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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 깨졌다 국가가 나서라

제주 강정마을 주민 101명 설문조사…

일감 잃고 계모임 사라진 10년의 잔혹사
등록 2017-06-27 10:03 수정 2020-05-02 19:28
세  마을  잔혹사


1부  제주  강정마을


① 강정 10년, 마을은 어떻게 짓밟혔나
② 강정마을의 이주자들
③ 강정 10년, 전수조사


제주 강정마을은 590여 가구에 2천여 명이 사는 큰 마을이다. 마을회의 투표권을 가진 주민만 1100여 명이다. 은 지난 5월부터 6주에 걸쳐 강정마을 주민을 설문 형식으로 전수조사했다. 강정마을회와 함께 설문 문항을 작성했고, 강정마을로 이주한 지킴이들의 도움을 받아 500여 가구에 직접 설문지를 전달했다. 강정마을을 네 번 오가며 면담조사도 했다. 가구 현황, 경제활동, 마을공동체, 해군기지에 대한 견해까지 총 20개 항목을 물었다.
어떤 주민은 설문조사 자체를 거부했고, 조사의 편향성을 되묻는 주민도 있었다. 설문조사에 응하지 않겠다고 한 이들은 대부분 “이제 와 이걸 한들 바뀌는 게 있냐”고 했다. “해군기지만 생각하면 골이 아파서 하고 싶지 않다”는 주민도 있었다. 적극 조사에 응한 10여 명은 심층면접을 진행해 생애사를 포함한 이야기를 들었다. 설문조사에 응한 마을 주민은 총 101명이었다. 해군기지 유치에 찬성했던 주민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으려 했으나, 기지 찬성 주민의 경우 낯선 이가 건네는 설문지 자체를 경계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취재 김완·김선식 기자, 편집 정환봉 기자, 사진 박승화 기자, 디자인 장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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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에 의해 파괴된 마을의 ‘오늘’은 문재인 정부의 ‘내일’일지 모른다. 문재인 정부가 여러 ‘개혁 드라이브’를 걸지만, 아직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정권의 성패는 개혁적 인사를 발탁하고, 개별 이슈에 가시적 조치를 내놓는 것만으로 달성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시스템 교체이고, 이미 실패했던 경로를 복기해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것이다.

갈등 예방의 부재

한국 사회는 갈등을 예방하는 공공적 기능이 사실상 부재하고, 공동체가 이를 민주적으로 조율했던 경험 역시 부족하다. 2000년대 이후만 훑어봐도 전북의 새만금 개발(1998), 부안 핵폐기장 건립(2003), 경기도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 확장(2005~2006), 서울 용산 재개발(2009), 경남 밀양 송전탑 설치(2008~), 경북 성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2016~) 배치까지 거의 매해 국가적 차원의 갈등이 지역 이름만 바꿔 달면서 반복돼왔다. 이는 전국 ‘마을’들이 ‘국책사업’으로 불리는 폭력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과정이었다. 마을 바깥 사람들은 손쉽게 그들을 “국가의 결정에 반하는 이기주의자들”이라고 비난했다. 국가가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영문을 알 수 없는 마을 사람들은 일방적 결정 이후 ‘찬반’의 깃발 아래 갈라졌다. 그 솥발 같은 대립을 국가는 경찰 등 폭력적 국가기구를 동원해 밀어붙이며 빠져나갔다.

민주적 의사결정이 생략된 일방적인 국책사업 결정과 그 추진 과정에서 벌어진 잔혹한 사건들은 이따금 정권의 명운을 뒤흔드는 주요 정치 현안으로 주목받았다. 참여민주주의의 열망을 안고 탄생한 참여정부는 출범 직후인 2003년 7월 부안 핵폐기장 문제를 거치며 정당성에 흠집이 생겼다. 개개인의 경제적 성공 욕구를 자극하며 출범한 이명박 정부 역시 2009년 1월 용산 참사 이후 국민 통합 노력을 포기해야 했다.

문재인 정부는 이것에 얼마나 큰 문제의식을 가졌을까. 과거 ‘적폐’를 청산하겠다는 구호를 내세우지만, 전근대적 갈등 해소 시스템의 부재는 여전히 표면화되지 못한다. 의 장기 탐사기획 ‘세 마을 잔혹사’는 이 지점의 대안을 모색하는 동시에, 한국 사회가 다시는 같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지 않는 방법을 찾아보려 한다.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은 10년째 해군기지 반대 투쟁을 벌이고 있다. 군사기지는 2016년 2월 완공됐지만, 싸움은 현재진행형이다. 지난 6월20일에는 미군 이지스함 듀이(DDG-105)의 입항을 막겠다며 마을 주민들이 카약을 타고 해상시위를 벌였다. 이튿날 들어온 캐나다 군함은 강정마을에 쓰레기와 오·폐물을 버렸다. 강정마을은 여전히 국가에 의한 공동체 파괴, 그 대표적 현장이다.

은 지난 5~6월 6주 동안 강정마을 주민 전 가구에 설문지를 전달해 101명에게서 응답을 받았다. 주민들이 원한 건 강정에 해군기지를 짓기로 한 정부의 의사결정과 이후 폭력적 정책 집행의 진상 조사였다. 문재인 정부는 이미 해군이 주민들에게 공사 지연의 책임을 물어 청구했던 ‘구상권’을 철회하겠다고 공약했다. 구상권 철회가 시혜나 선심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진상 조사가 필수적이다. 그래서 강정마을회는 ‘진상 조사에 기반한 사과’가 먼저이고 이후 △구상권 철회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등 후속 조처를 최소한의 요구로 내걸었다. 현재 문재인 정부가 검토 중인 구상권 철회는 실타래처럼 얽인 강정 문제의 극히 ‘일부’에 불과한 셈이다.

설문조사 결과, 가장 눈에 띄는 건 ‘삶의 만족도 변화’였다. ‘해군기지 건설 전과 비교해 지금 삶의 만족도가 어떠하냐’는 질문에 3.9%(4명)만이 ‘높아졌다’고 답했다. 53.4%(54명)는 ‘낮아졌다’고 했고, 20.7%(21명)는 ‘변함없다’고 답했다. ‘모르겠다’는 응답도 20.7%(21명)였다. 해군기지 건설 뒤 마을 주민 절반 이상이 삶의 만족도가 ‘낮아졌다’고 응답한 것은 정부가 마을에 약속한 “해군기지 유치 이후 보상과 발전”이 거짓말이었음을 보여준다. 정부는 해군기지를 유치하면 강정마을 발전에 1천억원 이상 투자하겠다고 ‘공언’했다. 실제 도로 건설과 종교시설 건립 등 인프라 투자가 이뤄지긴 했다. 이는 마을 주민들의 삶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70대 마을 주민 ㄱ씨는 “돈을 죄 애먼 데 썼고, 처음부터 주민들을 속였다”고 말했다.

25명이 마을 일자리를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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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만족도 하락은 주민들의 직업 변화 추이와 그 이유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났다. 강정마을 내에서 농어업이나 제조업, 서비스업에 종사하던 이들은 ‘농지가 수용’(10명)됐거나 ‘바다가 매립’(7명)되며 직업을 잃었다. ‘기지 공사장의 소음과 공해’ 때문에 일을 못하게 됐다는 주민도 8명에 달했다. 대체로 강정마을 내 서비스업에 종사하던 이들이었다. 해군기지 건설로 마을 전체가 공사판이 되고 바다 입출입이 어려워지자, 숙박이나 요식업에 종사하던 이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은퇴 뒤 마을 앞바다에서 관광 고깃배 사업을 하려 했던 60대 마을 주민은 “한평생 준비해온 인생 후반전의 꿈을 해군기지가 빼앗아갔다”고 말했다.

‘변함없다’고 응답한 이들 역시 심층 대면조사를 해보니, 현재 상황에 만족하는 것은 아니었다. ‘변함없다’고 한 이들은 대체로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70대 이상 노인이었다. 태어나 계속 마을에서 살아온 노인들은 “그때도 힘들었고 지금도 힘들긴 매한가지”라는 반응을 보였다. 대면조사에 응한 80대 노인은 ‘변함없다’면서 “태어난 집에서 그대로 살고 있어, 살아갈 뿐”이라고 했다.

‘삶의 질이 높아졌다’고 응답한 이 가운데는, 해군기지 건설 뒤 집을 비워두고 새로 조성된 신서귀포 아파트 단지로 이주한 주민이 있었다. 강정마을 집은 비워두고 주말에 원래 다니던 마을 교회에 올 때만 살핀다고 했다. 한 50대 남성은 “마을이 삭막해져 자식 교육 문제로 이주했다”며 “농사짓던 땅이 관사로 수용돼 받은 돈을 보태 아파트를 샀다”고 말했다. 지난 몇 년 사이 제주도 전역의 땅값이 들썩이며 신서귀포 지역 아파트 가격의 오름세는 서울 강남 수준에 버금갔다.

마을 주민을 가장 괴롭게 하는 건 경제적 문제가 아니었다. 제주도는 ‘이 당 저 당 해도 괸당(‘친척’의 제주말)이 최고’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강한 연대성이 필수 불가결한 공동체 사회다. 육지 마을에도 공동체성이 없는 건 아니지만 제주도의 그것과 비할 바는 아니다. 강정마을 주민들은 해군기지 건설 10년의 가장 큰 폐해로 공히 ‘공동체성 파괴’를 꼽았다. 이는 ‘계’ 등 마을 내 공동체의 해체 수에서 확인된다.

해군기지 건설 이전 강정마을에는 마을 자치의 중심축이 되는 마을회·부녀회·청년회 외에 동갑들의 친목모임 ‘갑장회’를 비롯해 관광계 등 다양한 계모임이 촘촘히 유지됐다. 설문조사에 응한 101명 가운데 10년 이상 강정마을에 거주한 이는 80명이었다. 이 가운데 70명이 공동체 관련 질문에 응답했다. 조사 결과, 해군기지 건설 이전인 2007년 5월 기준으로 유지된 마을 모임 수는 총 221개였다. 10년이 지난 현재는 150개밖에 남지 않았다. 10년 전엔 1인당 평균 3.16개 마을모임에 참석했지만 현재는 2.14개로 감소했다. 마을모임 3개 가운데 1개가 사라졌다.

“찬성하는 놈들 미워서”

지난 6월20일과 22일 강정 해군기지에 입항한 미국과 캐나다의 군함은 제주도에 쓰레기와 오·폐물을 버렸다. 제주는 왜 다국적 군함들의 쓰레기 하치장이 되어야 할까. 강정마을은 여전히 국가에 의한 공동체 파괴, 그 대표적 현장이다. 강정마을회 제공

지난 6월20일과 22일 강정 해군기지에 입항한 미국과 캐나다의 군함은 제주도에 쓰레기와 오·폐물을 버렸다. 제주는 왜 다국적 군함들의 쓰레기 하치장이 되어야 할까. 강정마을은 여전히 국가에 의한 공동체 파괴, 그 대표적 현장이다. 강정마을회 제공

이 변화는 60대 이상에서 더 두드러진다. 설문조사에 응한 60대 이상은 28명인데, 이들은 해군기지 건설 전인 10년 전에 총 97개의 마을모임에 가입돼 있었다. 이 28명이 현재 가입한 계모임은 총 49개뿐이다. 1인당 평균 3.46개이던 모임 수가 1.75개로 줄었다. 길게는 수십 년간 유지된 60대 이상의 모임이 10년 사이 절반으로 준 셈이다.

어떤 모임이건 공동체는 그냥 해체되지 않는다. 회비를 기반으로 하던 모임에선 기지 ‘찬성파’와 ‘반대파’로 나뉘어 격한 분란이 벌어졌다. 지금은 그냥 마을회만 참여한다는 한 60대 노인은 “관광 계모임에서 몇만원 회비를 돌려주네 안 주네 누굴 먼저 줬네 하는 문제로 원수가 돼서 이제는 안 본다”며 “사실 그 문제가 아니라 기지 찬성하는 놈들 미워서 그랬다”고 말했다.

마을 공동체의 근간이던 모임이 깨진 건 결국 해군기지 때문이다. 강정마을 주민들은 ‘지난 10년간 가장 많은 마음의 상처를 준 집단’을 말해달라는 질문에 ‘국방부·해군’(26.7%)을 꼽았다.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는 대답이었다. 의외인 건 두 번째 답변이었다. 무려 18.8%가 ‘주민’을 꼽았다.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받은 것이다. 한 60대 남성은 “얼굴만 생각해도 피가 거꾸로 솟는 이가 몇 명 있다”고 했고, 50대 남성은 “행여 ○○○를 마주칠까봐 부러 피해다니는 길이 있다”고 했다. 대면조사에서 만난 30대 여성은 설문조사에 불쾌감을 표하며 “반대 데모하는 사람들하고 이런 것 할 시간에 다른 일을 하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강정마을 주민들은 구럼비 바위를 파괴하고 자리잡은 콘크리트 기지만큼이나 자기 마음을 파괴한 이웃의 누군가를 미워했다. 이어 많은 답변이 나온 집단은 제주도청(14.8%), 경찰(10.8%), 국회(2%)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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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희망은 여전히 주민이었다. ‘가장 적게 상처를 준 집단’을 말해달란 질문에 38%가 ‘주민’을 꼽았다. 기지 건설을 둘러싸고 찬반이 나뉜 뒤 찬성 주민들은 여전히 마을회에 발걸음을 하지 못한다. 노인회와 부녀회의 경우 이제 그 경계를 허물 노력이 조금씩 시작되고 있다. 한때 반대파만 모이던 경로당에선 이제 기지 찬성 노인들도 볼 수 있다. 부녀회도 소수이긴 하지만 찬성 주민이 오는 것을 막지 않는다. 80대 노인은 “어쩌겠는가, 이제 그냥 삭이고 살아야지”라고 말했고, 부녀회 활동을 하는 50대 여성은 “찬성했지만 굳이 부녀회에 나오는 것을 막지 않았다”고 누그러진 태도를 보였다. 강정 주민들은 이어 국회(19.8%), 법원(10.8%) 등이 별로 상처를 주지 않았다고 했는데 이 숫자는 주민들이 지금 어디에 희망을 걸고 있는지 보여준다.

경제적 보상 요구는 14%뿐

이는 상처 치유 방안 응답에서도 확인된다. ‘상처 치유 방안을 복수로 골라달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55%가 ‘국가의 사과를 통한 주민 명예 회복’이 마음의 응어리를 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했다. ‘공동체 관계 회복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40%였는데 이 역시 국가 차원의 개입이 필요하다. ‘경제적 보상이 필요하다’는 14%에 불과했다. 지난 10년의 세월이 보상금 얼마로 해결될 문제가 아님을 주민들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5% 주민들은 아예 ‘상처 치유는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주민에게 기지 공사 지연 책임을 물어 부과한 ‘구상권’ 철회를 공약한 문재인 정부는 한발 더 나아가 국가의 폭력적 정책 집행의 진상 규명과 사과를 요구하는 주민들의 요구에 전향적으로 응답할 수 있을까.




강정투쟁  10년,  결정적  10장면


*큰따옴표 안은 주민 설문 중 ‘지난 10년간 가장 상처받은 일’에 대한 응답들.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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