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고통받는 자의 편’ 김훈의
▣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김훈의 신작이다. (학고재 펴냄)은 단편소설들(으로 묶였다)과 소품 를 쓰며 잠깐 허리를 폈던 그가 긋던 길을 다시 이은 소설이다. 의 배경은 병자호란이다. 인조는 강화도로 피해가려 하지만 이미 청군은 가는 길을 끊었다. 남한산성으로 뒷걸음질친 인조는 병자년(1636) 음력 12월14일부터 다음해 1월10일까지 47일 동안 그곳에 머물렀다. 키워드는 ‘치욕’이다. ‘치욕’은 김훈의 문장으로 읽기에 매력적이다. ‘치욕’은 김훈의 불가지론 문장 안에서 이렇게 지어진다. “치욕과 자존은 다르지 않았다.”(‘하는 말’) 아닌 것이 아닌 것은 이렇다. “나는 아무 편도 아니다. 나는 다만 고통받는 자의 편이다.”(‘하는 말’)
남한산성은 배급 식량을 하루 서너 홉에서 두세 홉으로 줄이면 45일이나 50일은 버틸 수 있다. 김훈은 이 굶주리는 남한산성을 ‘버드아이뷰’로 바라본다. “백성의 초가지붕을 벗기고 군병들의 깔개를 빼앗아 주린 말을 먹이고, 배불리 먹은 말들이 다시 주려서 굶어죽고, 굶어죽은 말을 삶아서 군병을 먹이고, 깔개를 빼앗긴 군병들이 성첩에서 얼어죽는 순환의 고리”(93쪽)가 보인다. 또 ‘버드아이뷰’의 눈에는 자꾸 ‘코미디’가 보인다. 겨울에 홀로 뜨거운 척화파-주화파 논쟁도 코미디다. “전하, 자꾸 어쩌랴 어쩌랴 하지 마옵소서. 어쩌랴 어쩌랴 하다 보면 어찌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 것이옵니다. 받들기 민망하옵니다.” “알았다. 내 하지 않으마. 경들도 하나 마나 한 말을 하지 말라. 그러나 어찌해야 하지 않겠느냐?”(64쪽) 이 남한산성을 보며 노비 출신의 정명수와 청나라 장수 용골대가 대화를 나눈다. “저것이 싸우려는 성이냐.” “견디자는 것이지요.” “안에서 저희끼리 싸우고 있을 겁니다. 견디어야 하는 놈들끼리의 싸움일 테지요.”(75쪽)
‘고통받는 자’들은 이들이 목숨을 걸고 명목 싸움을 벌일 때 한갓지다. 대장장이 서날쇠는 쌍둥이를 성 밖으로 내보내고 성 안과 밖이 막혀 농장기를 팔 수 없음을 걱정한다.(53쪽) 말 몇 마리를 잡아 병사들에게 대접하면 병사는 “말을 잡아주시려면 살쪘을 때 잡으시지 어찌 주려서 바싹 마른 뒤에 잡으시오”(94쪽)라고 이죽거린다. 그래서 “성 안 백성들은 조선 유군의 싸움을 토끼 사냥이라고 불렀다.”(135쪽)
‘고통받는 자의 편’인 김훈의 이번 소설에서는 전작 같은 주인공( 이순신, 우륵)이 없다. 하나 김훈의 불가지론 문장을 그냥 넘어가선 안 된다. 다시 키워드는 ‘치욕’이다. 인조는 항복 문서를 쓴다. 그는 원래부터 말을 아끼고 “묵적을 남기지 않”(10쪽)는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누가 쓸까. 정육품 수찬은 문자를 잊어버렸고 빙판에 넘어져 밥숟가락 들 힘도 없다고 한다. 그런 뜻을 차자로 올린다(바로 붓을 들어 쓴 문서로). 정오품 교리는 심장이 벌렁거려 죽는다. 정오품 정랑은 되지도 않은 문장을 써서 올린다. 임금이 환궁한 뒤에 목숨을 구걸한 자들이 살아남을 리 없기 때문이다. 결국 글을 쓰는 것은 주화파 최명길이다.
“내가 안 썼으면 딴 놈들이 썼을 테고…. 난 내가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때 나를 감독하던 보안사 놈한테 이런 얘기를 했지. 내가 이걸 쓸 테니까 끌려간 내 동료만 때리지 말아달라. 걔들이 맞고 있는 걸 생각하면 잠이 안 왔어. 진짜 치가 떨리고….” 재직 시절 신군부 용비어천가를 모조리 작성했다는 김훈은 327호(2000년 9월27일자) ‘쾌도난담’에서 이렇게 말했다. 고통받는 자 옆에 ‘허무한 영웅’은 뚜렷하다. 더욱이 소설가의 형상대로라니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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