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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옛사랑에 대하여

등록 2004-06-24 00:00 수정 2020-05-03 04:23

문화평론가 이성욱씨가 유고집 에 남긴 60,70년대 기억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문화과학사), (문화과학사), (문학동네), (생각의 나무). 2002년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문화평론가 이성욱씨의 유고집 4권이 동시에 출간됐다. ‘고 이성욱 유고집 출간 위원회’(책임편집자 이동연)가 이씨가 남긴 컴퓨터 파일을 다 뒤져서 발자취를 모아낸 노력도 노력이거니와, 세 출판사가 각각 원고를 나누어 책을 펴냈다는(물론 이씨가 생전에 두 곳과 구두로 계약했다는 사정이 있었으나) 점도 매우 이례적이다. 문학뿐 아니라 대중문화, 스포츠, 도시공간 등 전방위적으로 촉수를 뻗었던 이씨의 지적 여정은, 시간의 절대량을 뛰어넘는다. 이 중 가장 길고 발랄한 제목을 가진 가 특히 눈에 띈다.

는 우리 대중문화가 싹트기 시작했던 60~70년대의 기억이자 의미 분석이다. 그런데 기억들은 지극히 개인적인 회고 방식으로만 떠오르고, 대중문화의 역사에 대한 에세이는 ‘매체용’으로 쓰여져 개론적인 분석에 멈추고 있다. 게다가 다양한 출처를 가진 글들이 70년대 대중문화라는 하나의 주제로 수렴되지 않고 어수선하게 흩어져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은 스스로 ‘리베로’를 자처했던 이씨의 다양한 지적 편린과 함께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유일한 책이다.

책의 1부인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를 읽으며 40대 이상의 독자들은 지은이와 함께 향수에 젖고, 젊은 독자들은 낯선 과거와 대면하는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와 같은 서부 영화, 박노식의 왼손잡이 시리즈와 70년대 청춘을 평정한 이소룡의 영화들. 이씨에 의해 우리 대중가요사의 한 정점으로 격상되는 김추자, 포크의 전성기에 반짝 빛났던 그 무수한 별들, 그리고 터져나오는 청년문화의 싹을 잘라버린 대마초 파동. “고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서울운동장입니다”라는 이광재 아나운서의 ‘명멘트’와 축구, 고교야구의 뜨거운 열기. 악동들의 성교육 교과서로 기능했던 의 색기발랄함. 이씨는 70년대 대중문화는 자신에게 ‘텍스트’가 아니라 ‘행복의 기억’이라고 고백한다. 그러니까 80년대 ‘과학’의 구호 속으로 들어가기 전, 미성년의 정서가 뿌리박고 있는 토양이라는 뜻이다. 70년대 대중문화는 그의 ‘몽고반점’이며, 이 글은 ‘비평’이 아니라 회고담이다. 그는 당시 권력의 무식한 철퇴에 떨어야 했던 문화의 그 앙상함마저도 자신의 일부로 끌어안는다.

책은 2부 ‘대중문화 100년의 계보학’, 3부 ‘근대 공간의 감각과 풍경’, 4부 ‘그때 그 시절’로 이어진다. 이 중 도시공간을 특유의 날카롭고 재기 넘치는 문체로 분석한 3부가 재미있다. 도시 빈민들의 요람인 미아리는 일종의 ‘게토’이며, 게토의 주민들은 이중적인 심리 속에 살아간다. 게토를 벗어나야 한다는 욕망과 벗어나면 위험하다는 공포다. 미아리에 도열해 있는 점집과 유곽이 그런 이중성을 실현한다. 이씨는 이런 식으로 공간에서 실현되는 욕망과, 그 욕망의 이중성을 분석한다. 카바레는 이른바 ‘아줌마’의 자아실현 공간이자, 아줌마에 대한 사회의 억압을 드러낸다. 경마장은 희망 없는 대중이 금기의 선을 넘어설 때 일어나는 ‘곤두섬’, 그 에로티시즘을 경험하는 공간이지만, ‘마주제’는 특권 계급의 문화적 자본이기도 하다. 보여지는 것과 보이지 않는 은밀한 배설을 가르는 기성세대의 이중성은 신사동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한 문화평론가가 죽었다. 그가 남긴 지적 유산은 너무나 많은 분야에 걸쳐 있고, 대부분 완성되지 못했다. 그래서, 그를 보내주기 전에 우리는 그를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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