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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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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파파 질문 “왜 몸놀이 30분을 권장하나요?”

온 가족이 몸, 블록, 노래로 노는 일상에 익숙한 스웨덴 아빠의 궁금증
등록 2020-05-02 16:09 수정 2020-05-05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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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에서 10년 이상 거주하는 한인 가정의 아빠입니다. 코로나19가 전세계를 휩쓰는 상황이라 재택근무를 한 지 두 달이 넘었고, 아이들과 집에서 보내는 시간도 부쩍 늘었습니다. 올가을이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첫째 아이는 좋아하던 축구와 수영 수업을 갈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평소 친구들과 어울리던 놀이터도 갈 수 없습니다. 코로나19 대유행이 얼마나 더 지속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새로운 일상에 알맞은 놀이가 우리 가족 모두에게 필요했습니다.

네 살 아이가 보드게임판 만져도 내버려둬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에는 사람들이 붐비지 않고 자전거로 갈 수 있는 자연휴양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온 가족의 자전거 나들이는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아직 어린 둘째는 아빠 자전거 뒷자리 유아 안장에 앉고, 엄마는 이번 기회에 새 자전거를 마련했습니다. 평소 자전거 타기를 좋아하던 첫째는 신이 났습니다. 실력도 금세 늘어서 이제는 보조바퀴를 떼고 고속 질주를 시작했습니다. ‘확찐자’가 되는 것을 걱정하는 엄마 아빠에게도 좋은 운동이 되었습니다.

휴식이 필요할 때면 집에서 챙겨온 간단한 다과를 풀고 가족과 함께 나눠 먹습니다. 그리고 몇 조각 남긴 빵을 물가의 오리에게 나눠주는 건 아이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자전거 나들이의 일부입니다. 따뜻한 봄 햇볕이 들이민 경치 좋은 물가에 빵을 먹겠다고 몰려드는 새들과 마냥 신난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코로나19로 생긴 근심이 잠시나마 사라집니다.

하지만 항상 자전거를 타고 밖에 나갈 수는 없습니다. 스웨덴의 봄은 한국의 늦가을 같아서 날씨가 허락되지 않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그럴 때면 우리 가족은 식탁에 둘러앉아 보드게임을 합니다. 처음에는 다소 어려워했지만, 지금은 첫째 아이가 대부분 게임을 이깁니다. 물론 이제 네 살밖에 안 된 둘째 아이가 게임 규칙을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게임판을 뒤집어놓지 않는 이상 아이가 이것저것 만지도록 내버려둡니다. 어린아이라고 해도 게임이 계속 진행되는 것을 보고 싶어 하기에 게임 자체를 엉망으로 만들어놓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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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연주, 엄마의 춤 따라 하는 아이들

집에 함께 있으니 서로를 관찰하고 서로를 따라 하게 되었습니다. 아빠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아이들은 어느새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를 어설프지만 건반으로 하나씩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엄마가 TV 앞에서 줌바댄스를 따라 하던 것이 지금은 온 가족의 댄스타임이 되었습니다. 가족이 함께 요리하고 책을 읽고 장난치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블록 조립을 마치고 나면 그대로 방치되던 레고 시리즈는 아빠의 놀이 참여로 새로운 장난감이 되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블록을 쉽게 찾을 수 있게 종류별로 나누고 나니, 아이는 본인만의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레고의 재발견이라고 할 만합니다. 코로나19가 가져온 새로운 일상은 그동안 시간이 없어 생각에만 머물던 일을 아이와 함께 실천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도 언제부턴가 유년기에 접어드는 첫째 아이에게 말로 하는 소통만을 강요했습니다. 어른들 사이에도 문자만 주고받다가 오해가 생기는 일이 흔합니다. “왜 그랬는지 설명해볼래?” “미리 물어보고 했어야지?” “그렇게 설명했는데 이해가 안 되니?” 이런 저의 물음이나 재촉이 아이에겐 불통의 장벽이 됐을지도 모릅니다. 아이는 말은 안 했어도 이미 온몸으로 설명하고 있던 것을, 제가 알아채지 못했다면 그건 아이 잘못이 아닙니다. 그래서 아이들과 몸을 맞대며 뒹구는 시간이 무척 소중합니다.

같이 침대에서 뒹굴고 같이 웃고

한국의 몸놀이 전문가들은 하루 30분 이상 몸놀이를 권장합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절대 부족한 엄마 아빠에게는 꼭 필요하겠지만, 일상에서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며 스킨십이 많은 대부분의 스웨덴 부모에게 이런 특별한 조처는 크게 필요하지 않습니다. 아침에 부모를 깨우는 아이를 따스하게 마주하고, 침대에서 같이 뒹굴고, 고사리 손으로 칫솔을 흔드는 아이를 꼭 안아주고, 아이 손을 잡고 함께 춤추고, 같이 울고 웃고, 잠들기 전 품에 안긴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일상에 몸놀이가 스며 있습니다.

코로나19라는 고난 앞에 가족이 있어 버틸 수 있고, 그 고난의 끝에 더 끈끈해진 가족이 있기를 바랍니다.

글·사진 김건 <스웨덴 라떼파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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