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도종환 시집 <해인으로 가는 길>이 보여주는 정지의 미</font>
▣ 고영직 문학평론가
시인 김수영은 1957년작 ‘서시’라는 시에서 “나는 너무나 많은 尖端(첨단)의 노래만 불러왔다/ 나는 停止(정지)의 美(미)에 너무나 等閒(등한)하였다”라고 탄식했다. 나는 김수영의 이 탄식을 최근의 한국시 전반에 대한 인식으로 읽어도 무방할 것이라고 믿는다. 최근의 우리 시인들은 ‘정지의 미’를 배우지 못한 듯 형형색색 이미지 위주의 ‘첨단의 노래’를 부르기에 여념이 없다.
그러나 강렬한 비트 음과 랩 창법으로 부르는 첨단의 노래는 화장술에 불과할지 모른다. 당신은 나 혼자만의 시간에 그런 첨단의 노래를 따라 부르시는가? 그렇다면 ‘정지의 미’에 관한 지극한 헌사의 마음을 담은 시는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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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도종환의 시집 <해인으로 가는 길>(문학동네 펴냄)에서 그 곡진한 마음의 풍경을 엿보게 된다. 이 시집을 보면서 “삶은 수많은 작은 고독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한 롤랑 바르트의 선언을 온몸으로 실감할 수 있었다.
나는 “번뇌를 한 짐 지고 와 앉아 있으면/ 산속에 들어와 있어도 하수구 냄새가 난다”(‘구절양장’)라는 구절 앞에서 이 시인의 산중 체험이 은일자의 자족이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되었고, “깨달음을 얻은 뒤에도/ 비 오고 바람 분다”(‘돈오의 꽃’)라는 구절에서는 각자(覺者)로서의 삶에 대해 성찰하게 되었다. 시인은 말한다. “백번 천번 다시 죽어라/ 깨달음을 얻은 뒤에도/ 매일 별똥이 지고/ 어둠 몰려올 것이다.”(‘돈오의 꽃’ 제4연)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보다 ‘깨달음 이후’에도 지속되는 삶에서의 일상적 실천을 강조한 이 진술은 도종환 시인이 성취한 득의의 표현일 터이다. ‘축복’ ‘산경’ ‘호랑지빠귀’ ‘내 안의 시인’ 등의 작품은 자신을 완전 연소한 자의 ‘진신 사리’와 같은 시편들이다. 자신의 상처를 과장하지도 않으며, 위선의 유혹에도 빠지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 즉, 시인은 “기교를 버려 단순해진 소리”가 “가장 맑은 소리”(‘호랑지빠귀’)라는 사실을 스스로 말하고 증명했던 것이다.
그래서 <해인으로 가는 길>을 읽는 시간은 결국 시인과 묵언의 대화를 나누는 교감의 시간이 될 수밖에 없다. 당신은 시인과의 대화 과정에서 이 시인이 꿈꾸는 “사람답게 사는 빛의 길”(‘미황사 편지’)을 생각하게 될 것이고, “생애보다 더 긴 기다림도 있는 것”(‘생애보다 더 긴 기다림’)이라고 한 시인의 행선(行禪)적 사유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문학 집배원’을 자임한 시인과 인터넷 교감을 나누고자 하는 독자라면 예술위원회(arko.or.kr)의 ‘도종환의 시배달’에서 시의 향기를 흠뻑 누려보아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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