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의 고통이 담긴 샤갈의 자서전
▣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마르크 샤갈. 이 러시아 화가의 젊은 날은 확실히 극적인 요소로 가득하다. 하긴 세계대전의 광풍이 휘몰아치던 시절, 파란만장한 삶을 살지 않은 유럽의 ‘유대인’ 예술가·지식인이라면, 범죄자일 것이다. “신발보다 더 자주 나라를 바꾸며” 미국까지 건너가 알량한 날품팔이를 하거나(브레히트), 국경에서 극약을 삼키는(베냐민) 일들이 비일비재하던 시절이지만, 샤갈의 삶에는 홀로코스트의 수난 외에도 러시아혁명의 열광과 상처까지 곁들여 있다.
샤갈의 자서전 이 (다빈치 펴냄)라는, 낭만성을 은근히 과시하는 제목으로 한국에서 출간됐다. 이 책은 1887년 샤갈이 태어난 해부터, 혁명이 일어난 뒤 쫓기듯 러시아를 떠난 1922년까지의 삶을 기록하고 있다. 비록 화가로서 명성을 얻기 전의 기록이지만, 샤갈의 그 멋진 환상들이 어느 우물에서 흘러나오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책은 샤갈과 샤갈의 그림들의 영원한 고향인 백러시아(지금의 벨로루시) 비테프스크에서 출발한다. 그 마을의 작은 집에는 청어도매상 점원으로, “황토빛 얼굴에 주름살이 가득한” 아버지와, “그의 그림, 그의 근원, 그의 슬픔”인 어머니가 살았다. 그리고 유대교의 엄숙한 기운이 그들을 감싸고 있었다.
가난한 유대인 집안의 장남에게 그림의 재능이 있다는 사실은 일종의 ‘재앙’이었다. 유대인을 차별하는 초등학교 분위기 속에서 말까지 더듬게 된 샤갈은 서서히 그림에 매혹된다. 급기야 아버지가 자포자기하듯 식탁 아래로 던진 27루블을 주워들고 페테르부르크로 그림 공부를 떠나기에 이른다. 더러운 공동합숙소에서 다음 끼니를 걱정하면서도, 그림에 대한 갈증은 풀리지 않았다. 결국, 용케 후원자를 구해 1910년 파리로 떠난다.
파리에서 그는 야수파, 입체파, 미래파 등 당대의 선구적인 유파들의 미학을 포식한다. 샤갈은 비로소 “러시아 미술이 서구를 뒤따라가도록 숙명적으로 강요받고 있음을, 왜 자신과 러시아 예술의 연대가 긴밀하지 않음을” 이해하게 된다. 샤갈의 새로운 그림들이 서서히 관심을 끌고 있던 1914년, 그는 30년 동안 절절한 사랑을 바친 아내 벨라도 만날 겸 고향을 방문했고, 세계대전과 연이은 혁명으로 8년 동안이나 러시아를 떠나지 못했다.
혁명의 속성은 너무 빨리 지상에서 사라져버린다는 것이다. 미래주의, 구성주의, 온갖 아방가르드가 목청을 높이던 해방의 순간은 곧 당의 지도라는 그림자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고향에 돌아와도 봄은 아니었네”라고 노래한 예세닌처럼, 샤갈은 “먹을 것이 없었다… 부끄러웠다. 내 실수였을까?”라고 중얼거리게 된다. 책의 첫 장에는 이런 어린 시절의 회상이 있다. “엄마, 무서워/ 무슨 일이니?/ 무서워요/ 가서 자야지/ 나는 천천히 내 침대로 돌아왔다.” 형식과 색채에 대한 도전적인 실험에도, 이 소심한 화가가 항상 사랑하는 여인과 고향 주변을 맴돈 이유는 이런 것이 아닐까.
미술관은 도시의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실용적 기능’도 갖추고 있다. 미술관은 일단 시원하다. 게다가 작품에 대한 약간의 이해가 있으면 카타르시스까지 덤으로 느낄 수 있다. 앞서 달리 회화전에 맞춰 달리의 일기를 펴낸 출판사는 이번에도 샤갈전 할인권을 끼워넣는 ‘깜찍한’ 마케팅 전략을 구사한다. 어쨌든 근사하지 않은가. ‘더위를 피해 샤갈의 마을로’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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