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환’의 시대, ‘증여’의 복원을 외치는
▣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강연을 정리한 책에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 그런 책들은 학문이 낮은 곳에 임하여 대중들과 함께 뒹굴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휘황찬란한 부르디외의 언어도 에서는 얼마나 다정다감한가. 대학 강의를 정리한 (나카자와 신이치 지음, 동아시아 펴냄)는 신화와 정신분석학과 마르크스를 관통하는 야심만만한 시도지만, 의외로 재미있다. 바로 강연이라는 형식의 힘이다.
이 책은 현대문명에 맞서 신화적 사고를 복원하려는(제3차 형이상학 혁명) 일본의 종교철학자 나카자와 신이치의 어마어마한 기획의 일부분이다. 신이치는 자신의 강의를 모두 5권의 책으로 엮는 ‘카이에 소바주’(야생의 사고) 시리즈를 기획했는데, 경제를 다룬 이 책은 순서상 세 번째다. 그런데 ‘사랑’과 ‘경제’라고?
신이치에 따르면 경제는 사랑과 반대 방향을 향하기는커녕,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쌍둥이다. 지은이는 경제와 사랑이라는 두 형제가 어째서 등을 돌리게 되었는지를 집요하게 묻는다. 경제는 증여와 교환이라는 두 가지 체계로 이루어진다. 증여의 체계에선 물건의 계량화된 가치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물건 자체보다는 주는 자와 받는 자의 정서가 중요하다. 선물을 주고받는 원리를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교환의 체계에선 주는 자와 받는 자의 정서는 전혀 고려되지 않고 오직 물건의 가치만이 계산된다.
신이치의 상상력은 여기서부터 작동된다. 그는 증여와 교환의 체계를 관통하는 근원적인 힘, 즉 ‘순수증여’라는 개념을 고안한다. 순수증여란 증여의 극한에서 나타나는, 아무런 대가나 보답을 전제하지 않고 증여 대상의 의지와 상관없이 쏟아지는 힘이다. 이것은 신이나 자연이라는 개념에 가깝다. 예컨대 농부에게 대지와 태양은 곧 순수증여다.
순수증여가 증여의 체계에서 모습을 보일 때에는 증식이 일어난다. 신석기 시대 사람들이 다양한 의식을 통해 신이나 자연의 순수증여를 느끼면, 그들이 서로 나누는 물건들은 더욱 소중하고 위대해지며 정서적 충만함에 가득차게 된다. 그러나 순수증여가 교환의 체계와 만날 때에 발생하는 것은 자본밖에 없다. 신이치는 증여와 교환과 순수증여라는 체계가 인간의 무의식과 신화적 사고 속에 이미 존재하고 있음을 거듭 지적한다. 여기서 각종 신화와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라캉이 인용된다.
지금 우리 문명의 문제는 교환이 증여를 완전히 억누르고 괴물 같은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의 극단적인 모습은 ‘세계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국가와 화폐가 인류의 마음 구조에 혁명적인 변화를 초래하고 기독교적 사고방식이 자본주의를 일으키면서 증여의 체계는 계속 과거로 침몰해간다. 신이치는 마르크스의 노동소외론을 끌어들여, 증여를 파괴하는 자본주의의 원리를 분석한다. 그렇다면 대안은? 사막과 같이 황폐한 현실에 눈을 뜨는 것이다. 그리고 증여의 원리를 복원시켜 자연과 진정한 대화를 하는 일이다.
신이치의 시도는 서구 문명에 대한 동아시아인의 새로운 사고를 보여준다. 그런데 이쯤 되면 막연히 감동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그의 ‘형이상학 혁명’과 신화적 사고의 복원이라는 또 하나의 이상주의는 티베트의 고원처럼 너무 높은 곳에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그것은 현실의 역동성과 다양한 차이들과 여기서 발생하는 저항의 가능성을 축소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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