의 마지막 수업’에는 인정 없는 교사로서 평생을 지낸 아버지의 마지막을 지키는 아들이 나온다. 그 자신도 교사가 되었지만 아버지를 닮고 싶지 않다. 여기의 모멘텀은 죽음과 주검에 집착하는 학생이다. ‘추신’은 어린 시절 죽은 어머니를 잊지 못하는 소설가가 주인공이다. 그는 새어머니를 ‘어머니’라고 부르지 못한다. 소설가는 에세이를 써달라는 부탁에 죽은 어머니를 여러 가지 자신의 성장을 지켜보는 어머니로 부활시킨다. 한 독자는 마지막 2~3페이지에서 어김없이 눈물이 흘렀다고 한다. 사실이 그렇다. 누가 볼까, 을 읽는 것은 들이치는 찬바람을 피해 문을 꼭 닫은 따뜻한 온돌방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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