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출판] 벌거벗은 삶의 풍경

등록 2005-03-09 00:00 수정 2020-05-03 04:24

<font color="darkblue">미국 미니멀리즘 소설의 거장 레이먼드 카버 단편집 <사랑을 말할 때…></font>

▣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IMAGE1%%]

무라카미 하루키니 김영하니 하는 잘 팔리는 작가들의 찬사에 힘입어 레이먼드 카버가 우리 곁에 찾아왔다. 문학동네는 초기 단편을 모은 <제발 좀 조용히 해요>에 이어 중기 단편집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정영문 옮김)을 펴냈다. 카버가 지금 한국 대중의 어떤 취향을 건드리고 있는지는 따로 얘기해봐야겠지만, 1970~80년대 미국 소설을 대표하는 미니멀리즘의 거장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카버의 소설들은 우리가 삶이라 부르는 환상의 틈새로 흘러나온 서늘한 악몽 같은 것이다. 차마 입에 담기 힘들지만, 그것은 악몽이 아니라 진실이다. 그래서 카버의 소설은 쓸쓸하다. 카버는 도대체 왜, 어떻게 쓸쓸한지 설명하지 않는다. 책에는 벌거벗은 삶의 우울한 풍경들만 가득 차 있다.

한 남자가 아내와 함께 쓰던 침대와 작은 탁자와 독서등과 텔레비전 등을 앞마당에 내놓고 술을 마신다. 소년과 소녀가 다가와 물건을 고르고 흥정을 붙인다. 남자는 그들에게 술을 권하고 전축을 틀고 춤을 추라고 말한다. 남자는 마지막으로 소녀와 춤을 추면서 목덜미에 와 닿는 그녀의 숨결을 느끼면서 이렇게 말한다 “침대가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어.”(<춤 좀 추지 그래?>) 아이는 생일에 교통사고를 당한다. 그는 천천히 집까지 걸어와 쓰러진다. 혼수상태에 빠진 아이가 깨어날까봐 어머니는 침상을 떠나지 못한다. 자신이 없으면 깨어날지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 집에 돌아와 목욕을 하는 순간 전화벨이 울린다(<목욕>). “개새끼! 네가 떠나게 되서 기뻐!”라고 소리치는 아내를 보며 남자는 짐을 꾸린다. 아내는 아기를 꼭 안은 채 문가에 서 있다. 남자는 아내를 벽쪽으로 밀어붙이며 아이를 안고 있는 손을 풀려고 한다. “안 돼!” 아내는 아기의 손목을 잡고 몸을 뒤로 기울였고 남자는 아기의 손을 다시 세게 잡아당긴다(<고요>).

미국이 경제 호황을 구가하던 1970~80년대에 카버는 이런 음울한 풍경을 직조해냈다. 그는 분노하지 않고 한탄하지도 않으며 극도로 단순화된 문장으로 자본주의가 수렁에 처넣은 인간의 삶을 그린다. “그래서, 도대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죠?”라고 묻는다면 그는 물론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이다.

카버의 인생 역시 소설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19살에 16살의 소녀를 임신시키고 결혼한 그는 곧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된다. 파산 신청을 두번이나 하는 등 끊임없는 가난과 알코올중독에 시달리다 아내와도 파경을 맞는다. 마침내 1977년 알코올중독 클리닉을 전전하던 그는 술을 완전히 끊고 창작에 전념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러나 그의 명성이 서서히 전미 대륙에 퍼져가던 1987년 49살의 나이로 폐암 선고를 받는다. 이듬해 두 번째 아내 테스와 결혼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카버는 숨을 거둔다. 행복은 아주 잠시 그를 찾아왔다 이내 떠나버린다. 아이의 분유값을 벌기 위해 전전하다 저녁에 위스키병을 들고 거실에 앉아 있는 카버가, 어떤 소설을 쓸 수 있었을까.

카버의 소설은 그렇게 삶을 날카롭게 잘라내서 그 어두운 단면들을 보여준다. 그는 솔직하지만, 솔직함만이 소설의 유일한 미덕은 아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의 소설에는 치밀하게 계산된 장치들이 보인다. 장면과 장면들이 한치의 어긋남 없이 맞물려서 어떤 이미지들을 구현하고 있다. 이것이 그를 거장의 반열로 올려놓았을 것이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