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임당(申師任堂)처럼 여성의 이름에 ‘집 당(堂)’을 쓰는 것은 좋은 의미가 아니다. 여자는 (남자의)집이라는 뜻이다. 여성의 성기를 뜻하는 영어의 ‘버자이너(vagina)’의 어원도 ‘칼집’이다. 칼이 무엇이겠는가. 한국어 ‘질(膣)’에도 ‘방(室)’이 들어간다. 이승만을 짝사랑했던 초대 상공부 장관이자 중앙대학교 설립자인 임영신의 호는 아예, 승당(承堂)이었다.
미투, 보통의 경험이자 여성의 일상오랜 가부장제 문화에서 여성은 독립된 주체가 아니라 남성의 공간, 소유물로 여겨져왔다. 현대사회에서도 남성이 자기 집을 방화하는 것은 중죄지만, 아내를 구타하다 살해하는 것은 우발적 행위(과실치사)로 여겨진다. 여성이 공간으로 비유되고 실제로 공간일 때 남성이 여성을 ‘만지고, 부수고, 들어가는’ 행위는 놀랍지 않다.
그러나 지금 한국사회의 미투(“Me, Too”, 나도 그런 일을 겼었다)운동은 주목할 만한 현상임에 틀림없다. 여성에 대한 폭력은 수천년간 인류의 유산이었는데, 왜 이제 와서 말하기가 시작되었을까. 1987년 ‘민주화’ 운동 때는 미투가 없었을까? 촛불 혁명 때는 없었을까? 물론, 있었다. 하지만 “사소한 일로 대의를 그르친다”, “나중에 해결하자”, “그 분(가해자)의 심기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 공론이었다. 심지어 피해자들은 ‘안기부 프락치’라고 비난받았다.
사건의 기간과 내용은 생략하고 한 여성의 일생을 적어본다. 여섯 살 때 사촌 오빠, 여덟 살 때 방문 전기검침원, 초등학교 6학년 때 문방구 아저씨, 중학교 때 선생님, 대학 시절 동료와 선배... 20대 초반, 한 손엔 과도를 한 손으로는 바지를 내리려는 남자, 만취한 그는 두 가지를 한꺼번에 못했고 여자는 마구 뛰었다. 달빛 아래 번쩍이던 그 칼날. 나의 이야기다. 이 경험은 내가 여성학을 공부하게 된 계기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나서야 폭력임을 알았다. 여성들이 겪는 대부분의 차별과 폭력은 정확한 통계가 불가능하다. 개념이 합의되어 있지 않으며, 나처럼 대부분 사후(事後) 해석으로‘만’ 인지 가능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왜 이제 와서 고발하느냐”는 남성 사회의 신문(訊問)에 대한 대답이다.
페미니즘을 접했다고 이런 일이 멈추는 것도 아니다. 며칠 전에는 심야 광역버스 안에서 당했다. 다만 스스로를 비난하지 않았을 뿐이다. 나는 지금 미투 참여를 고민하고 있는데, 최근 가해자들은 유명인이라서 괴롭다. 그들과 벌일 진흙탕 싸움이 엄두가 나지 않고, 참으려니 억울해서 ‘암에 걸릴 것 같다’. 이것이 보통의 경험, 여성의 일상이다.
지금 여성들은 모두 마음속으로 미투를 외치고 있다. 때문에 나는 미투가 “대한민국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식의 언설에 반대한다. 우리가 각성해야 할 지점은 미투보다 여성의 현실이다. 내가 매번 경찰에 신고했다면 문제가 해결되었을까. 아마 “미친 여자”로 취급받았을 것이다.
미투로 유명인이 ‘몰락하는 것보다’ 여성의 고통이 실질적으로 ‘해결’되길 바란다. 올해 여성가족부 예산은 전체 정부 예산의 0.18%. 정부와 언론은 이미 낙인찍힌 유명인을 비난하면서 역겨운 기사를 쏟아내지 말라. 미투를 지지하는 ‘척’ 하지 말라. 여야 간 정치 공방으로 몰고 가지 말라. 여성 관련 예산부터 올리기 바란다. 남성들이 저지른 범죄를 왜 여성이 미투 운동으로 해결의 짐까지 져야 하나?
미투, 가장 오래된 문명의 폭발여성 혐오, 여성 살해(femicide), 여성에 대한 폭력(violence against women)은 문명과 동시에 시작되었다. 남성은 여성, 노예, 자연을 자기의 외부 즉 타자(the others)로 규정하고 자신을 유일한 인간으로, 역사의 주체로 구성해왔다. 이들은 여성에 대한 폭력을 전통, 신의 명령, 자연의 법칙 등으로 정당화해왔다.
국제사회에서 남한은 아내구타와 여아낙태로 유명한 나라다(최근에는 성형시술로 이동하고 있다). 지난 30여 년 동안 여성의 공적 영역 진출이 늘어났지만 그 진출의 질은 낮았다(비정규직 등). 주로 집안에서 행해지던 폭력은 공/사 영역 넘나들며 모든 곳에서 희롱, 추행, 강간 등 다양한 형태로 가해지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왜 지금 미투인가. 나는 촛불 실천의 주체적 경험이 ‘시민으로서의 여성 정체성’을 획득하는데 크게 작용했다고 본다. 여성은 더 이상 이전의 ‘성역할 담당자’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2016년 강남역 살인 사건은 여성의 자각을 형성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SNS의 등장은 1인 매체로서 여성에게 유리한 국면을 조성했다. 게다가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구조적’ 공정성에 대한 희망이 완벽하게 좌절되자, ‘일상의’ 공정성에 대한 욕구가 엄청나게 높아졌다(김보름 선수 사건을 보라). 이제, 여성들은 전 세대 여성처럼 참지 않는다.
물론, 가장 중요한 계기는 서지현 검사다. 나는 여성들이 국가보다 한 사람의 여성, 서지현 검사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는 심정에서 미투를 시작했다고 본다. 국가는 용기도 의지도 없지만, 서 검사에게는 이 두 가지를 모두 기대한 것이다. 이것은 그녀가 검사라는 사실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문제다. jtbc 뉴스룸에 출연했던 여성들이 각자 재현한 ‘피해자 이미지’가 다르다는 사실을 생각해보자. 이 문제는 남성 사회가 원하는 피해자 이미지에 가까울수록 피해의 진실성이 확보되는 복잡한 이슈이기 때문에, 이글에서는 생략하지만 이후 중요하게 논의되어야 할 주제다.
서지현 검사의 증언에 대한 반응 중에 그럴 듯하지만 남성 중심적 시각의 대표적 사례를 보자. “최고 권력 집단(검찰)에 속한 피해자가 자기 삶을 걸고 방송에 나와 역시 최고의 담론 권력을 쥔 앵커와 마주 보고 증언할 때라야 피해자의 목소리가 겨우 가닿는다”(은유, 2018년 2월 3일자). 남성 사회에서 성폭력 사건 해결이 어려운 이유는 여성의 피해 사실 자체가 아니라 가해 남성이 누구인가에 따라 팩트가 좌우되기 때문이다. 여성 검사가 남편에게 맞을 때는 뉴스룸에 나올 수 ‘없다’. 남성 사회의 관심사는 피해자가 누구인가가 아니라, 자기들에게 타격이 있는가 여부이다. 비슷한 시기, 도 ‘더욱 없는 여성들이 당하는 현실’에 대한 내용을 실었다. 이는 모두 피해자의 대변인을 자처하는 비윤리적 재현이다.
분야별 가해 구조가장 광범위한 피해는 ‘~ 계(界)’의 유명인의 관행화된 절대 권력이 ‘아니라’ 거리에서 버스 안에서 가정에서 여성이 겪는 ‘일반인’의 폭력이다. 사실, ‘시인 고은’의 폭력을 경험한 여성이 전 국민의 몇 %나 되겠는가. 유명인의 가해만 강조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궁금해 하는 어느 분야에서 성폭력이 많은가, 역시 해명되어야 할 문제다. 결론부터 말하면, 발생률은 은폐와 해결 구조에서만 차이가 날 뿐 특정 분야가 유난히 많거나 ‘깨끗하다’고 볼 수 없다. 검찰발 미투는 사회 전 영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김어준씨처럼 불필요한 혼란을 조장하는 자들이 있어도 “우리의 마음은 지지 않을 것이다”. 피해와 그 인식은 모두 몸의 경험으로서 잊혀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글 와중에 사족이지만, 금태섭 의원에게 감사한다).
여성에 대한 폭력은 검찰, 경찰, 군대, 공무원, 일반 회사, 문화예술, 대학, 의료사회, 정당, 종교계, 스포츠계, 사회운동, 출판계... 예외가 없다. 젠더(남성 가해자)라는 인구학적 특징이 유일한 공통점이자 특성의 전부다. 남성과 여성의 권력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이라는 것이다. 이는 일반적인 위계와는 다른 성격의 권력이다. 그래서 군대에서 남자 ‘병장’이 여성 ‘하사’를 강간할 수 있고, 대학 강의실에서 남‘학생’이 여‘강사’를 조롱할 수 있다. 가해 남성의 공통점이 한 가지 더 있다. 자신의 범죄 행위를 개인적 이유로 인식, 설명하는 경우는 없다는 점이다. 자신은 대의의 화신이고 자기 행동은 예술, 국가안보, 학문, 신, 자연의 법칙, “너의 미래”를 위한 것이다.
문학에서 작품과 작가의 인성 문제는 오랜 논쟁거리 중의 하나지만, 나는 이 논쟁이 다른 각도로 이동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술성에 대한 판단 자체가 경합적임을, 정치적 산물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포이에시스(제작)에 이르는 과정과 해석이 예술 자체로 인식되어야 한다. 피해자가 수십 명에 이르는 ‘예술가’들의 정신 상태는 “모든 여자는 나를 위해 태어났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예술은 현실(present)을 재현(re-present)하는 과정에서의 윤리적, 정치적 고민의 산물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예술가도 시민도 아니다. 무지가 권력임을 본능적으로 포착한 범죄자일 뿐이다. 남성과 남성, 남성과 여성 사이의 권력의 작동 법칙(젠더)을 잘 아는 정치인(politician)이다.
이들은 범죄를 “풍류”라고 옹호하는 ‘페미니스트 문학주의자’도 봤는데, 나는 이렇게 말했다. 문단 자체가 가장 젠더화된 영역 중 하나라고. 여성에게 대중교육이 허락되고 문맹에서 벗어 난지가 100년 남짓이다. 수 천년 동안 남성들은 언어를 독점해왔다. 나는 가해자들보다 이들을 노벨상 후보니 진보인사니 하면서 숭배해온 한국사회가 더 끔찍하다. 타인을 억압하는 사람은 자신을 알 수도 없고, 해방시킬 수도 없다. 평생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고 온갖 비행을 저지르다가 살다간 이들만큼, 비참한 인생이 있을까(박경리의 에 보면, 이런 이들의 시신은 썩지 않는다는 저주가 나온다).
실제인지 가시화의 효과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성폭력 1위는 진보 진영일 것이다(이는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발생 메커니즘이다. 이들은 대개 도덕적 우월감이 강하다. 게다가 조직 보호주의, 독선, 과다한 업무, 낮은 임금 등으로 다른 문제는 사소하게 생각하기 쉽다. 한편, 진보 진영에서 활동하는 여성들은 사회의식이 높기 때문에 문제제기도 다른 집단보다 많다. 진보 진영의 성폭력은 이 두 가지 요소가 겹친 결과다. 동시에 이곳은 명예남성이 많기로도 유명한 곳이다. 가해자편인 여성도 많다. 독자들은 이 책을 참조하라. , 민주노총김**성폭력사건피해자지지모임 지음, 메이데이, 2013. 이 책에 나온 ‘주범’ 정진후 전 국회의원은 경기도 교육감 출마를 포기하라.
홍준표씨는 자기 부인을 공식석상에서 “촌년”이라고 부르는 사람이다. 보수 진영은 아예 논외, 개념이 없는 경우다. 이들은 근대 이전의 사람들이다. 보수 진영은 남녀 모두 사회의식, 인권의식이 낮기 때문에 문제의식 자체가 없다. 다음과 같은 분석도 있다. 남성 주체는 모두 자신을 우러러 봐 줄, 타자/관중/팬으로서 여성을 필요로 한다. 보수 남자는 돈이 있어서 여자를 ‘사고’, 진보 남자는 그렇지 못하므로 ‘강간하거나 개인의 매력(?)으로 승부한다’는 것이다. 어쨌든 여성에 대한 폭력을 둘러싼 남성연대(male boding)는 진보, 보수가 따로 없다. 좌파나 우파나 육아 때문에 자기 경력을 포기하는 남성은 드물다. 젠더는 계급보다 훨씬 근본적이다.
원래 페미니스트들은 치열한 마르크스주의자였다. 1960년대 미국의 시민권 운동에 열성적으로 참여했던 여성들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뿌리깊은 성차별과 인종차별에 질렸다. 이들이 바로 급진주의 페미니스트들이다. 여기서 ‘radical’은, 한국어의 급진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문제의 뿌리를 뽑자는 발본적(拔本的)이라는 뜻이다. 젠더와 섹슈얼리티가 인간 사회의 기본 모순이라고 본 것이다.
정의구현사제단 소속 신부의 폭력은 또 다른 충격이었으리라. 한국 종교 집단의 성폭력은 여신도의 역할이 ‘크다’. 어느 종교나 지도자는 남성이고, 공동체 유지에 필요한 노동은 여성의 몫이다. 여성 신도들은 남성 성직자의 ‘자아를 먹여살려주는(ego feeding)’ 성역할에 익숙하다. 2016년 미국 아카데미 등 각종 영화제를 휩쓸었던, 실화를 다룬 영화 에는 신부가 되어 성폭력을 하게 된 경우가 아니라 성폭력을 하기 위해 신부가 된 케이스가 나온다. 이는 천주교만의 문제가 아니라 동성(同性) 집단으로 이루어진 곳에서의 또 다른 폭력의 가능성을 말해준다.
적폐(積幣)는 오랫동안 쌓여 온 폐단이다. 청산 과정에서 적폐는 무너질 수도 있겠지만, 다른 적폐가 더 쌓일 수도 있다. 관건은 우리 사회의 역량에 달려있지 ‘않다’. 남성 개개인의 몸이 문제다. 성기(‘性機’)와 그 상징을 무기로 폭력을 지속하는 한, 사회가 이를 사소하게 여기는 한, 미투는 지금과 달리 “지겹다”는 반격을 받을지도 모른다. 일부 남성의 ‘자유’가 여성에게는 꿈, 생계, 경력, 평판, 인생을 걸고 신고해야 하는 사회라면 인구의 절반은 어떻게 살아야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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