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성폭력 무고, 더 이상 안 돼요!”
2014년 5월, 의정부지방검찰청이 낸 보도자료 제목이다. 의정부지검은 “2014년 1~4월 성폭력 무고 사범을 집중 단속해 6명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또한 “2012년, 2013년 같은 기간보다 3배 이상 증가한 수치”라며 ‘성폭력 무고 사범이 늘어났다’고 강조했다.
2013~2014년은 ‘성범죄 무고’와 관련해 특기할 만한 해다. 2013년 6월19일 성폭력 범죄에 대한 친고죄(피해자가 고소해야 국가가 벌할 수 있는 범죄)가 폐지됐다. 성폭력 범죄가 친고죄였을 때는 성폭력 피해자가 고소 부담을 홀로 지며 1년 안에 피해를 신고해야 했다. 가해자가 아는 사람일 때, 가해자가 위계 상위에 있을 때 피해자는 주저하게 된다. 피해자에게 찍히는 낙인 역시 신고를 주저하게 만들어왔다. 수사 당국도 자연스럽게 성범죄를 남녀 간의 ‘개인사’로 여겼다. 성범죄 친고죄 폐지 배경에는 이런 문제점을 고려해 수사기관이 더 적극적이고 책임 있게 수사해야 한다는 입법 의도가 담겨 있다.
‘성범죄 무고’ 유독 강조하는 검찰그러나 이후 수사기관은 성범죄 친고죄 폐지의 애초 입법 의도와 다른 방향으로 움직여왔다. 성범죄 처벌을 강화하는 성폭력특별법이 개정된 직후인 2013년 4월, 서울중앙지검은 “성폭력 사범 및 성폭력 피해자로 위장한 악질적 무고 사범”을 집중 단속한 결과를 내놓는다. 그 뒤 각 지방검찰청들은 주기적으로 ‘무고 사범’의 집중 단속을 벌여 그 결과를 공개했다. 이들이 밝히는 집중 단속의 이유는 “친고죄가 폐지되는 등 성범죄자 처벌이 강화되는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해 연인 관계이거나 승낙에 의한 성행위를 성폭행으로 신고하는 다양한 유형의 성폭행 무고가 빈발”하기 때문이다.
검찰이 발표하는 자료를 보면, 다양한 유형의 무고 사범 가운데 ‘성폭력 범죄’에 대한 무고 사례를 유달리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구지검 포항지청은 2016년 11월, 그해 2월부터 8개월 동안 무고·위증 사범을 집중 단속한 결과 무고사범 18명을 적발했다고 밝히며, 성폭력 무고를 대표 사례로 내세웠다. 대구지검 서부지청도 2014년~2015년 2년째 ‘성폭력 엄벌 기조를 이용한 무고 사범’을 단속한 사례를 자세히 소개하며 ‘무고 사범의 대다수는 성폭력 허위 고소범’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강화했다. 박선영 변호사(법무법인 포럼)는 “실제 사례 가운데는 사기나 친족 간 재산 분쟁에 의한 무고 등 굉장히 여러 유형이 있는데도 ‘여성이 악의적 의도로 성폭행을 당했다고 신고하는 경우’가 대표 사례가 된다”고 지적했다.
검찰의 선입견은 성범죄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을 대하는 검찰과 경찰 수사관의 태도에 큰 영향을 끼친다. 그로 인해 성범죄로 고통받은 피해자를 피의자로 만드는 ‘무고 기소’가 빈번히 일어나게 된다. 성범죄에 대한 무고 기소는 크게 두 경로로 이뤄진다. 첫째는 가해자로 지목된 이가 스스로 고소하는 것이고, 둘째는 검찰이 수사 과정에서 성범죄 고소가 무고라고 판단해 피해를 호소하는 여성을 무고죄로 기소하는 경우다. 이 가운데 성범죄에 대한 검찰의 잘못된 통념에 기대 검사가 성폭력 무고를 ‘인지’해 기소하는 경우 피해자는 두 번 죽는다.
강제 추행 피해를 수사기관에 신고했다가 무고죄로 기소된 뒤 2년8개월간의 법정 싸움 끝에 무죄 확정판결을 받은 차진영(가명)씨의 예를 보자. 이 사건은 한국여성의전화와 법무법인 지평이 최초로 진행했던 ‘성범죄에 대한 무고’ 관련 공익소송이었다. 피해자 차씨를 인터뷰한 뒤 소송 과정을 논문으로 쓴 허민숙 국회 입법조사관은 “사건을 아무리 뜯어봐도 검찰이 기소한 이유는 ‘너 같은 피해자를 본 적이 없다’는 것 말고는 없다”고 말했다. 차씨는 자기주장이 강하고, 위축되는 태도 없이 조사에 임했다. 가해자와 동네에서 아는 사이여서 처음엔 신고를 하지 않았다가, 강제 추행에 대한 치료비를 주지 않자 가해자를 신고했다. 차씨 사건은 ‘피해자는 사건이 발생한 직후 신고한다’ ‘피해자는 피해로 인해 너무나 큰 고통을 받으며 자신의 피해를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할 것이다’ 등 성범죄 피해에 대한 사회 통념과는 거리가 멀었다.
“돈 연루되면 무고로 보는 경우 많아”박선영 변호사는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가 합의를 원하는 등 ‘돈’이 연루되면 검찰이 무고로 인지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사건을 공동 변호한 강정은 변호사(사단법인 두루)도 “가해 남성이 강제 추행 혐의를 부인하고, 당시에 같이 있던 사람들이 모두 ‘못 봤다’라고 말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검사는 가해자를 수사하지 않고, 피해자만 의심했다”고 말했다. 수사 과정에서 진행한 심리검사도 편파적이었다. 가해 남성에게는 ‘~했습니까’ 식으로 물어본 데 반해, 피해 여성에게는 ‘~한 게 틀림없습니까?’ ‘추행당한 것이 확실합니까’ 등 고압적 어조로 질문했다. 결국 심리검사에서 피해 여성은 이상반응이 나왔고 가해 남성은 정상으로 나왔다. 결국 검찰은 차씨를 기소했고, 법원은 1심과 2심 모두에서 ‘무고가 아니다’라는 판결을 내놨다. 그래도 당시 의정부지검은 포기하지 않고 상고했다. 결국 차씨는 2016년 8월30일 대법원에서 ‘혐의’에서 무죄 확정판결을 받을 수 있었다.
성폭력 무고 판단에 대한 국제 기준은 어떨까. 국제경찰장협회(IACP)는 ‘성폭력 범죄에 대한 수사지침’(이하 수사지침)에서 성폭력 범죄의 무고를 판단할 때 ‘어떤 신고가 성폭력 무고에 해당하는 허위 신고라는 것을 판단하는 데 있어서 피해자의 조사시 반응과 행동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차씨 사건에서 한국 검찰이 보인 모습과 정반대의 지침을 내세운 셈이다. 수사지침은 또 ‘입증에 실패한 범죄와 허위 사실을 명확하게 구분해야 한다’고 못박고 있다. 즉 “성폭력 신고의 허위 판정은 철저한 조사 뒤에나 가능하고 성폭력이 일어났다는 것을 증명하는 데 실패한 조사와 허위 신고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이는 성폭력이 발생했음을 입증하는 데 실패했다고 해서, 여성의 신고 자체가 허위라고 말할 순 없다는 뜻이다.
직장 동료와 술을 마신 뒤 기억이 끊긴 상태에서 성폭행을 당했다고 신고한 정수민(가명)씨도 피해자가 아닌 피의자가 돼 1년 넘는 시간 동안 마음을 졸여왔다. 평소에 술을 마시지 않는 정씨는 그날 많은 술을 마시고 여러 차례 구토하며 정신을 잃었다. 성폭행을 당한 장소에 폐회로텔레비전(CCTV)이 있었지만, 화면에서 정씨가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모습은 담겨 있지 않았다. 또 (성폭력이 발생한 뒤) 옷을 스스로 챙겨 입는 모습도 찍혔다. 검찰은 ‘인사불성인 사람이 어떻게 옷을 챙겨 입냐’ ‘성행위라는 것이 암묵적 동의를 통해서도 이루어질 수 있지 않냐’며 성폭행 혐의는 무혐의 처분하고 정씨를 무고로 기소했다. 기존 판례에서 무고죄가 인정받으려면 신고한 사실이 객관적 진실에 반하는 허위 사실이라는 점에 대한 적극적 증명이 있어야 한다. 다만 그 사실이 객관적 진실에 반하더라도 신고자가 허위성에 대한 인식이 없을 때는 무고에 대한 고의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사건 1심 재판부는 “공소사실에 대한 범죄의 증명이 없다”며 무고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이 사건을 변호한 김차연 변호사(법률사무소 진솔)는 “피해자는 필름이 완전히 끊긴 상태였다. 최대한 양보해 성폭행이 무혐의라 하더라도, 피해자 정씨가 직장 동료를 일부러 처벌받게 하기 위해 거짓 신고했다는 검사의 판단은 기존 법 해석을 무시한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성범죄 피해 신고율 2%도 안 돼성범죄 피해를 호소하는 여성에게 성범죄가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잘못된 선입견을 토대로 무고 혐의를 두고 수사하고 기소하는 수사 당국의 태도는 여성의 설 자리를 뺏는다. 여성가족부가 3년마다 실시하는 ‘전국 성폭력 실태 조사’를 보면, 성범죄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를 신고하는 비율이 2013년 1.1%, 2016년 1.9%에 불과했다. 김보화 한국성폭력상담소부설연구소 울림 연구원은 “피해자에 대한 불신과 피해 사실을 의심하는 수사 관행이 고쳐지지 않는 한, 이 신고율은 높아질 수 없다”고 말했다. 성폭력 무고가 늘어난다는 사회 통념과 달리, 한국은 여전히 피해자가 피해를 감추고 숨죽여야 하는 사회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정말 성폭력 무고는 늘었나
무고죄 심각성 외치며 통계조차 없는 법무부
검찰의 판단처럼 성폭력 무고는 심각한 사회문제이며 해당 사례도 늘어나고 있을까. 정답은 “알 수 없다”이다.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성폭력상담소 등 여성인권운동단체들은 성폭력 무고와 관련된 통계를 법무부, 경찰, 검찰에 요구해왔다. 성폭력 가해자로 고발됐을 때 가해자가 피해자를 무고나 명예훼손 등으로 고소하는 비율은 얼마인지, 무고 범죄 가운데 성범죄 무고의 비율은 얼마인지, 성범죄 무고의 유·무죄 비율은 어떤지 등의 자료를 요청했지만 매번 돌아오는 대답은 “그렇게 통계를 분류하지 않는다”이다. 도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성범죄에 대한 무고죄 현황’ 자료를 법무부에 요청했으나 “그렇게 통계를 분류하지 않는다”는 회신만 받았다.
허민숙 국회 입법조사관은 “법무부와 검찰의 이런 태도는 굉장히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국가가 어떤 범죄에 대한 정책과 법을 만들 때는 기본적으로 통계 구축이 절대적이다. 그런데 여성이 피해자가 되는 범죄는 대개 통계가 없다. 성범죄 무고에 대한 통계가 없으니 애초에 ‘무고’나 ‘명예훼손’ 등이 성폭력 피해자에게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피해를 입히는지 가늠할 수가 없다.”
무고는 물론 나쁜 범죄다. 성폭력 무고로 피해를 입은 남성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범죄 피해를 당한 뒤 어렵게 용기를 내 고통을 호소한 여성들을 ‘피해자답지 않다’ ‘늦게 신고했다’ ‘전과가 있다’ ‘사귀는 사이 아니였냐’고 따지는 수사 관행이 여전하며, 그 때문에 억울하게 무고 혐의를 떠안는 여성도 많다. 법무부는 성범죄 무고와 관련된 신뢰할 수 있는 통계를 만들어야 하고, 검찰도 ‘느낌’에 기댄 무고 기소 관행을 바로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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