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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미투, 세상을 바꾸다

흙수저 20대의 여혐?

미투 운동 지지하나 공정성 내세우며 취업 역차별 운운하는 20대 남성들의 편견…
적극적 반여성주의 담론화 우려

제1203호
등록 : 2018-03-15 01:34 수정 : 2018-03-19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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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29일 서지현 검사의 폭로로 시작된 ‘#미투 열풍’이 거세다. 여기에 3월5일 민주주의와 인권을 강조하던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성범죄 의혹이 불거지며 한국 사회는 근본적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현재 미투 운동으로 치부가 드러나는 성범죄 가해자는 대부분 ‘권력을 가진 40~60대 남성’이다. 문화·정치·교육계 등의 분야에서 남성 권력자들은 여성 피해자의 생사여탈권을 쥔 채 입을 틀어막아왔다. 그렇다면 한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20대들은 이 구조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한겨레21>은 이들이 가진 젠더 의식을 들여다봤다.

“먹고 싶은 것만 골라 먹는 뷔페니즘”

“(취업에서는) 혜택을 받으려고 하면서 정작 힘든 일은 하지 않는 여성들이 있어요. 뷔페니즘이라고 하는데, 먹고 싶은 것만 골라 먹는다는 뜻이에요.”

취업을 앞둔 대학생 김성현(25·남·가명)씨는 취업 시장에서 남성이 여성에게 역차별당한다고 말했다. “취업 시험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주는 가산점에 반대해요. 예를 들어 경찰을 뽑을 때 여성이라고 체력 점수에서 가산점을 주는데, 이건 역차별이에요. 신체 차이는 분명하잖아요. 범죄자를 잡아야 하는데 체력적으로 능력 있는 사람을 뽑는 게 맞죠.”

막 대학에 입학한 유성진(20·남·가명)씨 생각도 비슷했다. “남자들은 일단 군대에 가잖아요. 군대에 가서 사회생활에 필요한 것을 배우긴 하지만 취업에 도움이 되진 않아요. 거기서 차별이 생기는데 여성 취업에 더 많은 지원을 해주면 군대 갔다온 남자들과 차이가 벌어질 것 같아요.”

김씨는 여성에 대한 편견을 스스럼없이 나타내기도 했다. “여성이 보편적으로 책임감이 떨어지는 것 같아요. 남자들은 군대에 갔다와서 그런지 몰라도 싫은 일도 일단은 하는 경향이 있는데 여자들은 버거운 업무가 주어지면 얼굴에 티가 나요.” 그는 공무원인 친구가 들려주는 이야기도 다르지 않다고 했다. 여성이 숙직에서 배제되는 건 역차별이라는 것이다.


20대 남성은 자신들을 여성 우대 정책으로 역차별받는 피해자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런 시각은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한겨레21>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은 1월 말 여론조사 전문기관 글로벌리서치와 함께 전국 19~59살 성인 남녀 2천 명에게 온라인 심층 여론조사를 했다(자세한 설문조사 결과는 위 그래픽 참조).

그 결과 흥미로운 점을 관찰할 수 있었다. “정부는 여성친화적인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는 항목에 응답자 전체의 37%가 ‘반대’(찬성 63%)한 데 비해, 20대 남성은 절반이 훨씬 넘는 63%가 ‘반대’(찬성 37%)했다. 연령과 성별을 통틀어 20대 남성의 반대가 가장 높았다. 20대 여성과 비교했을 때 차이는 더 극명했다. 같은 질문에 20대 여성의 찬성 응답은 76.9%(반대 23.1%)였다. 여성 친화 정책 반대는 수입이 적을수록 높았다. 20대 가운데 자신이 경제적으로 ‘하층’이라고 대답한 이들의 반대(55.4%)가 가장 많았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차별받고 있나”라는 질문에도 모든 연령과 성별 가운데 20대 남성의 ‘차별 없음’이 37.4%로 가장 높았다. 전체 평균은 ‘차별 없음’ 21.6%, ‘차별 있음’ 78.4%였다.

‘성폭력을 저지르는 힘 있는 남성’

지난해 1월24일 충남 논산시 육군훈련소에서 신병들이 수류탄 투척 훈련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은 이들의 지배적 정서를 ‘억울함’이라고 분석했다. 한 센터장은 “부자 부모도 없고 일자리는 적은데, 군대를 다녀오니 동년배 여성에게 치이고, 때로는 외국인 노동자와도 경쟁해야 한다. 각자도생이 만연한 사회에서 (20대 남성이 느끼는) 공정성에 대한 불만은 (여성과 외국인 등에 대한) 혐오 창궐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이 느끼는 억울함의 정서는 뭘까. 한국 사회에 만연한 ‘과잉 능력주의’에서 찾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권일 사회비평가는 “(현재 한국 사회엔) 능력에 따라 자원을 분배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능력주의가 과잉된 상태이다. 실질적인 평등보다는 형식적인 공정함이 뿌리 깊게 내면화돼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2016년 김경근 고려대 교수가 실시한 ‘중·고등학생의 능력주의 태도 영향 요인에 대한 구조방정식 모형 분석’을 보면, ‘장학금을 줄 때 가정 형편보다 성적을 고려해야 한다’는 항목이 2.436점으로 중간값(2점) 이상을 차지했다. 과잉 능력주의에 대한 믿음이 강할수록 여성뿐 아니라 사회적 배려 계층이나 소수자를 위한 정책이 뿌리내리기 힘들어진다는 점에서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20대 남성이 체화한 과잉 능력주의는 ‘각자도생의 사회구조’ 속에서 발현된 측면이 크다. 공동체 의식이 사라진 상황에서 죽지 않으려면 각자 알아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논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큰 영향을 끼친 게 혹독한 입시제도 등 교육 환경이었다.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는 “이들은 혹독한 입시교육 속에서 역사적·사회적 존재로서 생각하지 못하도록 자라왔다. 남녀 모두 불안에 절어 죽느냐 아니냐의 상황에 몰려 있다. 특히 금융위기 이후의 세대들은 스펙 쌓느라 세상을 전혀 모르고 컸다”고 설명했다.

20대 남성의 ‘성평등’ 인식과 관련해 주목할 만한 또 다른 특징은 ‘미투 운동’에 대한 이들의 시선이 상당히 진보적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미투 운동을 세대 차이로 인식했다. 김성현씨는 “미투 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고 했다. “이전 세대들은 가부장적이고 인권 의식도 낮았어요. 그런데 지금의 10~20대는 변화된 사회에서 자랐어요. 여성들이 (미투 운동으로) 목소리를 내주는 것은 사회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고 봐요.”

기성세대가 여성을 독립된 인격체로 보지 않고 ‘대상화’하는 데 길들여진 것과 달리, 이들은 사회화 과정에서 이런 인식에서 해방된 세대다. 또 치열한 취업난 속에서 자신을 사회의 약자로 판단하기에 기득권을 차지한 기성세대와 자신은 다르다고 여기는 것이다. 신진욱 중앙대 교수는 “20대 남성의 관점에서 봤을 때 그들은 그런 종류의 권력을 가진 적도 없고 가질 수 있을 거라고 상상도 못한다. ‘성폭력을 저지르는 힘 있는 남성’은 자기 일이 아니라고 인식한다”고 분석했다.

공동체 사라진 뒤 각자도생 논리

그렇다면 이들의 ‘미투 운동 지지’와 ‘남성 역차별 인식’ 사이에 나타나는 간극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김홍미리 여성주의 연구활동가는 “이들은 여성을 이분법적으로 생각한다. 차별받지 않고 당당한 여성과 매우 피해자스러운 여성으로 나누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20대 남성은 피해자가 아닌 여성이 성평등을 얘기하면 ‘역차별’로 받아들이지만, 피해자는 ‘불쌍한 여자’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결국 20대 남성은 ‘성평등 의식’을 갖고는 있지만, 여성이 자신의 ‘경쟁자’로 떠오르는 순간 공격적 태도를 보인다. 박권일 비평가는 “여성에 대한 진보적 인식도 ‘먹고사니즘’이라는 현재의 생존 경쟁과 맞물렸을 때 여성 혐오 형태로 발현된다. 본인은 여성 혐오라고 인식하지 못한 채 능력주의로 정당화하지만, 사실은 그것이 바로 여성 혐오다”라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 젊은 세대 내부의 성평등을 둘러싼 갈등은 과거와 다른 측면으로 다뤄야 한다. 미투 운동으로 기성세대가 저질러온 성범죄가 줄어든다 해도 새로운 세대 내부에서 생겨나는 또 다른 충돌 요소가 사회 밑바닥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신진욱 교수는 “경제적 차원의 박탈감이나 불안 요소가 끼치는 영향이 커질수록 20대 남성의 인식이 왜곡된 방향으로 나갈 수 있다. 이주노동자나 여성주의가 공정성을 해친다고 생각하는 ‘일베’의 논리처럼 더 적극적인 반여성주의 담론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20대 남성 스스로도 이를 심각한 사회문제로 인식했다. 김성현씨는 “기본적 남녀 차이는 받아들여야 사회가 돌아간다. 그러나 완전히 반반으로 하자는 요구가 올라오니 진흙탕 싸움밖에 안 된다. 머지않아 큰 사회문제로 다가올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진정한 공정성 파괴될 위험

새로운 세대 내부에서 싹트는 갈등 요인은 성별 말고도 많다. 대표적인 게 ‘금수저’ 논란을 불러온 부모의 경제력이다. 그 밖에 어쩔 수 없는 타고난 재능 차이, 장애 유무에서 오는 격차를 완화하려는 사회적 배려를 ‘경쟁’과 ‘공정성’의 논리를 들어 배척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는 중이다. 한귀영 센터장은 이를 “우리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이자 뇌관”이란 말로 표현했다. 미투 운동을 계기로 한국 사회가 깊숙이 들여다봐야 할 또 다른 과제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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