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그린 책 두 권
▣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사람을 향합니다.” 좀 간지러운 이동통신 회사의 카피다. 기술이 향한 곳이 사람인지 소비자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가위 길게 늘어선 차량의 줄들이 향한 곳은 분명하다. 교통 대란을 겪고 도착한 곳에 사람이 있다. 사람을 향해 화첩을 든 사람들의 글과 그림이 책으로 나왔다. 이호신 화백의 (학고재 펴냄)와 손문상 화백의 (산지니 펴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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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호신 화백은 한국의 마을 30곳을 찾았다. 동아프리카 탄자니아, 인도, 파키스탄 등 이국 땅 풍경을 많이 그렸는데 이번에는 깊은 골짝 심심산골 마을이다. 그는 “지나간 시간들의 발품이 모두 마을을 그리기 위한 준비였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한다. 2002년 1월부터 2003년 5월까지, 2005년 1월부터 2006년 12월까지 30개의 마을을 찾아갔다. 그의 일정이 더뎠던 건 이유가 있다. “마을에 갈 때는 가능한 한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반드시 마을에서 먹고 자며, 주민들과 함께 지낸다. 마을에서 화첩을 한 권 이상 충실하게 그린다. 주문이나 청탁에 의한 마을 그림은 배제한다”는 원칙으로 움직였기 때문이다. 수묵담채화 마을 전경에는 가끔 원근이 어긋나는 듯한, 그렇다는 게 아니라 그러한 듯한, 정물들이 있다. 길가에 풀 매는 아주머니가 자그맣게 웅크리고 있다. 물꼬를 트러 가는지 삽을 멘 아저씨도 있다. 붓 몇 번이지만 머리에 쓴 수건 접힌 모양새와 한가로운 걸음걸이가 보이는 듯하다. 그들의 집은 어딜까. 이호신 화백은 알고 있다. ‘마을 침투’ 과정이 치밀하기 때문이다. 초상화를 그리며 사람을 만나고 마을 전경을 그린다. 진득하지 않으면 붓이 나가지 않는다는 모양, 초상화를 그릴 땐 사람을 앉혀놓고 사정을 일일이 캐며 붓에 강약을 싣는다. 경북 봉화 문수산 닭실마을 대종부 85살 류한구 여사는 두 손을 치맛자락에 감추고 있다. 왜냐고 물으니 “험악한 손을 보여주기 민망해서”라고 한다. 서른다섯 번의 조상 제사와 마흔아홉 번의 명절 제사로 평생을 겪은 손이다. 그는 “그 손을 꼭 그려야겠습니다. 그토록 많은 고생을 하셨을 텐데 어쩌면 이렇게 손이 고우세요”라 말하고, 여사는 “고생은 무슨, 크고 좋은 집에서 호강하며 잘살아온 덕이라우”라고 맞받는다. 여사의 손은 기둥을 살며시 잡듯이 곱게 얹혀 있다. 이렇게 샅샅이 훑은 사람들이 마을 전경으로 들어간다. “마을 전경을 위한 부분 묘사가 절실하여 다시 마을을 돌아보는 나흘째, 땡볕 속에 화첩을 펴들고 선생이 가정방문하듯 한 집 두 집 살펴보는 데 한나절도 넘게 걸렸다.”
은 손문상 화백이 에 연재한 ‘화첩 인터뷰’를 묶은 것이다. 사람의 초상화가 한 면에, 그림 그리며 도란도란 나눈 이야기가 맞은 면에 있다. 처음엔 인터뷰 식으로, 이런저런 사정 봐가며 적다가, 곧 그림이 말하는 것처럼 ‘1인칭’ 시점으로 바꾸어서 글이 적혔다. 신문에 나는 거 싫다는 파밭 매는 아줌마는 큰 자전거 뒤에 숨었다. “신문에 얼굴 나오고 그러면 동네 형님들이 다 뭐라 해요. 우리 아저씨요? 우리 남편은 뭐라 안 해요. 저~기 우렁이 하는 아저씨 해요.” 말하는 중에 아줌마 말이 바뀐다. “그림 그리는 거면 내 얼굴 안 나오게 여기 맘대로 그리세요.” 그러다가 “아이고, 가야 돼요. 애들 밥 줘야지” 하며 세워뒀던 자전거를 타고 사라진다. 청소 아줌마도 그림 그리는 앞에 앉을 시간이 없었는지 왁스칠하는 뒷모습으로 잡혔다. 오솔오솔한 글들이 아줌마가 일하며 이야기하는 것 같다. 아저씨 이야기도 하고 애들 이야기도 한다. 오륙도 등대장 양희용 아저씨는 폼을 좀 잡았고, 화물 노동자 전용희씨는 트럭 앞에 우뚝 섰고, 비정규 해고 노동자 구혜영씨는 해맑게 웃는다. ‘소설’도 있다. 생애 첫 봄나들이 가는 어린이가 이렇게 말을 잘할 수가. “얼마 전부터 엄마 아빠가 또 생겨서 제가 요즘 좀 복잡해요. 엄마1이 직장에 일하러 가면 여기 엄마2 집에서 5일 동안 살다가 다시 엄마1하고 이틀 살다가 왔다 갔다, 어린 나이에 두 집 살림 중이랍니다.” 금방이라도 손을 덥석 잡을 것 같은 아이는 말한다. “같이 가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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