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제주 강정마을
<font color="#C1C1C1">① 강정 10년, 마을은 어떻게 짓밟혔나</font>
<font color="#C1C1C1">② 강정마을의 이주자들</font>
<font color="#C1C1C1">③ 강정 10년, 전수조사</font>
2부 경남 밀양
<font color="#00847C">① 전기 따라 마을은 무너졌다</font>
전기가 생산되고 보내지는 것처럼 발전과 송전의 모든 과정에서 갈등은 만들어지고 퍼졌다. 신고리 원전 3·4호기는 물론 5·6호기까지 떠안아야 했던 울산 울주군 서생면과 그곳에서 만들어진 전기가 지나가는 밀양의 여러 마을들이 공동체 파괴로 신음하고 있다. 은 ‘세 마을 잔혹사’ 밀양 편에서 발전과 전력 수급을 둘러싼 국책사업이 송전탑 경과지 마을과 원전 최인접 마을을 어떻게 파괴했는지 들여다본다. 주민들은 실명이 기사에 등장하는 것을 꺼렸다. 자신의 말이 또 다른 갈등을 불러올 것을 우려해서다. 기사에 등장하는 주민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이다. _편집자</font>
돈이 오자 마을이 갈라졌다.
정월대보름이면 윷을 놀고 막걸리를 나누던 왁자지껄함은 이제 찾아볼 수 없다. 주민들은 마당에 폐회로텔레비전(CCTV)을 설치했다. 서로를 믿을 수 없다. 밀양 송전탑이 낳은 새로운 마을 풍경이다.
한국전력은 2014년 9월23일 밀양 5개 면 30개 마을에 69개의 송전탑을 세우는 공사를 끝냈다. 하지만 40층 빌딩 높이(148m)의 위압적인 송전탑 아래는 여전히 지옥이다. 둘도 없던 이웃은 갈라졌고 외나무다리가 들어섰다. 그 위에 자리한 게 송전탑이다. 외나무다리에서 만났다고 꼭 싸워야 할 이유는 없다. 위태로운 길 가운데서 서로 보듬어 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대로 끝나지 않았다. 한전은 돈을 뿌렸다. 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외나무다리는 결국 무너졌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갈등의 씨앗 된 개별보상금</font></font>2013년 9월11일, 정부는 밀양 송전탑 건설 지역에 185억원을 보상하기로 결정했다. 문제는 개별보상금이다. 한전이 전체 보상금의 40%를 가구별로 나눠주겠다고 한 것이다. 송전탑 건설 과정에서 개별보상금을 지급한 첫 사례였다. 나머지 60%는 마을 공동사업비로 내놨다.
시작부터 우려가 나왔다. 마을 내 분란을 유발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밀양 상동면 고정마을에는 93가구가 산다. 개별보상금은 3억5600만원. 한 가구의 몫은 383만6600원이다. 이 가운데 34가구는 송전탑 반대를 이유로 보상금 수령을 거부했다. 2014년 5월23일 고정마을 대표와 한전 사이의 합의서를 보면 “합의서 체결 이후 한전에서 개별지원금 지급서 수령을 희망하지 않는 세대주 개별지원금은 마을 공동사업비로 전환하여 지원한다”고 돼 있다. 결국 반대 주민의 몫 1억1천여만원은 마을 공동사업비로 전환됐다. 주민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듯 “떠내려가는 돈”이 된 것이다. 찬성 주민들은 반대 주민에게서 떠내려간 돈 중 8758만원으로 2016년 2월 ‘상동반시영농조합’을 만들었다. 지분은 찬성 주민들이 나눠 가졌다.
한전이 개별보상금과 별개로 마을에 지급한 돈은 5억3400만원이다. 이 돈은 ‘고정마을영농조합’을 만드는 데 출자됐다. 하지만 고정마을영농조합이 땅을 사고파는 과정을 거친 뒤 이 돈 역시 650만원씩 현금으로 찬성 주민에게 지급됐다. 한전과 고정마을의 합의서를 보면 이 돈은 나눠 쓸 수 없다. “마을공동사업비는 개인 용도로 사용할 수 없으며 개인별 현금 지급시 민·형사상 책임을 진다”고 돼 있다. 찬성 주민들은 650만원을 현금 지급한 이유가 송전탑으로 집값이 떨어져 노후 주택을 개량하려는 명목이기 때문에 개인별 현금 지급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반대운동 안 한다는 확인서, 조작 의혹까지</font></font>
한전이 지급한 돈이 다 떠내려가자 반대 주민 중 일부는 마음이 흔들렸다. 지난 2월 반대 주민 15명이 마음을 바꿔 돈을 받기로 했다. 찬성 주민 쪽은 당장 내줄 현금이 없어 영농조합이 가진 땅을 담보 잡아 선이자 50만원을 떼고 600만원을 지급했다. 600만원을 받은 주민들은 백기 투항을 한다는 취지의 확인서를 썼다.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행정자치부에서 제출받은 상동반시영농조합의 ‘마을기업 심사위원회 심의 의결서’에는 이 확인서가 포함돼 있다.
“가옥개량사업비를 수령함과 동시에 송전탑건설 반대활동을 금지한다.” “가옥개량사업비를 수령하였다 하여 고정마을영농조합 법인과 상동반시영농조합 법인에 가입된 것이 아니며 지분 또한 없다.” “가옥개량 사업비를 수령 후 반대 활동을 계속할시 가옥개량사업비를 반환한다.”
확인서에 서명한 강민순 할머니는 후회한다고 했다. “반대 주민들한테 너무 미안하다. 저쪽(찬성 주민)에서 돈 안 받으면 떠내려간다고 해서 그랬는데 지금은 후회한다. 돈 받고 난 뒤 뭔 일만 생기면 (찬성 주민 쪽에서) ‘그 돈 돌려 내놔라’ 한다. 기분 좋을 리 없다. 마을이 이래서는 안 된다. 갈등이 너무 심하다. 중간에 돈 받은 열다섯 집은 찬성에도 못 끼고 반대에도 못 낀다. 마을이 세 패로 나눠졌다. 다른 데서 부러워할 정도로 화목한 동네였는데 이제 만나는 것도 껄끄럽고, 친척들끼리도 서로 안 본다. 한전이 보상금 가지고 마을을 부순 것이다.”
돈을 받겠다는 다른 서류에는 서명했지만 반대운동을 다시 하면 가옥개량사업비를 반환한다는 등의 내용이 담긴 확인서에는 서명한 적 없다는 주민들도 있다. 이 때문에 확인서가 조작됐다는 의심도 나온다. 한수민 할머니는 “나도 남편도 가옥개량사업비를 반환한다는 확인서에 서명한 적이 없다. 돈을 받은 것도 그렇다. 솔직히 그 돈 안 받아도 된다. 그런데 지금까지 (반대투쟁을 하면서) 당한 것도 억울한데 그 돈이 다 떠내려간다니까. 우리가 안 받아가면 저들(찬성 주민)이 다 먹는 판이니까. 우리 안 주면 자기들끼리 150만원씩 갈라 가져간다는 소문이 돌았으니까.”
<font size="4"><font color="#008ABD">동네가 무섭다</font></font>
올해 초 15가구에 돈을 나눠준 데는 배경이 있다고 생각하는 주민들도 있다. 반대 주민들은 2월 창원지법 밀양지원에 한전의 돈으로 설립된 두 개의 영농조합이 주민들과 제대로 합의하지 않고 만들어졌으니 설립 근거가 된 주민 임시총회를 무효로 해달라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강현순 할머니는 “빨리 돈 받아가라고 나를 하루 종일 들볶았다. 30분마다 오고, 맨날 집 앞에 있고.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어떻게 계속 거절하겠나. 지금 보니까 (찬성 주민 쪽에서 우리가) 소송할 것 같으니 이쪽(반대 주민) 군사를 줄이려고 왕창 넘어가게 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한전이 흩뿌리는 돈의 향방에 따라 마을 내 갈등의 골이 파였다. 평생을 마을에서 살아온 김옥순 할머니는 동네가 무섭다. “살아 있지만 눕은 것(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돈 받아먹은 죄로 말도 못하고 데모도 못한다. 네 것, 내 것 없는 동네였다. 우리 집에는 젊은 사람이건 나이 든 사람이건 다 놀러 왔다. 그런데 지금은 혼자 집에 누워 있으면 무섭다. 누가 갑자기 찾아와서 해코지할까 심장이 벌렁벌렁하다. 빨리 마을이 예전처럼 돌아왔으면 좋겠다.”
찬성 주민인 강희석 할아버지도 할 말은 있다. “우리가 반대 주민들한테 고개 숙이고 들어오라고 한 게 아니다. 만약 전체가 돈을 다 나눠 가졌으면 확인서에 그런 조항을 넣을 필요가 없다. 그런데 일부만 돈을 받는다고 하니까, 그러면 적어도 마을 내에서 반대 활동 하면서 갈등을 만들면 안 되는 것 아니냐고 해서 그 조항(반대 활동 금지)을 넣은 거다. 확인서 서명이 조작됐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부인이 남편 이름으로 서명하거나 글자를 모르는 노인들 대신 서명한 경우는 있지만 다 동의하에 서명한 거다. 그게 위조면 바로 경찰서에 가면 된다. 나도 이런저런 갈등 때문에 너무 답답하다.”
한전의 돈을 둘러싼 갈등은 고정마을의 일만이 아니다. 밀양 내양마을(진싯골)에서도 갈등이 소송으로 이어졌다. 마을 공동사업비로 아파트 2채를 산 뒤 되판 돈을 찬성 주민 20명만 나눠 가지기로 한 마을 총회 결의가 무효라는 내용이다. 위장전입자의 보상금 수령, 중복 지급 등 마을마다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돈을 둘러싼 주민들 사이의 갈등이 마을을 전쟁통으로 만들면서 포화를 피한 것은 한전이다. 고정마을 찬성 주민인 강희석 할아버지는 “나라고 송전탑이 좋고 한전이 좋겠나. 마을을 이렇게 만들어놓고 사후관리를 하고 있지 않다. 한전이 제일 문제다”라며 혀를 찼다. 최재홍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환경위원장도 “한전이 공사를 편하게 하기 위해 돈으로 주민 분열 작업을 한 것이 가장 큰 문제다. 나쁜 선례다. 다른 국책사업도 이런 갈등이 반복되면 공동체 파괴가 발생할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 상황에 대해 한전은 적극적인 개입을 피하려는 모양새다. 밀양 보상금 관리를 맡아온 한전 남부건설본부 관계자는 “마을별로 소송이 진행 중인 상황에 한전이 개입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마을 내 여러 갈등의 해결에 대해 한전 본사 쪽에서 고민하는 것으로 안다”고만 말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한전은 결자해지해야</font></font>
갈등의 씨앗을 뿌린 것은 한전이니, 해결책을 찾는 것 역시 한전의 몫이다. 이계삼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은 “주민들이 반목한 원인인 한전이 나서야 한다. 그동안 마을 주민들을 돈으로 회유하고 갈라놓은 사실관계에 대해 인정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 이를 위해선 우선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전이 밀양 주민들에게 어떤 일을 했는지 낱낱이 밝혀야 한다”며 “마을이 더 무너지기 전에 정부가 이 모든 일이 빠르게 진행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동지 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노랫말 한 토막처럼 주민들은 한겨울에 핀 꽃같이 드문 희망을 바라고 있다. 그리고 한국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이 갈가리 찢긴 마을의 기막힌 사연에 관심 가져주기를 바란다. 밀양 송전탑 아래엔 여전히 사람 사는 ‘마을’이 있다고!
밀양=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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