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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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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래시'를 멈춰라

문단 내 성폭력 폭로 돕다 ‘무고’ 낙인 찍힌 탁수정씨 인터뷰…

“누구도 나를 무고 혐의로 고소하지 않았다”
등록 2018-03-13 17:56 수정 2020-05-03 04:28
탁수정 조합원은 ‘#문단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 때 가해자로 지목된 2명에게 모두 4건의 명예훼손 소송을 당했다. 둘 다 시인이다. 이 둘은 트위터에 지금도  ‘(탁수정을) 고소한다’는 글을 올리고 있다.

탁수정 조합원은 ‘#문단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 때 가해자로 지목된 2명에게 모두 4건의 명예훼손 소송을 당했다. 둘 다 시인이다. 이 둘은 트위터에 지금도 ‘(탁수정을) 고소한다’는 글을 올리고 있다.

2016년 가을, 연인원 1천만 명의 시민이 한국 사회의 적폐 청산을 요구하며 촛불을 들 때 여성 혐오에 찌든 문화예술계 인사들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입은 이들이 해시태그 ‘#○○계_내_성폭력’ 운동을 시작했다. 그중엔 유독 #문단_내_성폭력 피해자가 많았다. 유명 소설가부터 중견 시인 등 10여 명이 가해자로 지목됐다. 이들 중 상당수가 문제 제기된 성폭력·성희롱을 인정하는 취지의 사과문을 올렸다.

이후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고 ‘촛불정권’이 탄생하는 것 같은 기적이 문단에서도 일어났을까.

가해자로 지목됐던 문인들 ‘피해자’ 대접

답부터 말하자면 문단에는 오히려 과거로 퇴행하는 엄청난 ‘백래시’(반격)가 시작됐다.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뜨는 ‘탁수정 무고’라는 연관검색어는 ‘#문단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이하 해시태그 운동) 이후 벌어진 백래시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문구다. 탁수정(34) 전국언론노조 출판지부 조합원은 해시태그 운동 당시 트위터에서 성폭력 피해 경험을 토로하는 글이 올라오면 이 사실을 알리고, 피해자가 원하는 성폭력 고소 등을 지원한 사실상의 ‘활동가’였다. #미투 이후 여러 언론이 문단 내 성폭력 피해자들을 인터뷰하기 위해 찾은 이도 탁수정 조합원이었다. 2월7일 JTBC 에 서지현 검사 이후 두 번째로 나온 #미투 관련 인물이 탁수정 조합원이었던 이유가 여기 있다.

현재 탁수정 조합원에게는 허위 사실을 지어내 신고하는 범죄를 일컫는 ‘무고’(형법 제156조)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다. ‘안티페미협회’ 같은 이름을 내건 사이트나 블로그에서 탁수정 조합원은 이미 ‘무고한’ 남성 시인들을 성범죄자로 내몬 ‘가해자’로 낙인찍혔다. 반대로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됐던 문인들은 ‘피해자’ 대접을 받고 있다. 여성 혐오 사회에 대한 힘겨운 폭로가 오히려 여성 혐오를 강화한 백래시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은 2월21일과 26일 두 차례 탁수정 조합원과 얼굴을 마주했다.

인터넷 검색을 하면, ‘탁수정 무고’라는 연관검색어가 보인다. ㅂ시인이 이 흐름을 주도하는 것 같다.

ㅂ시인은 나를 무고 혐의로 고소한 적이 없다. 해시태그 운동 때 가해자로 지목된 누구도 나를 무고 혐의로 고소하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무고는 성폭력 피해 사실을 신고한 피해자에게 검사나 가해자가 역고소를 하는 것이기에, 나는 무고 역고소 대상이 될 수 없다. 나는 피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지지자로 활동했기 때문이다. ㅂ시인 자신이 성폭력 혐의로 고소도 당해봤고, 무고로 역고소도 해봤기 때문에 이런 부분을 모르진 않을 거다. 그런데도 내게 무고죄라는 딱지를 붙이는 의도가 있다고 생각한다.

“잠을 잘 수도 음식을 삼킬 수도 없었습니다”

탁수정 조합원을 ‘무고’로 엮는 대표적 인물이 ㅂ시인이다. 그가 2월19일 블로그에 올린 ‘탁수정(책은탁)이 무고(허위 사실 유포)를 행했다는 사실을 입증해주는 판결문입니다’라는 글을 보자. ㅂ시인은 “원고가 전○○을 감금, 성폭행, 몰래카메라를 이용한 협박 등을 하였다는 허위의 글을 게시하여 원고의 명예를 훼손하였고… 피고는 원고에게 위와 같은 불법행위로 인하여 원고가 입은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시한 판결문 일부를 화면 갈무리한 것을 첨부했다. ㅂ시인은 “(탁수정이) 무고녀가 아닌 것처럼 행세하고 있”다며 “이게 무고가 아니면 어떤 게 무고냐”고 적었다. 원고(ㅇ시인), 피고(탁수정 조합원), 전○○ 등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는 판결문은 그 자체로 이해가 어렵다.

ㅂ시인이 무고의 근거라면서 올리는 판결문은 무엇인가.

해시태그 운동 때 전○○가 자신이 ㅇ시인으로부터 감금, 성폭행, 몰래카메라 피해를 당했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피해 지역이 섬이었다. 얼른 도와야 한다는 마음에 ㅇ시인 실명을 공개하고 지지를 모았다. ㅇ시인은 전○○가 올린 피해 사실이 허위라며, 그걸 공유한 나 역시 허위 사실 유포로 형사고소했고, 민사소송도 냈다. 결국 내가 허위 사실을 유포한 것으로 인정돼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고, 민사소송에서는 700만원의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됐다.

#미투 국면에서 피해자들은 손석희라는 걸출한 언론인이나 보도 경쟁이 붙은 기자들을 통해 비교적 ‘안전하게’ 폭로를 한다. 2016년 가을 국정 농단 사태와 맞물려 진행된 해시태그 운동은 달랐다. 피해자가 폭로한 피해 경험에 대한 팩트체크나 검증은 오로지 실명을 걸고 피해자들의 폭로를 도운 탁수정 조합원 개인에게 떠넘겨졌다. 전○○ 사건에 대해 탁수정 조합원이 쓴 입장문(2017년 3월14일)에는 이런 상황에 대한 고통이 고스란히 담겼다. “살면서 처음 겪는 일들이 매일매일 일어났습니다. 잠을 잘 수도 음식을 삼킬 수도 없었습니다. 남아 있는 일꾼들이 앞으로도 무슨 실수를 할지 모릅니다. …많이 두렵습니다.”

문제는 당시 해시태그 운동이 전개된 특성에서 비롯된 시행착오가 해시태그 운동 전반을 훼손하는 데 악용된다는 점이다. ㅂ시인은 지난 3월4일 트위터에 탁수정 조합원의 트위터 게시글(#문단_내_성폭력 관련 서로서로 돕고 있는 단톡방에서 한 분이 이런 얘기를 하셨다. ‘○○ 선생님의 응원 댓글에 이번 일로 친구가 많이 생겼다고 답글 달았어요. 큰일을 넘기면 넘길수록 주변이 좋은 쪽으로 정리되더라고요.’)을 공유하면서 “무고, 모의 혹은 고소, 선동 혹은 집단 허위 사실 유포 공모를 한 단톡방에 대해서 탁수정이 직접 작성한 트윗”이라고 적었다. 그는 탁수정씨를 일컬어 “너는 범죄 조직의 우두머리”라고도 했다.

탁수정 조합원을 무고로 몬 일과 관련해 ㅂ시인은 과 한 통화에서 “탁수정은 무고가 아니다. 제가 어디에 무고라고 썼냐”고 부인했다. 기자가 게시글을 제시하자 그는 “허위 사실 유포 범죄자는 무고가 아니냐”고 물었다. 글을 읽는 독자들이 무고를 어떤 의미로 받아들일 것 같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자세하게 본 사람들은 사회적인 것으로 보겠고, 대충 본 사람들은 법적인 것으로 볼 수도 있다”면서 “왜 나에게만 엄격하냐?”고 말했다.

“ ‘무고’ 누명을 뒤집어쓰는 게 실시간 중계” ㅂ시인은 왜 탁수정 조합원을 공격하나.

나는 내가 아니라 내가 하는 활동을 훼손하려는 것으로 본다. 2017년 들어 해시태그 운동이 한풀 꺾이고 피해자들이 대거 역고소를 당하면서 지금 남아 있는 사람이 없다. 앞장섰던 내가 ‘무고’라는 누명을 뒤집어쓰는 게 실시간 중계되는데, 누가 나오겠나. 내가 실수하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것을 안다. 내가 꿋꿋하게 버텨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ㅂ시인은 해시태그 운동 당시 서너 명의 여성에게 가해자로 지목됐다. 그를 강간 및 강제추행으로 고소한 사건은 대전지검에서 2017년 9월 ‘무혐의’로 불기소 처분이 났다. 검찰은 강간이 아니라 합의하에 성관계를 했다고 판단했다. 이후 와 등에서 ㅂ시인의 무혐의 처분 소식을 전하며 “억울하게 누명을 썼다”고 보도했다. ㅂ시인에 따르면, 그가 역고소한 여성은 2명(ㄱ씨와 ㄴ씨)이다. ㄱ씨는 수원지검에서 무고와 명예훼손이 인정됐다. ㄴ씨는 ㅂ시인이 제기한 민사소송에서 최근 ‘ㅂ시인과 본인의 만남에 서로 오해가 있었던 것으로 강제적 성관계가 아니었다’는 취지의 합의문을 썼다. ㄴ씨와 관련해 ㅂ씨가 알리지 않은 사실이 있었다. 2017년 7월 ㄴ씨의 명예훼손 혐의를 인정해 검찰이 벌금 30만원에 구약식기소(피의 사실이 인정되지만 그 사실이 경미해서 정식재판이 필요 없을 때 검사가 내리는 처분)하자, ㄴ씨는 정식재판을 청구했다. 그런데 정식재판이 열리기 직전 ㅂ시인이 고소를 취하해 실제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 ㅂ시인은 자신의 블로그에 2017년 7월 벌금형 처분을 알렸지만, ㄴ씨의 정식재판 청구 사실이나 자신의 고소 취하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다. ㅂ시인은 에 “12월께 재판 당일 검사 측 증인으로 출석해야 하는데 여성의 얼굴을 보는 것 자체가 끔찍했다. 여성을 맞대면해 폭로하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웠다”며 “고소 취하한 것까지 말해야 하냐?”고 말했다.

어떻게 해시태그 운동을 하게 됐나.

쌤앤파커스 사건 이후 회사를 그만두고 출판업계 성폭력 공론화에 힘을 보탰다. 트위터 팔로어도 많아졌다. 그러다 해시태그 운동이 터졌고, 내가 팔로어가 많으니까 피해 글을 공유하게 된 거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피해자들과 소통하게 됐고, 그들을 지원하게 됐다.

백래시를 피하기 위해 넘어야 할 산

탁수정 조합원은 (김난도), (혜민 스님)과 같은 대형 베스트셀러를 출판한 ‘쌤앤파커스’의 마케터 출신이다. 서지현 검사나 김지은 정무비서처럼 직장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하는 ‘업무상 위력’에 의한 성폭력 피해를 당했고, 이를 2013년 7월 공론화했다. 쌤앤파커스의 ㅇ상무는 17개월 동안 수습사원으로 일한 그를 정규직 전환을 위한 면담을 한다며 불러내 성추행한 사건이었다. 탁수정 조합원은 그를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으로 고소했으나, ㅇ상무는 검찰로부터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동료 직원 6명이 탄원서를 쓰고, 탁수정씨를 법률 지원한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의견서를 제출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항고와 재정신청까지 모두 기각됐다.

한 동료의 탄원서는 탁수정 조합원이 5년 전 이미 #미투를 했던 사실을 담담히 전한다. “(그는) 해당 사건이 벌어진 후에도 정규직이 되어 당당한 딸이자 친구 노릇을 하게 되었다는 기쁨 하나로 엄청난 상처를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 견뎌왔다. 그러다 본인과 비슷한 성희롱 피해로 아파하는 동료의 고민을 접하곤 부끄러움을 모르는 가해자의 범죄 사실을 알리기 위해 (피해 사실을) 전 조직원 앞에 먼저 드러내게 되었다.” #미투 이전의 역사 속에 피해자로, 일꾼으로 있었던 탁수정 조합원에게 결국 ‘무고’라는 꼬리표가 붙은 비극은 진정 누구의 책임인가.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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