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득표율 41.1%로 제19대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24.0%,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21.4%,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는 6.8%,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6.2%를 획득했습니다. KBS·MBC·SBS 방송 3사 예측조사는 매우 높은 예측력을 보였습니다. 선거 초반, 몇몇 후보 캠프에서 지지도 조사 결과를 두고 여론조사 기관을 고소·고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이번 대선 기간 여론조사는 제 몫을 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여론조사 신뢰도는 민주주의·정치 수준과 비례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도는 법정 선거운동 기간에 발생한 여러 사건의 영향을 받지 않고 득표율로 직결된 반면, 홍준표 후보와 유승민 후보는 가파르게 지지도가 상승하며 득표율로 연결되었습니다. 중도 및 보수 성향 유권자 표심이 많이 흔들렸던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지지 의향을 밝히고 투표일까지 갈팡질팡하다가도 결국 한 후보를 선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지지 의향이 바로 투표로 연결되었지만,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 두 개 이상 선택지가 일상화된 정책 환경 도래한 개의 선택지 또는 두 개 이상 선택지, 어떤 쪽이 의사 결정하기 쉬울까요. 미국 사회행동학 교수 배리 슈워츠는 찬성인지 반대인지, 상품을 구매할지 구매하지 않을지의 의사 결정이 두 개 또는 그 이상의 선택지로 의사 결정하는 것보다 쉽다고 말합니다. 선택지가 많을수록 의사 결정이 까다로워지는 모양입니다.
우리는 지금껏 양당 체제에서 ‘A 대 not A’로 선택을 강요받아 왔습니다. 쉽고 편하며 단순한 결정을 강요받은 것이죠. 친기업이냐 반기업이냐, 친노동이냐 반노동이냐, 친북이냐 반북이냐, 친세계화냐 반세계화냐 등으로 말이죠. 안티테제와 네거티브만으로도 선택을 강요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익숙한 구도였죠.
2017년 대선은 달랐습니다. 선택지가 여럿이었습니다. 문재인,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심상정…. 그래서인지 대선 정국을 가르는 명확하고 큰 이슈가 형성되지 못했습니다.
1997~2012년 네 차례 대선에서 투표일을 일주일 남겨두고 조사된 각 후보의 지지도 편차는 모두 0.1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2017년 대선에선 각 후보의 편차가 문재인 1.5, 안철수 1.6, 홍준표 1.8, 유승민 0.6, 심상정 1.3이었습니다. 후보별 지지도의 흔들림이 컸다는 것은 그만큼 유권자가 지지 후보를 선택하는 데 애먹었다는 방증이죠. 다변화된 여론 환경은 새 대통령이 직면할 정책 추진 과정에서도 적용될 공산이 큽니다.
과 공공의창은 지난 3월부터 8차례에 걸쳐 대선 정국의 여론을 파악하려 노력했습니다. 주간지 특성 때문에 기사로 공개되는 시점에선 한발 늦은 분석이 되고 말았지만 ‘공공의 이익’ 측면에서 대선을 바라보려고 노력했습니다.
몇 가지 가이드라인도 제시했죠. ‘후보는 진영 논리에 빠져선 안 된다’(3월7일). ‘국정 운영에 정당의 책임정치는 절대적이다’(3월20일). ‘진보와 보수의 자기혁신이 바로 국민 소통법이다’(4월4일). ‘정당체제의 인위적 변화와 지도자의 과도한 역할 및 이벤트가 아니라 국가와 정당시스템으로 지지를 획득해야 지속 가능한 국민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4월11일).
일부 성과도 있었습니다. ‘이전과 다른 TV토론 방식이 필요하다’(3월15일). ‘대통령은 적어도 1년에 한두 차례 서울 광화문에 나와 국정 과제를 놓고 시민과 토론해야 한다’(4월19일). 그 후 TV토론 방식이 바뀌었습니다. 특히 시민원탁회의 제안은 문재인 대통령이 5월2일 마지막 TV토론 자리와 5월8일 마지막 유세, 대통령 취임선서 등에서 약속했습니다. 이 여론 분석을 여론조사 분석으로 묶어두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 정책과 대안까지 제안할 수 있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당선과 득표율(41.4%) 예측은 맞았지만 후보별 격차와 순위는 예측하지 못하는 실수도 있었습니다(4월25일).
# 여론은 과거와 현재의 기록‘정치는 생물’이라 말하는 이유는 정치를 주도하는 여론이 ‘살아 있는 생물’이기 때문일 겁니다. 여론은 태어나고 자라면서 활동하다 죽습니다. 여론은 다른 여론과 긍정적·부정적 관계를 맺으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같은 여론이라도 측정 시점과 조사 방법에 따라 달리 보이기도 하죠. 여론은 과거와 현재의 기록입니다. 노무현 정부,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의 집권 6개월 차를 되돌아보았습니다. 새 대통령이 다변화된 여론에 어떤 원칙과 기준으로 접근하는 것이 공공의 이익에 부합할지 살펴보았습니다.
# 더불어민주당 정부가 첫 단추를 잘 꿰려면과거 정부 집권 초기에 발생하는 몇 가지 특징을 발견했습니다. 먼저, 국정 목표가 다소 주관적이거나 권위적인 방식으로 채택됩니다. 여론에 편승하거나 여론과 부딪히는 과정이 국정 운영 초반부터 반복됩니다. 인사정책, 외교안보정책, 사회정책 등의 순으로 정책이 검토되고 추진됩니다. 경제 이슈는 국정 초반에 보이지 않습니다. 개혁보다 안정을 택하는 모습입니다.
문재인 정부는 첫 단추를 잘 꿰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번 대통령은 ‘성공한 시민’과 ‘실패한 정부’ 사이에서 탄생했기 때문입니다.
① 국정 목표는 시민의 손으로: 지금까지 국정 목표는 전문가의 손에 맡겼습니다. 그러나 시민의식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성장했습니다. 대통령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국민과 토론하는 모습은 촛불집회 다음으로 21세기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장면이 될 것입니다. 시민 참여를 통해 진지한 고민과 토론 끝에 의사 결정을 하는 국정 운영 방식을 시스템으로 안착시키는 중요한 계기로 작용할 겁니다. 대통령은 불필요한 논쟁에서 벗어나 조력자·집행자 역할에 충실할 수 있습니다.
② 국정 지지도는 경제지표와 연동: 국정 지지도는 일종의 공공성 지표, 국민 삶과 함께 가야 하는 지표입니다. 정치 구도에 묶여 있으면 곤란합니다. 2000년 이후 대통령 지지도와 각종 경제지표를 비교해보면 실업률, 물가상승률, 투자설비지수 등은 높은 상관성을 보입니다.
③ ‘노사정시위원회’ 가동: 국가경제는 물론 산업·기업·노동·복지 등 각종 사회정책에도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결정입니다. 이해관계자 중심의 합의에서 소비자, 국민·공익 중심의 합의가 필요합니다. 비공개 토론으로 얻어진 합의가 공개 토론으로 얻어진 합의보다 공공의 이익에 가까울 리 없습니다. 시민 대표도 참여해야 합니다. 의사 결정의 투명성 확보가 관건입니다. 노·사·정 문제는 대통령이 혼자 책임을 떠안을 문제가 아닙니다.
④ 공무원 사회에서 대통령의 령: 대통령 당선 뒤 20~30일이 지나면 나오는 말이 있습니다. ‘대통령이 공무원 사회에서 령이 섰다’ ‘공무원 사회를 장악했다’와 비슷한 표현일 겁니다. 착각일 수 있습니다. 대통령의 생각과 정책이 하급 공무원, 동주민센터와 읍면사무소까지 이해되고 집행될 때 완성되는 것입니다. 정책 결정은 그 시작의 10%에 불과합니다.
⑤ 장밋빛 청사진의 유혹 버려야: 높은 기대를 만들어놓고 부응하지 못하면 국정 지지 하락, 신뢰 철회의 주요 원인이 됩니다. 국정 동반자인 국민이 짊어져야 할 짐의 무게도 함께 이야기해야 합니다. 정권 초기 경제 개혁 목소리가 높지 않았던 이유일 겁니다.
⑥ 논공행상 용인해야: 선거를 통해 집권했습니다. 논공행상을 용인하고 국정철학이 각 부문에 스며들게 해야 합니다. 책임도 분명하게 져야 합니다. 민주주의는 과정을 중시하지만 정치는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책임지게 하고 책임을 물어야겠죠.
⑦ 대통령의 여론 청취 방식: 청와대의 여론조사 부서는 대통령과 가장 먼 거리에 있어야 합니다. 동대문시장이나 남대문시장 쪽에 설치하는 것도 좋습니다. 자기검열과 주변 시선에서 벗어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국정 지지도가 떨어지는 것은 담당자의 잘못이 아닙니다.
대통령은 여론조사 기관이 실시하는 좌담회에 정기적으로 참관할 것을 권합니다. 모니터룸에 있으면 좌담회 참석자와 분리됩니다. 민심은 대통령 얼굴을 보면 숨어버립니다. 마지막으로 대통령과 기초자치단체의 소통이 필요합니다. 수많은 기초자치단체가 수시로 시민과 소통하고 있습니다. 정부 행정기관 가운데 시청·구청은 시민의 삶과 가장 밀접하게 연결된 기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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