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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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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원전? 친원전? 두 얼굴의 서생면

신고리원전 5·6호기 건설 중단 반대하는 울주군 서생면…

반대 주민에 반대하는 또 다른 마을 여론
등록 2017-07-26 13:40 수정 2020-05-02 19:28
타워크레인이 보이는 구역이 건설 중단 결정이 내려진 신고리원전 5·6호기 건설 부지다. 왼쪽은 2016년 12월 상업운영을 시작한 신고리원전 3호기와 올 12월 가동이 예정된 4호기의 모습. 김봉규 기자

타워크레인이 보이는 구역이 건설 중단 결정이 내려진 신고리원전 5·6호기 건설 부지다. 왼쪽은 2016년 12월 상업운영을 시작한 신고리원전 3호기와 올 12월 가동이 예정된 4호기의 모습. 김봉규 기자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면은 최근 ‘탈핵’과 ‘탈원전’에 반대하는 마을로 유명세를 탔다. 문재인 정부가 선언한 탈핵 정책의 신호탄인 신고리원자력발전소 5·6호기(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결정이 계기가 됐다.

“탈원전 찬성하는 주민 여론이 묻히고 있다”

지난 7월13일 신고리 5·6호기 공사 중단 결정을 내리기 위해 소집된 한국수력원자력 이사회는 이에 반대하는 한수원 노조에 의해 무산됐다. 현장엔 ‘공사 중단 반대’ 집회를 연 마을 주민 380여 명이 있었다. 7월19일 기자가 찾은 서생면 곳곳에는 ‘원전정책으로 국론 분열하는 대통령을 탄핵하자’(신리마을 이주대책위원회), ‘한수원 사장은 정부 눈치 그만 보고 소신 있게 행동하라’(남울주원로회) 등의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과격한 현수막 아래서 꿈틀대는 미묘한 여론이다. 서생면에서 만난 주민들 가운데 드러난 ‘마을 여론’과 전혀 다른 속내를 털어놓는 이도 있었다. “며칠 전 경주 집회가 있었잖아요. 집회에 참여했지만 개인적으로 원전 자체를 반대합니다. 사진 보면 알지만 70~80%는 나이 드신 분이세요. 젊은 사람 얼마 안 됩니다. 어촌계별로 ‘안 나오면 나중에 보상받을 때 불이익 준다’ 하니까 할매, 할배들이 무서워서 나간 거예요. 나도 선후배 눈치 보여 앉아 있었는데, 뭐하는 짓인가 싶어….”

이름은 밝히지 말라는 박아무개씨는 지금 언론에 보도되는 건설 중단 반대 여론은 서생면 주민 전체 의견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오히려 “주민 여론이 묻히고 있다”고 했다. “민주주의에선 내가 싫으면 싫다고 얘기할 수 있잖아요. 그걸 못합니다. 지방 언론은 지역에 우호적이고. 서울에서 오셨다니까 원전 건설은 주민투표로 결정하자고 제발 제대로 써주이소.”

마을 형님들과 족구하러 가다 기자를 만난 박씨는 “빨리 가야 한다”면서도 40분이나 기자를 붙들고 말을 쏟아냈다. 원전 건설 현장에서 일한다는 그는 원전에 반대하면 “원전에서 밥 벌어먹고 살믄서 와 반대하노?”라고 배척당한다며 답답해했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마을 내에도 ‘찬성 주민’이 존재하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두 얼굴의 서생면에선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서생면은 신고리 5·6호기가 없다 해도 이미 전국 원전의 3분의 1을 끼고 있는 국내 최대 ‘원전 마을’이다. 전국 원전 28기(공정률 90% 이상 원전 3기 포함) 가운데 8기가 서생면 인근에 있다. 서생면 최남단 신암리에 신고리원전 1·2호기와 3·4호기가 있고, 여기에 접한 부산 기장군 장안읍 최북단 효암리와 길천리에 고리원전 1~4호기가 있다. 행정구역상 지명이 달라 별개 마을인 것처럼 보이지만, 1978년 국내 최초로 가동된 고리원전 1호기와 2016년 12월 상업운전을 시작한 최신 원전인 신고리원전 3호기 사이의 거리는 3km밖에 되지 않는다.

신고리원전이 들어서고 지역경제 죽었다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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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맛보면 끊을 수 없는 마약처럼 원전 1·2호기가 들어선 마을은 3·4호기, 5·6호기에 서서히 잠식됐다. ‘건설 기간 및 비용 절약’을 목적으로 한번 들어설 때마다 짝지어 2기씩 연계 건설되고, 원전 불안감으로 신규 부지를 선정하기 어려우니 주민 합의를 거친 곳을 선정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전국에 있는 원전 28기가 여러 지역에 분산되지 않고 4개 마을에 밀집한 이유다. 경북 울진군 북면(한울 1~6호기, 신한울 1·2호기), 전남 영광군 홍농읍(한빛 1~6호기), 경북 경주시 양남면(월성 1~4호기, 신월성 1·2호기) 등이 그렇게 원전에 마을을 빼앗긴 곳이다. 전국 전력소비량의 30%(15만6407GHh)라는 어마어마한 전력이 네 마을에서 생산된다(2015 한국전력통계).

“2000년대 초반 신고리 3·4호기 짓는다 할 때 솔직히 기대 많이 했어요. 그때 농협, 우체국, 면사무소에 가면 한수원이 원전 좋다고 홍보하는 전단지가 쌓여 있었어요. 유동인구가 1천만 명이 된다, 지역경제가 활성화된다. 그 말을 다 믿었어요.” 7월19일 서생면에서 만난 이종원 서생면 상가발전협의회 회장이 말했다. 그의 말대로 한수원 고리원자력본부 누리집에는 아직도 ‘지역경제 기여도’ 항목에 “건설 기간 6~7여 년간 건설 인원 연인원 1천만 명이 총임금의 30% 정도를 지역에 사용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쓰여 있다. 신고리 3·4호기는 2007년 9월 착공됐고 2016년까지 공사가 지속(애초 2013년 준공 목표였으나, 한수원 간부들의 불량 부품 납품 비리 탓에 2016년으로 준공 기간이 연장됐다)됐다. 그러나 10여 년간 서생면의 지역경제가 살아나기는커녕 더 어려워졌다고 한다.

서생면에서 두 번째로 큰 마을인 진하마을 내 진하해수욕장은 ‘지역경제가 죽었다’는 이종원 회장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와 다름없다. 7월 성수기 오후 2시쯤 해수욕장을 따라 늘어선 횟집의 야외 평상 40여 개는 텅텅 비었다. 해변엔 다음날 개막하는 ‘세계비치발리볼대회’ 세트장 공사를 하는 사람들과 연습하는 선수 외에 물놀이를 즐기는 피서객은 20여 명뿐이다.

울주군은 진하해수욕장의 피서객 수용 규모를 5만 명으로 본다. 원전으로 서생면의 지역경제가 살았다면 횟집과 각종 상가가 밀집해 있고 해돋이 명소로 유명한 진하해수욕장은 가장 큰 혜택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상인들은 마을을 덮친 불경기가 “심각한 상태”라고 했다. 횟집에서 주방일을 보던 한 주민은 기자를 보자마자 화부터 냈다.

“원전? 어느 미친 놈이 원전 하자카노. 해운대(노)선은 와 끊었노.” 한수원이 공언한 연인원 1천만 명은커녕 관광객마저 급감하는 현실에 주민들은 생계의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마을을 지나는 버스가 하나둘 사라지는 상황은 ‘마을이 죽어간다’는 것을 알리는 ‘경보음’이다. 부산 해운대와 진하해수욕장을 오가는 시외버스 노선은 올해 폐지됐다. 현재 진하해수욕장을 지나는 버스는 2대뿐이다. 울산시 버스정책과 관계자는 “모니터링을 계속하는데, 서생면은 승객 증가 요인이 없다. 오히려 버스 사업자 쪽에서 승객이 없으니 배차 간격을 늘려달라고 요구하는 중”이라고 했다.

해녀로 일하면서 횟집을 운영하는 주민 지영순(가명)씨는 “원전 때문인지 모르겠는데 한해 한해 다르다. 몇 년 전만 해도 하루 평균 100만원씩 벌었는데, 지금은 마수(첫 매상을 올리는 일)를 못할 때가 있다”고 했다. 지씨는 원전 피해를 바다와 자신의 몸에서 확인한다고 했다. “바다에 들어가서 보면 돌이 죽었다. 돌에 잡풀이 막 생기매, 막 파래 같은 게 돋으면 돌이 죽는기라. 이기(원전) 없을 때 옛날에는 양장구(성게)가 빨간 했어. 지금은 늙은 할매 뱃가죽 같은데 말해 모하노. 바다가 죽고 있는 거 해녀들은 다 안다.” 그는 한자리에서 갑상샘암에 걸린 해녀 4명의 이름을 꼽았다. 현재 마을에서 물질하는 해녀는 30여 명이다.

고리원전 1~4호기 인근 일광면에서 30년 가까이 살다 2006년 서생면 간절곶에 횟집을 차려 이주했다는 정기태(가명)씨는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참사 이후 상인들이 여름철 밤샘 영업을 접고 저녁 8시에 문 닫는 일도 있다고 했다. 경남 동해안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뜬다는 해돋이 명소 간절곶, 가장 목 좋은 자리에 위치한 그의 횟집에서 바다를 보면 11년 전에는 없던 돔 지붕의 신고리 3·4호기가 시야를 가린다.

서생면 주민이 쓰레기냐

지역경제를 살린다는 말처럼 ‘원전이 안전하다’는 한수원의 주장(한수원의 최근 홍보 포스터 슬로건은 ‘우리 땅, 우리 가족, 우리 국민이기에 우리의 기준은 단 하나, 안전입니다’이다)을 정씨는 믿을 수 없다고 했다. 2013년 부산지검의 원전 비리 수사 과정에서 불량 부품 납품, 문서 위조 등으로 한수원 간부 등 126명이 기소될 때, 신고리 3·4호기 내진 설계 시험도까지 위조된 사실이 드러났다. “안전 조치도 제대로 안 해놓고 경제 논리만 따집니까. 8천 명 서생 주민은 쓰레기입니까, 짐승입니까.” 정씨는 얼굴이 붉어지도록 목소리를 높였다.

신고리 3·4호기 건설 당시 주민 개별 보상은 원자력안전법에 따라 원자력안전위원회가 고시한 주거제한구역(EAB)으로 설정된 원전 반경 560m 이내 이주 대상 주민에게만 이뤄졌다.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마을 전체에 지원이 가능하지만, 이 역시 5km 반경으로 정해졌다. 신고리 3·4호기로부터 6~8km 떨어진 진하마을은 원전 건설로 인한 보상·지원 대상이 아니다. 보상·지원 범위는 작지만 피해 범위는 넓다. 방사능 누출 사고 비상 대책이 실시되는 ‘방사선 비상계획구역’은 8~10km다. 서생면 깊숙한 곳에 ‘탈원전 여론’이 부글부글 끓는 배경엔 혜택은 받지 못하면서 방사능 위험 구역으로 지정된 데서 오는 피해만을 떠안아야 하는 국책사업 보상 및 지원 메커니즘이 있다.

법에 따라 지원받는 신고리원전 3·4호기 최인접 마을인 서생면 신리마을에선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반대한다”는 주민을 만날 수 있었다. 신리마을의 전직 이장은 ‘서생면 주민협의회’ 원전특별위원회 임원이다. 신리마을은 500m 앞에 신고리 3·4호기가 있는 곳으로 5·6호기 건설 과정에서 마을 전체가 이주하도록 한수원과 협의된 상태였다. 7월19일 찾은 신리마을은 C자 형태로 마을을 파고든 작은 바다에 어선 수십 대가 미동도 없이 정박해 있었다. 한 주민(36)은 “모두 보상받은 배”라고 했다. 그는 “5·6호기 공사 때문에 시끄럽지 신고리 3·4호기로 인한 피해는 없다”고 했다. 그는 ‘공사만 중단되고 없던 일이 되면 조용히 살 수 있지 않냐’는 기자의 질문에 비로소 신고리 3·4호기로 인한 피해를 입에 담았다. “하루에 몇 번씩 펑 하는 소리로 집이 흔들리고 금이 갔다는 집이 많아요. 해녀인 어머니 일을 돕는데 물건이 많이 없어요. 옛날에는 양이 많아서 밤늦게까지 일했거든요. 성게도 줄고 고둥도 줄고 껍데기만 있는 것도 많아요. 바다 오염시켜놓고 여기서 우예 살란 말이에요.”

마을 여론은 원전일까, 탈원전일까

이름도 나이도 말하지 않겠다는 한 할머니는 기자에게 금이 간 자신의 집을 여기저기 보여줬다. 그는 집 현관에 서서 온몸을 흔들며 “한 번씩 우르르 쿵, 우르르 쿵 하면 집이 다 흔들린다”고 말했다. 집은 많이 낡았고, 할머니는 생계 때문에 원전 청소를 하러 다닌다고 했다. ‘원전 들어와서 좋아진 게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할머니는 손사래를 쳤다. “주민들은 혜택 본 거 없고, 동네 전체 지원금으로 돈은 좀 나왔다. 그때 개인한테 100만원인가 나왔는가. 그거 외에는 없고 동네 전체적으로 (뭐가) 나오는갑대. 혜택 본 거는 나는 모른다.”

신고리 5·6호기 공사 중단으로 흔들리는 서생면의 진짜 여론은 무엇일까. 현재 언론에 등장하는 주민 대표들은 주민들의 의사를 정확히 반영할까.

울주(울산)=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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