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언어를 버리고 사회를 사유하는 서평집
▣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장정일씨의 새로운 서평집 (랜덤하우스 펴냄, 1만2천원)가 나왔다. 이후 오랜만에 나온 서평집인데다 ‘인문학 부활 프로젝트’라는 부제부터 ‘공부’라는 표제까지 심상찮다.
지은이는 ‘머리말’에서 마흔 넘어 깨달은 무지에 대해 말한다. 그것은 양비론의 칼날을 휘두르는 어정쩡한 중용의 자세였다. 지은이는 자신의 이런 ‘중용의 무지’가 시인의 언어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라고 탄식한다. 그러므로 이제 ‘어느 편’에 서기 위해 공부를 시작한다(제2기 장정일?). “2002년 대선 이후로 한국 사회가 내게 불러일으킨 궁금증을 해소해보고자 했던 작은 결과물이다.” 이 책은 어떤 ‘입장’이다.
시집을 버린 그는 인문학의 뗏목을 타고 사회로 나가서 우리의 문제를 사유하고 발언하려 한다. 그러나 그는 이 책을 ‘시작’이라고 단정 짓는다. 다른 언어로 ‘나’와 ‘당신’이 교류를 시작한다는 것.
책에 관한 책에 대해 쓰는 것은 참 피곤한 일이다. 장정일씨는 예의 그 시원스런 문장으로 2000년대 자신이 읽은 책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 그치지 않고 자신이 어느 편임을 못박아놓는다. 그 ‘입장’들을 정리하는 것으로 기자의 소임을 마치려 한다.
지은이는 박노자 교수의 책들로 말문을 뗀다. 자신이 ‘여호와의 증인’으로 병역을 거부하기 위해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한 만큼, 양심적 병역 거부의 정당성과 주류 종교계의 위선을 질타한다. 역사를 보는 시각에 대해선 이덕일씨의 작업을 높이 평가한다. 송시열을 반동적 지식인으로 재평가하는 관점에 동의하면서, 그는 지금까지 이어온 한국 사회 주류의 계보를 캔다. 무력한 사회민주당에 표를 줄 수밖에 없었던 노동자들의 착각을 지적하는 에 대한 서평은 매우 날카롭다. 그는 란 노래에 나오는 ‘낡은 손잡이’를 비유로 사용하며 민주당이니 열린우리당이니 하는 기존 정당의 한계를 말한다. 그리고 “민주노동당이 당으로 성립할 수 있느냐”라는 어느 술자리의 발언을 반성하면서 “개혁당을 박차고 나와 민주당을 옹호하게 된” 강준만 교수에게 실망을 표한다.
책에는 특히 전체주의에 대한 사색이 많이 드러나 있다. 끈질긴 ‘박정희 향수’와 군사문화에 대해 발언하고자 함이다. 지은이는 나치에 대한 역사서들을 횡단하면서, 파시즘이 특정 시점의 특정한 체제가 아니라 근대성의 병리이며 우리 내면을 지배하는 체제임을 인정한다. 그러나 임지현 교수의 ‘대중독재론’에 대해선 비판적이다. 강제와 동의라는 전체주의의 여러 측면을 살피지 않고 대중의 자발적 복종에만 현미경을 들이댄다는 것이다. 그는 심지어 임지현 교수가 카를 슈미트의 전제 위에 서 있다고 비판한다. 문제는 지금 누구를 청산할 것인가이다. 박정희인가, 철수와 영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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