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제주 강정마을
① 강정 10년, 마을은 어떻게 짓밟혔나
② 강정마을의 이주자들
③ 강정 10년, 전수조사
2부 경남 밀양
① 전기 따라 마을은 무너졌다
② 국책사업의 이면
2012년 1월 765kV 초고압 송전탑(765 송전탑) 건설 공사가 진행되던 경남 밀양 산외면 보라마을 주민 이치우(당시 74살) 어르신이 분신해 숨진 뒤 ‘밀양 송전탑’은 전국적 이슈가 됐다. 밀양은 765 송전탑 건설을 중심에 놓고 추진돼온 송변전설비와 관련 국책사업 기조를 180도로 돌려놨다.
2010년만 해도 정부는 △울진 한울원자력발전소·삼척 화력발전소 △울산 신고리원전·경주 신월성원전에서 생산한 전력을 각각 수도권과 대구로 보내기 위해 765 송전탑 건설을 추진(5차 장기송배전설비계획)하려 했다. 그러나 2013년 작성된 6차 계획에선 “향후 장거리 초고압 송전선로의 건설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한다며 이 내용이 삭제됐다. 밀양의 투쟁은 현재진행형이지만 또 다른 ‘신울진-신경기 765 송전선로’는 지난해 5월 최종 백지화됐다.
밀양의 숨은 공로, 기록밀양은 ‘마을’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는 한국 국책사업의 오랜 전형을 깨뜨린 역사적 장소이다. 1978년 19개 법률의 인허가 과정을 ‘프리패스’ 할 수 있는 전원개발촉진법 제정 이후 30여 년간 사실상 ‘무법지대’에서 추진돼온 국책사업에 비로소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밀양 투쟁은 탈핵, 탈원전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밀양 765 송전탑은 애초 최대 8기까지 세워질 예정이던 신고리원전이 생산한 전력을 수도권(서울의 전력 자급률은 2014년 현재 1.8%에 불과하다)에 보내기 위한 것이었다. ‘초고압 송전탑’은 대규모 핵발전 단지에서 생산한 전기를 멀리 떨어진 수도권으로 안정적이고 빠르게 보내는 데 꼭 필요한 파트너다. 밀양 투쟁 등의 여파로 신고리 5~6호기 건설 여부는 공론화 과정을 거쳐 결정된다.
많은 사람이 주목하지 않는 밀양의 ‘숨은’ 공로가 있다. 국책사업의 어두운 이면을 체계화한 ‘기록’으로 남긴 점이다.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 백서 2005~2015’와 부산대 ‘SSK 로컬리티 기록화 사업팀’의 아카이브가 그 예다. 지난 3월엔 김영희 연세대 교수(국어국문학)가 2016년 7월부터 반년 동안 밀양 주민 80여 명을 인터뷰한 구술 자료를 토대로 ‘밀양 송전탑 마을공동체 파괴 실태 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국회 산업자원통상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의원실 용역을 받아 작성됐다. 교란작전, 매수, 공갈·협박, 밀약, 로비, 뇌물 등 보고서에 기록된 증언은 국책사업이 관철되는 과정에서 작동하는 ‘악마의 메커니즘’을 낱낱이 고발한다.
“전자파가 핸드폰보다 약하니까 아무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한전 직원이 그렇게 말했다.”(위양마을 주민·78)
“당시에는 765와 그 피해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없었고, 전봇대가 하나 서는 줄 알았다.”(평밭마을 주민·70)
“전기가 가는 것은 전부 다 전봇대밖에 못 봤잖아요, 우리는. 그 산으로 간다카는 거 보니께 쪼깨 큰 전봇대가 산을 가는 갑다, 이래 생각을 했어.”(여수마을 주민·60)
밀양 주민들이 765 송전탑이 마을에 들어선다는 사실을 인지한 것은 2005년 8월 송전탑이 지나는 경과지 5개 면(지도참조)을 상대로 주민설명회를 열었을 때다. 신고리원전에서 생산한 전력을 양산과 밀양을 거쳐 경남 창녕군 765kV 변전소로 보내는 계획이 처음 수립된 것은 2000년 8월이었다. 5년 동안 정부와 한국전력은 예정 경과지를 정해 밀양시청과 협의하고 경과지 상세 측량과 환경영향평가까지 완료했다. 모든 작업이 끝난 뒤 정부와 한전은 그동안 몰래 추진해온 국책사업의 결정 내용을 주민에게 통보한 것이다.
송전탑을 ‘큰 전봇대’로 이해설명회에서 정부와 한전은 주민 건강에 밀접한 영향을 끼치는 전자파의 유해성 여부를 알리지 않았다. 당시 한전이 제작한 홍보 만화를 보면, 765 송전탑의 전자파 안전성을 형광등·헤어드라이기에 견줘 설명하고 있다. 765 송전탑을 ‘큰 전봇대’ 정도로 이해한 주민들은 ‘765’가 일반 전봇대(22.9kV)보다 전압이 33.5배(765kV) 높다는 의미란 것도 알 수 없었다. 고압 송전선로에도 154kV·345kV 등이 있으며, 독일·영국·핀란드·스웨덴 등 산업이 발달하고 한국과 국토 면적이 유사한 외국은 최대 400kV 송전탑만을 세운다는 정보(전력거래소, ‘해외전력산업동향’, 2011)도 제공하지 않았다. 2009~2010년 대한전기학회의 ‘가공 송전선로 전자계 노출량 조사 연구 보고서’를 보면, 765kV(80m)를 채용할 경우 3mG(밀리가우스) 이상의 전자파에 상시 노출되는 영역이 345kV의 2배(40m), 154kV(20m)의 4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온다. 이런 유해성에도 765kV를 만드는 곳은 중국, 미국, 캐나다, 러시아, 인도 등 영토가 큰 나라뿐이란 사실도 주민은 알 도리가 없었다. 칠순·팔순 노인들은 구술에서 국책사업을 ‘지랄’ ‘짓거리’라고 욕한다. ‘사업’만 있고 ‘국가’는 없는 국책사업을 ‘나랏일’로 이해한 밀양 주민은 하나도 없다.
주민들은 순진했다. 용회마을의 83살 어르신은 “서, 설마 나라에서 우리 속이겠나, 나라에서 우리를 살게 해주지. 우리를 몬되게는 안 할 거다”라고 굳게 믿었다. 기대는 쉽게 배반당했다. 한전은 불성실할 뿐 아니라 부정직했다. 765 송전탑 전자파 노출 기준을 뻥튀기한 게 대표적이다. 한전은 ‘세계보건기구(WHO)의 권고 기준’이라며 전자파 허용 기준치를 833mG로 홍보했다. 그러나 833mG는 ‘단기간 높은 전자파에 노출될 때’ 적용되는 기준으로 송전탑과 함께 24시간 생활해야 하는 주민들에겐 해당될 수 없는 기준치다. 한전 기준치가 스웨덴 기준(2mG)의 416배, 네덜란드(4mG)의 208배에 달한다는 사실을 주민들은 ‘밀양 송전탑 투쟁’을 시작하고 나서야 알았다. 가장 엄격한 노출 기준을 정한 스웨덴에선 1992년 송전선로 인근 17살 이하 어린이 백혈병 발병률이 2mG 이상에선 2.7배, 3mG 이상에선 3.8배 더 높다는 ‘페이칭 보고서’가 발표돼 있다.
“한전 놈하고 사장하고 왔거든. ‘할머니는 보상은 얼마나 받을랍니까’ 하더라. …똥물로 내가 한 바가지 펐다. 나는 100억원을 줘도 안 받는다. 내가 받을 건 없고 이거 주려고 오라 했다. …그길로 새어서는 강원도 우리 아들한테 간 거야. …봉투를 주면서 110만원이라 카더라.”(위양마을 주민·82)
“북경남 송전선로 소장이 대학 후배였다. …하도 안 만나주니까 소장과 그보다 더 높은 사람이 새벽에 집에 찾아오기도 했는데 돈을 주고 매수하려는 낌새가 있어서 쫓아보낸 적이 있다. 이 마을이 전부 다 그런 유혹을 당했다.”(평밭마을 주민·75)
“위양회관에서 10시에 만나자 하는데, 내가 올라오니까 딱 와 있는 기라. 박스때기를 9개를 가져왔어요. …사인해달라 하는 거라, 이장이니까 받았다 하는.”(위양마을 주민·80)
한전이 내세운 가짜 마을 대표들[%%IMAGE2%%]주민들은 한전의 접근을 일종의 유혹 또는 매수 시도로 이해했다. ‘똥물’까지 퍼서 안간힘을 다해 한전의 개별 접근을 막았지만 저들은 끈질겼다. 한전은 마을회관이라는 마을 ‘사랑방’을 이용했다. 마을회관에 과자·라면·커피 등을 놓고 가고 명절에는 쇠고기와 과일을 보냈다. 이런 일을 하는 이들은 ‘한전사랑방’이라고 적힌 조끼를 입었다고 주민들은 기억했다. 김영희 교수는 보고서에서 “개별적인 선물이나 향응을 받지 않은 경우에도, 농촌 지역 대표적인 의례일인 정월대보름에 한전이 마을회관에 놓고 가는 쇠고기 뭉치나 각종 선물 세례까지 피해갈 수는 없었다. 한전 직원들은 이웃도 벗도 아닌 사람들에게 넙죽넙죽 선물만 받을 수 없는 농촌 지역 노인들의 ‘염치’를 이용”했다고 썼다.
“마을이 전체적으로 회의를 해서 그런 게 아니라, 마을에 두세 명 내지는 다섯 명이 한전하고 밀약을 하는 거다. 마을에서 힘깨나 좀 쓰는 사람들을 포섭해서 집중적으로, 할머니 혼자 사는 할머니들.”(위양마을 주민·60)
“한전에서 여기 주민이 아닌 ○○○라는 사람을 데려와서 간사로 일을 시켰다. 한전에서 그 사람들을 시켜서 찬성 도장을 받으라고 지시했다고 했고, 거주자도 아닌 사람들을 모두 포함해서 과반수가 되어버렸다.”(고정마을 주민·74)
2008~2012년 이뤄진 한전의 집요한 공세는 결국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2012년 1월 이치우 어르신이 “내가 죽어야 이 문제가 해결되겠다”는 유언을 남기고 분신해 숨질 때까지 2011년 일찍이 합의에 이른 청도면 3개 마을을 제외한 단장면·산외면·상동면·부북면 27개 마을은 한전과 합의하지 않았다.
그러자 한전은 2012년부터 ‘가짜’ 마을 대표를 세우기 시작했다. 2012년 4월27일 각 마을에 발송한 공문에서 한전은 ‘협상단 참여 대표를 5인 이내로 선정’하라고 했다. 주민들은 합의를 주도한 이들을 ‘주민의 대표’가 아닌 ‘한전의 대표’로 인식했다. 실제 2012년 8월20일 (송전선로) 경과지 30개 마을 중 10개 마을이 속한 상동면에서 이뤄진 ‘합의’는 주민 의사를 거스른 것으로 결국 유명무실해졌다. 합의 조건 가운데는 “현재 밀양시 주민대책위 상동면 대책위를 폐지하고, 향후 새로 선임된 주민 대표자 또는 마을 대표자와 별도로 협의”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이는 한전이 불과 이틀 전인 8월18일 국회의원의 중재로 열린 대화에서 ‘반대대책위로 협상 창구를 일원화하겠다’고 한 약속을 뒤집은 것이었다. 한전은 “구두 합의는 했지만, 최종 합의는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까막눈이 억울한 팔순 할머니한전은 2013년 1월 국회 보고 자료에서 2012년 하반기까지 합의하지 않고 버티던 27개 마을 가운데 11곳과 합의했다고 밝혔지만, 이마저도 실패한 것으로 드러났다. 밀양대책위는 2013년 9월 합의한 것으로 알려진 11개 마을 가운데 10개 마을이 주민 의사와 무관하게 주민 대표 5인이 독단으로 저지른 일이라는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한전이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최종 합의서를 보면, 2012년까지 유효하게 합의한 마을은 단 2곳뿐인 것으로 확인된다. 2012년 한전과 합의한 것으로 알려진 산외면 괴곡마을의 경우 송전탑과 가까워 피해가 큰 지역을 배제하고 피해가 적은 지역 주민을 중심으로 명부를 위조한 사실이 국회의원에 의해 폭로됐다. 합의 과정에서 갈라진 괴곡마을 두 지역은 마을을 분리해달라는 ‘분동 신청’을 밀양시에 제출한 상태다.
“붕새야 붕새야 니는 저리 우는데 이 바보 같은 늙은이는 왜 바보가 됐노. 우리 엄마 날 글 가르쳐줄 때 (글공부를) 했으면…. 다른 사람은 청와대 못 들어가도 너는 짐승이라서 날아가서, 글 적은 거 날아가면 박근혜는 못 보더라도 누가 때려 접은 거 펴봤으면 내 심중을 알겠나.”(위양마을 주민·82)
팔순 넘은 할머니는 억울한 사연 한 줄 쓰지 못하는 ‘까막눈’ 신세를 한탄하며 구술에 참여한 조사자 앞에서 울었다. 한전의 갖은 술책에도 끄떡 않던 밀양의 마을들은 2013년 9월 이후 차례차례 한전과 합의를 시작한다. 그 결과 2014년 7월 모정마을을 끝으로 전체 30개 마을 가운데 29개 마을이 합의에 이르렀다. 이 시기 한전과 ‘한전의 공모자’들이 벌인 일과 유일하게 미합의 마을로 남은 고답마을의 사연은 ‘세 마을 잔혹사- 2부 경남 밀양 ③’에서 다룬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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