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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에 대해 궁금한 10가지

어쩌면 10년 뒤, 100년 뒤의 상식… 인간으로서의 권리, 존재 그 자체를 위한 돈
등록 2016-09-20 18:07 수정 2020-05-03 04:28
지난 7월7~8일 서울 마포구에서 열린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IEN) 16차 세계총회가 끝난 뒤 참석자들이 다 함께 손을 흔들고 있다. 기본소득 이론의 틀을 마련한 필리프 판 파레이스 벨기에 루뱅대학 특별객원교수, 가이 스탠딩 영국 런던대학 교수 등 전세계 기본소득 지지자들이 모였다.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제공

지난 7월7~8일 서울 마포구에서 열린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IEN) 16차 세계총회가 끝난 뒤 참석자들이 다 함께 손을 흔들고 있다. 기본소득 이론의 틀을 마련한 필리프 판 파레이스 벨기에 루뱅대학 특별객원교수, 가이 스탠딩 영국 런던대학 교수 등 전세계 기본소득 지지자들이 모였다.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제공

기본소득은 유토피아를 꿈꾸는 허무맹랑한 몽상가들의 주장일까? 아니면 불평등, 일자리 감소 등 자본주의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현실적인 대안일까?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서 기본소득을 둘러싼 논쟁은 울타리 안에 갇혀 있었다. 열혈 지지자들과 몇몇 학자들끼리만 돌고 도는 찬반 논쟁을 벌였을 뿐, 기본소득은 일반인에게는 여전히 낯설다. 기본소득이 대체 뭔지, 과연 한국에서 실현 가능할지, 실제 정책으로 입안되려면 어떤 점이 보완돼야 하는지 등을 10가지 질문과 답으로 알기 쉽게 정리했다.

1. 기본소득이 뭔가요?

누구나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국가가 보장해주는 일정한 소득을 뜻한다. 기초생활수급자 생계비, 실업수당 등 기존 사회보장제도와 달리 ‘무조건적’이다. 재산이 얼마인지, 소득이 얼마인지, 과거에 취업한 경험이 있는지 등을 따지지 않고 사회 공동체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어떤 조건도 없이 기본소득을 받을 수 있다(기존 사회보장제도와의 차이점은 하단 표 참조).

최저생계비 등은 가구(가족)를 기준으로 지급되지만, 기본소득은 개인에게 준다. 기본소득은 인간 “존재 그 자체를 위한 돈”이기 때문이다. 인간으로서의 권리다. 기본소득을 받아 개인이 실질적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현금 지급을 원칙으로 한다. 평생 동안, 충분한 금액을, 규칙적으로 지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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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왜 지금 기본소득인가요?

최근 들어 불평등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으로 기본소득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위기다. 경제성장의 혜택이 소수에게만 집중되고, 괜찮은 일자리가 점점 사라지면서 기존 사회복지 시스템으로 떠받칠 수 없는 불안정한 노동자가 늘어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위협할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팽배하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폴 크루그먼, 로버트 라이시 등 유명 경제학자들이 너도나도 기본소득을 언급하고 있다. 국내에선 20대 총선에서 노동당과 녹색당이 기본소득 보장을 공약으로 들고나왔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전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와 이재명 성남시장 등도 여러 차례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3. 현실성 없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 아닌가요?

이미 유럽에선 기본소득제 도입을 위한 실험과 논의가 진행 중이다. 스위스에선 국민 1인당 조건 없이 월 2500스위스프랑(약 300만원)을 지급하는 방안을 두고 지난 6월 국민투표가 치러졌다. 찬성 23%로 부결되긴 했지만, 국민투표 덕분에 모든 스위스 국민이 기본소득을 공부하고 토론했다.

핀란드 정부도 내년부터 국민 중 2천 명을 무작위 선발해 월 560유로(약 70만원)를 지급하는 기본소득 실험을 진행한다. 기본소득이 기존 사회보장제도를 간소화하고 실업률을 줄이는 대안이 될 수 있는지 가늠해보기 위해서다. 네덜란드에서도 위트레흐트 등 지방도시 19곳이 내년부터 시민들에게 월 900유로(약 115만원)를 지급하는 기본소득 실험을 한다.

국내에서는 만 24살 청년들에게 연 100만원 지역화폐를 지급하는 경기도 성남시의 ‘청년배당’ 제도가 일종의 기본소득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4. 공짜로 돈을 주면 일하지 않고 놀고먹는 베짱이가 많아지지 않을까요?

기본소득은 사람들이 억지로 하는 일 대신에 자발적이고 창조적인 일을 선택할 조건을 만들어주고자 한다.

기본소득은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자본주의 패러다임을 전복하려 한다. 일하지 않는 노인, 아동, 장애인은 물론이고 사회에 꼭 필요한 활동을 하는데도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가정주부, 문화예술인, 자원봉사자 등도 충분히 먹고살 만큼의 소득을 사회가 보장해줘야 한다는 문제의식이다. 이 때문에 ‘게으른 자가 부지런한 자를 착취하는 구조’라거나 ‘무임승차를 용인하는 제도’라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한다.

기존 사회복지제도는 실업자를 고용(노동)시장으로 유인하려 하거나 ‘일하는 사람을 위한 복지’(workfare) 성격이 강하다. 반면 기본소득은 사람들이 억지로 하는 일 대신에 자발적이고 창조적인 일을 선택할 조건을 만들어주고자 한다.

5. 기본소득이 불평등 완화에 도움이 될까요? 오히려 빈부 격차를 강화하는 것 아닌가요?

나미비아와 인도에선 특정한 마을 주민들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실험이 이뤄졌다. 그 결과 빈곤층이 줄어들고 실업률이 낮아지는 등 긍정적 효과가 관찰됐다. 물론 극빈층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라, 한국에서 그대로 대입하기는 곤란하다. 다만 지지자들은 기본소득이 ‘빈곤의 덫’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내다본다.

예를 들어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려면 소득이 월 103만원(3인 가구 기준)을 넘지 않아야 하므로 저임금 일자리에서 뼈 빠지게 일하려 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기본소득이 보장된다면 더 마음에 드는 일자리를 찾아갈 가능성이 높아진다. 또 기본소득을 지급할 재원을 마련하려면, 기존에 소득이 많았던 사람들이 세금을 더 많이 내야 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소득재분배 효과가 강해진다고 기본소득 지지자들은 설명한다.

6. 기본소득 재원 마련이 가능할까요?

기본소득 지지자들이 말하는 재원 마련 방안은 크게 2가지로 나뉜다. 우선 조세로 마련하는 방안이다. 상속증여세 등 기존에 거둬들였던 세금을 늘리고 탄소세, 로봇세 등을 신설하자는 안이다. 다른 하나는 ‘공유재’(공동재산)에 대한 배당으로 돈을 마련하는 방안이다. 사회에는 공동체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100% 권리를 누릴 수 있는 공유재들이 있다. 태양·바람·물과 같은 천연자원, 인터넷이나 방송 주파수, 고속도로, 다리처럼 사회 공동의 노력으로 만든 것도 있다. 여기서 나온 이익을 특정 기업이 독차지하는 대신, 시민들에게 n분의 1씩 일정한 몫을 돌려주자는 게 ‘시민배당’의 취지다. 미국 알래스카주는 1982년부터 석유에서 나오는 수입을 주민 모두에게 배당금으로 지급하고 있다. 정부가 탄소배출권을 판매하거나 경매에 부쳐 확보한 수익을 배당금 재원으로 활용하는 상상도 가능하다.

7. 한국처럼 조세 저항이 심한 나라에서 과연 증세가 될까요?

한국의 ‘국민부담률’(국민이 1년 동안 낸 세금과 각종 사회보험료를 합한 총액이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6년 기준 24%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은 34%대 수준이다. 만약 국민부담률을 10%가량 올린다면 추가 복지를 위한 재정잠재력은 평균 170조원, 최고 245조원에 이른다(강남훈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 추정 모델).

국민 5100만 명을 기준으로 1인당 월 30만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한다고 가정하면 추가로 184조원의 재원이 필요하다. 문제는 보편적 복지제도에 익숙하지도 않고 세금 내기를 불편해하는 국민이 선뜻 재원 마련에 동의해주느냐다. 기본소득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재정 절벽을 넘어설 정치적 결단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기본소득이 실현 불가능한 꿈으로만 그칠 공산이 크다.

8. 최저임금 인상이나 실업부조 등 사회안전망 강화가 먼저 아닌가요?

한국처럼 노동권이나 사회권이 제대로 구축되지도 않은 사회에서 기본소득 논의는 “모래 위에(보편적 복지제도 없는) 성(기본소득)을 쌓아보자”는 시도에 불과(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할지 모른다. 이런 이유로 무상급식, 무상교육 등 보편적 복지를 찬성하는 진영에서조차 기본소득을 반대하기도 한다.

기본소득 제도가 미취업 청년, 비정규직 등 기존 복지 시스템의 ‘사각지대’를 메우는 효과가 있다는 찬성 입장과, 차라리 소외된 계층을 정확하게 짚어 맞춤형 복지 정책을 짜는 게 효과적이라는 반대 입장도 팽팽히 맞선다. 노동계에선 기본소득이 오히려 기업이 임금을 적게 줘도 된다고 주장하는 부메랑이 될 것을 우려한다.

9. 기본소득 지지자들은 ‘빨갱이’ 아닌가요?

그렇지 않다. 기본소득을 찬성하는 사람들의 스펙트럼은 굉장히 넓다. 핀란드와 독일, 일본 등에서는 우파들이 앞장서 기본소득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자산·소득을 일일이 따져서 지급하는 ‘선별적 복지’의 경우 복지 담당 공무원이 많이 필요하다. 우파들은 ‘복지 체계 간소화’라는 측면에서 기본소득을 옹호한다.

다른 한 축은 정보기술(IT) 업계다. 이들은 인공지능 등 기술 발전이 인간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이로 인해 인간의 존엄이 흔들릴지도 모를 디스토피아를 걱정한다. 스타트업 인큐베이터인 ‘와이 콤비네이터’가 최근 미국 오클랜드 일부 시민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실험에 투자한 것도 그래서다. 4차 산업혁명과 ‘일자리 없는 사회’의 대안 가운데 하나로 기본소득이 새삼 주목받는 이유다.

마지막으로 좌파들은 임금노동의 대가로 받는 소득이 아니라 기본 권리로서의 소득이 확보됨으로써 기회의 평등이 보장되고 불평등이 완화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이들은 완전고용 달성에 실패한 자본주의 체제, 지속 불가능한 복지국가 모델의 대안으로서 기본소득에 주목한다.

10. 기본소득은 만병통치약인가요?

기본소득은 “자본주의 폐해를 극복할 수 있는 만능 처방은 아니지만 실현 가능성이 전혀 없는 허황된 공상도 아니다”(김교성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하지만 기본소득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누구나 동의하는 지점은 있다. 당장 기본소득을 도입할 수는 없더라도, 기본소득을 둘러싼 논쟁이 우리의 미래를 상상하고 더 나은 복지제도를 설계하는 데 보탬이 된다는 사실이다.

“100년 전 모든 시민에게 투표권을 주자고 하면 미친 사람 취급을 받거나 감옥에 가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인종, 소득, 종교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무조건 참정권이 주어진다.”(김교성 교수) 기본소득도 10년 뒤, 100년 뒤 그런 상식이 될 수 있을까.

참고 문헌
, 정춘숙 의원실 토론회 자료집, 2016년 8월
, 피터 반스 지음, 하승수 해제, 갈마바람, 2016년 7월
자료집, 2016년 7월
, 강남훈·곽노안·최광은 등 지음, 박종철출판사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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