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16일, 오전 9시를 조금 넘긴 시각. 자동차는 기계가 낼 수 있는 최대 속도로 전남 진도 팽목항을 향해 달렸다. 사고 해역에 도착했지만, 현장에 접근할 수 없었다. 근처 진도 쉬미항에서 출항하는 해경 배에 힘겹게 올랐다. 뱃길 2시간30분을 달려 도착한 사고 현장에서 해는 이미 저물고 있었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그때 해군 수송기가 하늘로 발포한 조명탄이 터졌다. 컴컴한 동거차도 앞바다가 순간 카메라 뷰파인더에 들어왔다.
세월호는 어둠 속에서 실종자들과 함께 침몰하고 있었다. 대한민국은 세월호에 살아 있던 생명 304명을 구조하지 못했다. 선장을 비롯한 선원들은 도주했다. 무능하고 부패한 박근혜 정부도 세월호를 내버렸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조직은 마비됐고, 누구도 세월호 참사를 나서서 막지 못했다.
이 사진들은 비극의 현장을 카메라 뷰파인더로 바라본 고통스럽고 슬픈 감정의 시각적 표현이다. 기자이기에 앞서 갓 쉰을 넘긴 이 시대 보통의 아버지로서 찍은 것이기도 하다. 기자도 그저 한 인간, 힘없는 50대 아버지다. 그러나 슬퍼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사고 뒤 진도 팽목항과 사고 해역에서 가장 가까운 동거차도 앞바다를 셀 수 없이 다녀왔다.
기자 초년 시절부터 카메라 앞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을 기록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셔터를 눌러왔다. 그래야만 훌륭한 기자인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지난 27년 동안 수많은 사건과 사고를 기록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는 달랐다. 컴컴한 바닷속에서 아이들이 ‘엄마’ ‘아빠’를 부르며 숨져갔다. 나도 또래 아이를 키우는 부모였다. 좀처럼 카메라를 들이대기 어려웠다.
내 손에 쥔 카메라로 무엇을 전달해야 할까. 그 참혹한 모습 앞에 한 인간의 능력으로 거대한 참사의 진실을 보여주는 게 과연 가능한가, 아울러 그렇게 하는 것이 합당한지 스스로 질문하며 괴로워했다. 내겐 용기와 지혜가 없었다.
당시 팽목항 부두엔 희생자 주검을 옮겨와 신원을 확인하는 시신 확인소가 있었다. 부모들은 바닷속에서 퉁퉁 부은 채, 물 위로 떠오른 자식의 주검을 마주했다. 엄마는 통곡하며 피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팽목항을 서성거리며 가슴으로만 그 모습을 담았다.
이 사진들은 참사 당일부터 세월호가 인양될 때까지 3년의 기록을 힘겹게 추린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별이 됐다. 밤이 되어도 외롭거나 무서워하지 말기를, 꿈속에서나마 따뜻한 엄마 품에 잠들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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