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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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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모든 사람은 환자다

등록 2006-11-18 00:00 수정 2020-05-03 04:24

질병이 브랜드화하는 과정을 추적한

▣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30년 전 세계적인 제약회사 머크사의 최고경영자(CEO) 헨리 개스덴은 은퇴를 앞두고 과 가진 인터뷰에서 머크사가 추잉검 제조사 같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건강한 사람을 위한 약을 만드는 것이 자신의 오랜 꿈”이라는 것이다. 아픈 사람들만 상대하는 의사가 신세한탄하듯 말하는 단순한 토로였는지도 모른다. 진심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레이 모이니헌과 앨런 커셀스의 (홍혜걸 옮김, 알마 펴냄)에 따르면 “그 꿈은 이루어졌다”.

미국에서 방송되고 있는 제약회사의 광고는 한 여성이 대형마트 입구에서 엉켜 있는 쇼핑 카트를 풀려고 애를 쓰는 화면 뒤에 “월경전증후군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월경전불쾌장애일 수도 있습니다”라는 말을 넣어 새로운 ‘병’과 ‘사라펨’이라는 새로운 약을 알려준다. 광고는 “약과 함께 질병도 함께 팔고 있다”. 그래도 병이니까 약으로 승인받고 팔리는 것 아닌가, 라는 의문을 품는 건 당연하다. 미국식품의약국이 인정한 이 병은 세계보건기구의 국제질병분류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거기다 ‘사라펨’은 자주색과 핑크색을 입힌 프로작이다. 책에 여러 번 등장하는 빈스 패리는 ‘질병을 브랜드화’하는 전문기술자인데 사라펨의 담당 마케터이기도 하다. 그의 말은 휴대전화 PDP TV 등을 마케팅하는 사람의 것 같다. “보랏빛으로 상품을 꾸미고 해바라기와 똑똑한 여성의 이미지를 입힌 다음 질병의 상태에 더 적합하도록 새로운 브랜드를 창출했다.”

이러한 마케팅의 수혜를 입은 결과 자연적인 노화과정, 성적 트러블, 사소한 불쾌감 등이 병으로 둔갑한다. 사회공포증은 사회불안장애가 되고, 아동주의력결핍장애는 성인으로까지 확대된다(그렇다면 에서 아이의 처방약을 훔쳐먹던 리넷은 당당하게 처방받아서 먹을 수 있게 되겠다). 그래서 여성성기능장애라는 병을 만든다. 이 여성성기능장애의 잠재 고객은 여성의 43%다.

‘환자’를 정의하는 것은 까다로운 문제다. 한쪽에서는 경미한 사람들 중에서도 중한 환자가 있을 수 있다(‘충족되지 않은 수요’)며 가이드라인을 낮추고 다른 한쪽에서는 환자로 정의된 사람 중에서 불필요한 사람이 많다(‘충족된 불필요한 수요’)는 사실을 걱정한다. 이 책은 후자인 셈인데, 이런 면에서 이 책의 가장 큰 아이러니는 전자 입장의 메신저로 알려진 홍혜걸씨가 번역을 맡았다는 점이다. 그나저나 TV나 언론의 호들갑에 병에 걸릴까 무서운데, 의사들이나 제약회사들이 속이는 것은 아닐까라는 의심증까지 생길 것 같다. 이런 데 좋은 약은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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