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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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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공된 인격이 괴물 낳아”

#미투 3월 혁명 대담…

박권일·은하선 칼럼니스트, 손아람 작가, 송채경화 기자가 짚은 ‘한국 사회와 남성’
등록 2018-03-16 01:44 수정 2020-05-03 04:28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기자회견을 갑자기 취소했던 3월8일 송채경화 기자, 손아람 작가, 김완 기자, 은하선 칼럼니스트, 박권일 칼럼니스트(시계방향)가 #미투 운동에 대한 좌담을 열었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기자회견을 갑자기 취소했던 3월8일 송채경화 기자, 손아람 작가, 김완 기자, 은하선 칼럼니스트, 박권일 칼럼니스트(시계방향)가 #미투 운동에 대한 좌담을 열었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아무도 모른다. 한국 사회는 지금 ‘#미투’란 이름의 ‘3월 혁명’을 치르고 있다. #미투 운동은 한국 사회에서 멀쩡한 남자로 보였던 어떤 이들이 얼마나 끔찍한 괴물이었는지, 실체적 진실을 드러내고 있다. 가장 유망했던 미래 권력에서 한순간에 ‘위계에 의한 성폭행 혐의자’가 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추락은 우리가 믿었던, 혹은 딛고 살았던 세계가 얼마나 일방적이고 기만적인 것이었는지 소름 끼치게 드러냈다. 그러나 이제 시작이다. 더 많은 고발이 더 크게 울려퍼져야 한다.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는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없고, 돌아가서도 안 된다는 이야기를 진지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벌써 일각에서는 정치적 ‘음모’를 말하고, 가해자로 지목된 이가 ‘무고’일 수 있다고 웅변한다. 여성을 배제하자는 퇴행적 사고를 ‘펜스 룰’이란 세련된 작명으로 재소환하려는 움직임까지 있다. 이 모두는 역설이다. 한국 사회가 왜 이토록 오래 이 문제를 방관해왔는지, 그 토대가 무엇인지 드러내는 인식일 뿐이다.

안희정 전 지사가 기자회견을 취소했던 3월8일 오후 스튜디오에서 박권일 칼럼니스트, 은하선 섹스칼럼니스트, 손아람 소설가 그리고 송채경화 기자가 모여 한국 사회의 어떤 남성들은 왜 권력을 쥐면 괴물이 되는지, 그 토대가 무엇인지, 한국 사회에서 남성으로 길러지는 혹은 키워지는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좌담을 벌였다. 유난히 낮은 젠더 감수성과 성평등 인식을 ‘남성성’으로 감추며 살아왔던 우리들의 한 시대를 짚었다.

“강간 문화 묵인 여성도 적극 가담”
손아람 소설가

손아람 소설가

한국 사회가 미투로 큰 충격을 받았다. 정점은 안희정 전 지사였다. 그 남자들은 왜 그렇게 됐을까.

손아람 모든 남자들이 어려서부터 남성 중심 문화를 피할 수가 없다. 생존을 위해 남성 문화를 적극 받아들이고,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묵인하고 동조하는 연기력이 필요하다. 최소한의 위악을 행사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문화 속에서 남성들은 가공된 인격을 키우고 그 태도가 결국 사회적인 자기 인격이 된다. 성장 환경의 경험이 크다.

은하선 지금 문제는 특정 남성들이 그렇게 된 게 아니란 거다. 한국 사회는 ‘강간 문화’를 사회적으로 묵인해왔다. 이윤택 연출가도 밑에서 굉장히 많은 여성이 그걸 받쳐줬다. 남성 문화가 만든 게 아니고 남성들끼리만 만든 것도 아니다. 여성도 적극 가담했다. 이게 바로 성폭력을 묵인해온 문화다. 특정한 남성만 괴물이 되는 게 아니라 괴물들 사이에서 괴물이 아닌 소수가 살고 있단 느낌도 든다.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성폭력을 얘기하면 ‘그건 구조다, 가부장적 질서가 있어서 어쩔 수 없던 측면이 있다’ 이렇게 얘기해왔다. 막상 미투 운동이 시작되니까 일각에선 ‘우리나라에 그동안 없었던 걸 수입해 시끄럽게 한다’고 한다. 그게 바로 묵인된 강간 문화다.

박권일 층위랄까, 문화에도 결이 있다. 한국 사회에서 남성들이 겪는 경험들이 물론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그런데 가부장적 구조는 전세계적이다. 한국만 특별하지 않다. 페미니즘 이슈가 제기될 때마다 유교 국가라 그렇다고 한다. 물론 그게 영향을 끼쳤겠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순 없다. 스웨덴만 보더라도 두 세대 전까지만 해도 굉장히 가부장적 사회였다. 두 세대 만에 변했다. 왜? 싸우니까 변한 거다. 더 싸워야 한다. 최근 들어서는 진화심리학의 속류적 관점으로 ‘남자·여자는 원래 그렇게 태어났다, 남자는 성욕을 타고났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대단히 뒤틀린 인식이다. 이게 도태된, 짝을 찾지 못한 남성들이 여성을 혐오하게 됐다는 분석으로까지 나아간다. 문제적 진단이다.

‘그 남자들’이 아니더라도 한국 사회의 많은 남자는 왜 그런가.

손아람 20대 초반에 여자를 소개받아 사귄 적이 있다. 소개해준 친구가 농담이랍시고, 이런 얘기를 하는 거다. ‘내가 걔를 왜 소개해줬는지 아냐? 내가 걔를 먹었기 때문이다.’ (여성 패널들 탄식, 남성 패널들 고개 끄덕임) 그 자리에서 그 사람한테 막 화를 냈다. 다른 자리에 가서는 친구들에게 ‘이런 얘기를 들었다, 이런 인간이 다 있느냐’고 했다. 그때 다른 친구가 농담을 더 얹더라. ‘걔만 잤을 거 같니?’ 다들 웃는데 내가 정색하면 바보가 되는 분위기였다. 이런 문화에 적응하기 위해선 더 심한 농담이나 더 심한 악의를 행사해야 하는 거다. 한국 남자들은 다들 익숙하다, 그런 상황에.

“남성 연대가 절댓값으로 존재해”
박권일 사회비평가

박권일 사회비평가

한국 남자들이 남자들끼리 있을 때, 많이 쓰는 표현이 ‘따먹다’다.

손아람 그런 게 영웅담, 무용담이 되는 게 한국 사회다. 그 언어 습관이 모든 걸 말한다.

은하선 예전에 남자친구에게 ‘너랑 자고 싶지 않다’고 말했을 때, 그 남자가 ‘네가 싫다고 하면 가서 사 먹을게’라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전형적인 창녀와 성녀 나누기다. 내 어머니, 내 누이, 내 애인과 창녀는 다른 여자다. 분리된 존재라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에는 그래도 되는 여자가 있는 것이다. 그런 여자 취급은 섹스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면서도 많이 들었다. 10대 시절 성폭력 경험을 고백했을 때, ‘쟤는 그래도 되는 거 아냐. 왜 8년이나 참았는데!’ 이런 반응이 다수다. 그게 2차 가해인 줄도 모른다.

송채경화 남자들이 면전에서 그런 얘기를 하진 않지만 취재할 때, 남성 권력자를 만나면 종종 ‘앞에 앉아 있는 여기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얘기는 아니다’라며 다른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얘기를 한다. 여성 종업원에게는 내가 권력의 우위에 있다는 걸 보여주는 행동도 한다. ‘내가 너희는 여자라도 기자니까 존중하지만, 다른 여자들은 아니야’ 이런 태도다. ‘어떤 여자랑 자봤다, 저 여자랑 잘 수 있다’가 왜 남성에게 자랑거리가 되는지 모르겠다. 그게 당연한 사회구조를 이해하기 어렵다. 남자들은 도대체 왜 그러나?

박권일 나도 그게 옛날부터 이해가 안 됐는데. (웃음) 그게 이해가 안 되면 남자 사회에서 ‘아싸’(아웃사이더의 준말)가 되는 거다. 이해 못하고, 호응 안 하면 안 끼워준다. 남성 연대인데, 그 남성 연대가 한국 사회에 절댓값으로 존재한다. 필연적으로 위계가 생긴다. 한국 사회의 남성 문화에는 리더 노릇 하는 사람이 늘 있다. 모든 집단이 위계에 익숙하다. 집단에서 가장 낮은 이는 언제나 여성 역할이다. 남성 집단에 서툴고 그래서 민폐를 끼치고, 약한 존재를 ‘이년아, 저년아’라고 여성화해서 부르는 것은 단적이다.

손아람 남성들 사이에서 능력을 인정하는 기준에 ‘소유’가 있다. 부모가 재산이 많다고 바로 인정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자기 노력으로 성취한 능력은 바로 인정한다. 차를 사거나 좋은 대학에 가는 것들. 여성도 그 대상인 것 같다. 소유물이다. 어떤 여자를 소유했다는 걸 또래 집단이 권력으로 인정해주는 거다.

“보수 진영에선 더 철저히 고립될 것”
은하선 섹스칼럼니스트

은하선 섹스칼럼니스트

한국 사회에서 남자가 길러지는 방식을 보면, 여성을 대상화·소유화하는 위계 속에서 남성성이 획득된다. 군대 등을 거치며 그 과정이 심화·육성·발효돼 사회에 나온다.

손아람 안희정 전 지사가 성폭행 이후 ‘널 가져서 미안하다’고 한 것이 바로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남성들의 멘털리티다. 너에게 무엇을 해서가 미안한 것이 아니라 널 내 소유물로 만들어서 미안하다는 것.

그걸 보고 김훈의 가 생각났다. 왜적이라는 거악과 싸우는 과정에서 채워지지 않는 허무함과 결핍을 관기와 성관계를 해서 풀었다는 이순신의 세계관을 그럴싸한 묘사와 문장으로 미화했다. 그런 로망을 갖고 있는 게 한국 남자의 무의식과 세계관이 아닌가 싶었다. 안 전 지사의 말 중에 ‘괘념치 말거라’도 그 발현처럼 읽혔다. 어떤 남성은 본인이 여전히 조선시대의 무사라고 생각하나 싶다. 이걸 비틀어 읽은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는 진보 진영에 미투가 많다며 이를 ‘운동권 문화’라고 비판했다.

박권일 권력을 가진 남성들은 여성을 동등한 존재라고 아예 생각하지 않아왔으니까, 당연히 소유물이라고 생각하는 거다.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니까.

은하선 그렇게 생각하면 한국 사회 전체가 운동권이란 말인가.

손아람 운동권 문화 아니다. 진보 진영에서 발견됐을 때 더 충격받을 뿐이다. 선의와 정의 관념이 더 높은 집단도 저렇다는 것에 충격이다.

은하선 오히려 다른 곳은 얼마나 더 썩었을까 생각해야 한다.

송채경화 진보 쪽에서 계속 문제가 터지니까 ‘진보 분열’이라는 프레임이 작동한다. 이건 정파적 문제가 아니라 그냥 가해자의 잘못이다. 범죄적 행위를 고발하는 피해자가 진보를 분열시키는 게 아니지 않나. 여성 입장에서, 피해자 입장에서 생각하면 고발을 했을 때 진보 진영에는 자기를 보호해주고 지지해줄 사람들이 있지만, 보수 진영에선 철저히 고립될 것이라 더 두려워할 수도 있다. 더 말하기 힘든 상황이기에 고발도 힘들다.

박권일 미투는 용기다. 용기를 못 내는 이유는 용기를 내봤자 지지받지 못하거나 아예 매장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용기조차 내지 못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고통스럽겠나.

“미투 때문에 가려진다는 말 화나”
송채경화 기자

송채경화 기자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허리 아래 문제’는 묻지 않는 것을 당연시하고 살아왔다. 그래서 여성에 대한 폭력을 단죄하는 데 실패해왔다.

박권일 미투 이전에도 여성의 고발은 계속돼왔다. 미투라는 용어를 쓰지 않았을 뿐이다. 장자연, ‘별장 성접대’ 사건으로 유명한 김학의 전 차관 같은 문제에 사회가 제대로 반응하지 않았다. 계속 비명을 질러왔지만 사회가 응답하지 않거나 바뀌지 않았다.

손아람 정치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두 가지 원칙이 가족과 치정 관계를 건드리지 않는 것이란 말을 들었다. 이 말을 뒤집으면 두 문제는 누구나 갖고 있단 얘기다. 이를 뒤집으려면 음모가 된다. 그 룰을 누군가 깨려고 한다. ‘피해자를 동원해서 이 원칙을 깨려는 세력이 있다’는 말을 통해 피해자가 소거되고, 여성들이 겪어온 아픔과 문제들이 다 사라진다. 그거야말로 공작이다.

지금도 자신이 세상 흐름을 좀 읽는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남북대화 국면에 들어가고, 삼성-언론 유착 문제도 있는데 이런 이슈들이 미투 때문에 가려진다’고 말한다.

손아람 정말 화나는 말이다. 그런 말을 들으면 성추문을 덮기 위해 삼성을 터뜨린 게 아니냐고 되묻고 싶다. (웃음) 그런 말을 듣는 여성이나 피해자들이 어떨지 공감능력이라고는 없는 말이다.

박권일 뭐가 중요한지를 왜 맨날 그 남성들이 정하는 건지 모르겠다. 누가 그 사람들한테 그걸 정하라고 했어! (웃음)

은하선 피해자들은 참았던 울분을 말하는데, 어떤 남성들은 일부 피해자들이 미투 운동에 숟가락을 얹기 위해 나왔다고 한다. 피해자가 어떻게 숟가락을 얹나.

처음과 같은 질문이다. 한국 남성들은 왜 그러나.

박권일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남성은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와 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자신과 주변을 운영하는 원리를 별도로 생각해왔다. 천주교 신부처럼 윤리적으로 단련된 사람도 삶과 이념이 분리돼 성추행을 하기도 하는데, 정치인은 말할 것도 없다. 안 전 지사가 대표적이다.

손아람 안 전 지사가 인권과 페미니즘에 관해 거짓말을 해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권력을 갖게 되면 자신을 둘러싼 세상이 왜곡되게 형성될 뿐이다. 이번 성폭행도 안 전 지사는 분명 연애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주변 여성이 내 제안과 의지를 거절하지 못하는 것을 동의로 받아들인 거다. 그녀가 나를 원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거다. 권력을 가진 내 주변의 여성들은 나에게 호의를 갖고, 나와 연애를 하고 싶어 한다고 남성은 믿는다. 하지만 여성이 연애를 원한다면 그것은 당연히 (일대일의 만남이 전제된) 독점적 연애다. 그런데 남자는 문제가 되면 ‘네가 원했잖아, 너도 동의했잖아’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권력을 못 보는 것이다. 추상적 수준에선 성평등·인권·페미니즘을 말해도, 자기 문제에선 ‘저 여자도 원했다’고 생각한다.

“진보-보수, 내부 부조리 정당화 달라”

은하선 가해자에게도 진심은 있다. 가해자는 가해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권력 구조 안에 있는 자신을 보려 하지 않는다. 모텔에 들어가면 동의라고 생각하는 사회에서 피해자는 본인을 변호하고 또 변호해야 한다. 가해 남성만 보호되고 피해자는 바깥으로 계속 밀려날 수밖에 없다.

박권일 진보와 보수가 내부 부조리를 정당화하는 기제가 다르다. 보수는 ‘세상이 다 그렇다’고 하고 마는데, 진보는 ‘저기 거악이 있다. 거악과 싸우기 위해 힘을 합쳐야 한다’는 조직 보위의 논리를 동원한다. 이 논리는 권위주의를 자잘한 것으로 생각하게 하고, 성폭력을 추문으로 축소해 표현하게 한다. ‘없는 셈 치고 가야 한다. 내부에서 흔들리면 적들을 이길 수 없다’는 식으로 가버린다.

송채경화 남자들의 인식이 문제다. 좋은 연구를 한 학자나 좋은 정치인에게 여성들은 존경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 그럼 남자들은 자기를 좋아한다고 생각해버린다. 공적 감정과 성적 감정의 애정이 다른 것임에도 그 차이를 깨닫지 못한다.

은하선 한국 사회에서 성폭력을 얘기할 때 남자들은 ‘좋아하는 남자가 그랬으면 괜찮을 거면서, 어떤 남자가 그러면 성추행이냐’고 묻는다. 분명한 건 내가 좋아하는 남자와 내가 동의한 관계 안에서만 섹스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건 당연히 성폭력이 아니다.

진행·정리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전체 좌담은 유튜브 채널, 페이스북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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