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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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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코를 보며 옛길을 걷다-①소백산 자락길

조금 가팔아도 나무와 꽃으로 눈과 코가 즐거운 소백산 자락길…죽령옛길이 포함된 길에도 4대강 사업의 흔적은 남아
등록 2011-07-27 16:55 수정 2020-05-03 04:26
소백산 자락길은 '걷는 길'이라기보다는 가벼운 등산로에 가깝다. 근대화 이전 영남 사람들이 이용했다는 죽령옛길처럼, 길마다 역사·문화적 이야기가 숨어 있는 점이 자락길의 특징이다. 한겨레21 김경호

소백산 자락길은 '걷는 길'이라기보다는 가벼운 등산로에 가깝다. 근대화 이전 영남 사람들이 이용했다는 죽령옛길처럼, 길마다 역사·문화적 이야기가 숨어 있는 점이 자락길의 특징이다. 한겨레21 김경호

전날 늦게까지 여자월드컵 결승전을 봤기 때문은 아닌 것 같다. 공이 두세 차례 골대를 맞고 나온 미국 여자축구대표팀이 승부차기에서도 실축하는 장면을 본 게 불과 밤 10시께 아니냔 말이다. 게다가 새벽 공기는 시원하고 달았다. 에어컨을 틀지 않아도 시원한 모텔에서 7시간 넘게 잤다. 가방에 든 건 소형 디지털카메라와 작은 생수 한 병이 전부다. 7월19일 오전 10시의 컨디션이 나쁘지 않았단 말이다. 그러므로 걷기 시작해 1시간 만에 등과 다리가 땀에 젖은 이유는 다른 데 있음이 분명했다.

주막거리가 번성하던 길

경북 영주시 소백산 자락길 3코스는 제법 경사가 가팔랐다. 장마가 끝나 숲 바깥은 30℃를 넘었지만 자락길은 시원했다. 소백산 자락길엔 신갈나무, 졸참나무 등이 무성하다고 자락길 안내책자는 소개했다. 책자에 따르면 붓꽃과 솔나리도 분명 널려 있을 게다. 7월18일에 이어 소백산 자락길 산행 이틀째인 외지인에게 아직 나무와 꽃을 분간할 눈은 열리지 않았다.

자락길 3코스 입구에서 만나 30분째 나와 동행하고 있는 50대의 경상도 등산객도 꽃과 나무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주말에 사람으로 미어터져요. 아, 여기 길 좋그릉. 사람이 아주. 난 오늘 딱 와요. 사람 없을 때 운동하기 좋그릉.” 본능처럼 나오는 경상도 말투와 된소리를 눌러가며 그는 어색한 서울말로 소백산 자락길에 대해 쉴 새 없이 말했다. 오전 10시30분 그가 갑자기 멈춰섰다. 그가 손으로 가리킨 곳에는 이끼와 풀로 뒤덮인 돌담이 있었다. 돌담 옆에 영주시에서 만든 안내판이 보였다.

“상권의 통로, 죽령옛길-죽령옛길은 경상도 동북지역에서 서울로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길로서 당시 과거를 보러가는 유생·장사꾼·나그네 등이 많이 이용하던 매우 큰 길이었다. 그래서 이 길 곳곳에는 목을 축이고 허기를 달래는 주막과 떡집, 짚신가게, 그리고 먹고 잘 수 있는 객점과 마방이 성행하던 주막거리가 크게 번성하였다. 죽령옛길에는 당시 4개의 큰 주막거리가 있었는데 소백산역 앞 ‘무쇠다리’ 주막거리, 과수원 끝에 위치한 ‘느티정’ 주막거리, 죽령 정상의 ‘고갯마루’ 주막거리가 있었고 그중 규모가 가장 작은 이곳이 ‘주점’ 주막거리였다.”

한겨레21 김경호

한겨레21 김경호

4.6km에 이르는 터널인 용부원길이 개통되기 전 옛사람들이 다녔던 길이 소백산 자락길 3코스의 죽령옛길이다. 소백산 자락길은 경북 영주와 충북 단양에 걸쳐 소백산 주위에 거대한 마름모꼴로 형성돼 있다. 초암사에서 시작하는 1코스부터 12코스까지 개발됐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09년 자연과 문화·역사 자원을 특성 있는 스토리로 엮은 걷기 중심의 길인 ‘스토리가 있는 문화생태 탐방로’ 시범사업지로 소백산 자락길 등 7곳을 선정했다.

소백산 자락길 문화생태 탐방로는 2009년 소수서원부터 죽계구곡, 초암사, 달밭골, 비로사, 삼가호, 풍기온천, 죽령옛길을 거쳐 죽령고개까지 34km가 먼저 개발되었다. 이후 2010년부터 소수서원에서부터 소백산 자락을 따라 단산면~부석사~봉화 오전리~남대리까지 연결 작업을 진행해 올해 안에 끝마칠 계획이다. 죽령옛길이 포함된 3코스는 ‘소백산역~죽령주막~연화봉(해발 1383m)~희방사’로 이어진다. 천천히 걸으면 약 6시간이 걸리는 트레킹 코스다.

부석사, 조선 제일 사색로

오전 11시30분이 되자 길이 더 가팔라졌다. 고개가 전방을 주시하는 대신 등산화 신발코를 지켜보는 일이 잦아졌다. 신발코와 전방을 번갈아보다 갑자기 홀로그램처럼 눈앞에 한옥 지붕을 얹은 정자가 나타났다. 죽령옛길의 마지막은 죽령이었다. 길을 다 걷자 죽령을 가로질러 충북 단양과 이어지는 5번 국도와 휴게소가 나타났다. 시야 왼편에 ‘충청북도 단양’이라는 표지가, 오른편에는 ‘경남관문 죽령-여기까지 경상북도 영주시입니다’라고 적힌 표지석이 있었다. 잠시 끊겼던 자락길은 죽령휴게소 근처에서 다시 시작됐다. 연화봉과 희방사로 이어지는 길이다. 시멘트로 포장돼 걷기 편하지만 등산로에 버금가는 경사도는 마찬가지다. 여행안내서 <just go>(전기환·시공사)는 소백산에 대해 ‘겨울 산행을 즐기기에 좋은 산’이라고 소개했다. “산세가 웅장하면서 부드러운 것이 장점”이라고 평가했다.
‘산행’이라는 여행안내서의 표현대로, 소백산 자락길은 평탄한 ‘올레길’과 결이 다르다. 7월18일 걸어본 ‘초암사~비로사~삼가야영장’(자락길 1·2코스)도 제법 가팔랐다. 등산화는 필수다. 허약한 어린이가 오르기에 무리가 있어 보인다. 대신 다종다양한 나무와 꽃의 보고다. 눈과 코가 즐겁다. 소백산 자락길은 지난 7월14일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한국 관광의 별’ 생태관광 부문에 선정됐다. 탐방객의 이해를 돕는 안내판도 세심하게 만들어졌다. 가족 단위로 오되, 편하게 쉬기보다 땀 흘리며 활동하고 즐기는 데 초점을 맞추면 될 것 같다.
소백산 자락길이 연인의 휴가지보다 가족의 휴가지로 맞춤한 이유는 또 있다. 역사·문화 관련 볼거리가 널렸다. 자락길 10코스 주변에 있는 부석사가 대표적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인 무량수전이 여기 있다. 부석사는 서기 676년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량수전 옆에 선묘낭자의 의상대사를 향한 애틋한 사랑의 전설이 깃든 큰 바위가 있고 이 바위가 아래 바위와 서로 붙지 않고 떠 있다고 해서 ‘뜬돌’이라 부른 데서 절 이름이 연유한다. 일주문에서 천왕문에 이르는 은행나무와 단풍나무가 양쪽으로 늘어선 길, 천왕문에서 무량수전에 이르는 ‘9품 만다라’가 일품이다. 유홍준이 ‘조선 땅 최고 사색로’라고 칭송한 길이다.

자락길 1코스인 초암사 근처 길옆에는 계곡이 계속 이어져 있다. 한여름에도 손이 시릴 정도로 물이 차다. 2코스에 있는 삼가야영장은 계곡 옆에 위치해 찬 공기가 아래로부터 불어온다. 한겨레21 김경호

자락길 1코스인 초암사 근처 길옆에는 계곡이 계속 이어져 있다. 한여름에도 손이 시릴 정도로 물이 차다. 2코스에 있는 삼가야영장은 계곡 옆에 위치해 찬 공기가 아래로부터 불어온다. 한겨레21 김경호


자락길 1코스 출발 지점에는 소수서원이 있다. 16세기 퇴계 이황이 풍기군수로 재임할 때 명종으로부터 ‘소수서원’이라는 이름을 사액받은 뒤부터 운영에 국가의 지원을 받기 시작했다. 일종의 국립대학인 셈이다. 입구 오른쪽으로 죽계천이 흐른다. 뒤편에 ‘선비촌’이라는 이름으로 식당, 주점, 찻집이 줄지어 있다. 천천히 걸으며 돌아보는 데 1시간이면 족하다. 이 밖에도 솔향기 농촌체험마을, 옥녀봉 자연휴양림 등 가족이 이용할 만한 쉼터가 적지 않다. 7월18일 지나쳤던 삼가야영장에는 장마가 끝나자마자 발 빠르게 캠핑하러 온 가족들의 대형 텐트가 많았다. 야영장 바로 옆 계곡에서 찬 바람이 올라와 시웠했다.
쇼핑거리가 다양하지는 않다. 영주시의 특산물로 풍기인삼, 영주사과, 영주한우, 풍기인견(비단), 단산포도 등이 꼽힌다. 지역 음식으로는 단연 묵밥이 손가락에 든다. 묵밥은 멸치 육수에 도토리묵과 썬 김치를 담고 통깨와 참기름으로 양념해 만든다. 죽령휴게소에 위치한 ‘죽령주막’(054-638-6151)의 산나물 등이 좋았다. 1인분에 1만2천원인 정식에 묵은지, 파전, 취나물, 산채비빔밥 등이 한 상 가득 나왔다.

“길은 모두 일가친척”

생태관광지로 꼽히는 소백산 자락길도 4대강 사업을 피해가지는 못했다. ‘소백산 자락길 2번째 자락 금계호 주변이 수자원공사에서 시행하는 둑 높이기 사업으로 통행에 제한이 있습니다. 이 구간을 이용하시려면 금계리 입구에서 욱금동 펜션마을까지 차도를 이용해야 합니다’라고 소백산 자락길 안내 홈페이지에 공지글이 올라 있었다. 영주 시민들은 지난해 6·2 지방선거 때 4대강 사업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한나라당 소속 김관용 현 도지사에게 74.8%의 찬성표를 줬다. 민주당,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후보는 각각 11.49%, 4.44%, 8.38%를 득표했다.
“죽령 시원하지요? 바람 불면 한여름에도 춥다니까.” 죽령옛길을 같이 오른 경상도 남자와 연화봉 가는 길 초입에서 헤어졌다. 오후 1시 연화봉 근처에서 하산하는 길에 그가 화투판을 기웃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 역시 4대강 사업을 하자는 한나라당을 찍었을 확률이 높다. 그와 둑 높이기 사업에 대해 대화하지는 않았다. 자락길 기사에 소개하고 싶다고 이름을 물었다. “에이, 저는 그런거 안 해요.” ‘길은 모두 일가친척, 걷는다는 것은 가까운 친척을 만나는 것입니다’라는 입간판이 서 있는 죽령옛길에서 만난 그는 스스럼없이 내게 말을 걸었다. 그는 소백산 자락길을 무척 좋아하고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 target="_top">jijae@hani.co.kr






소백산 자락길

소백산 자락길



■ 교통편
서울에서 소백산 자락길 가는 길
자가용: 서울∼경부(중부)고속도로∼신갈(호법) IC∼영동고속도로∼남원주 IC∼중앙고속도로∼풍기 IC(영주 IC) 소요시간 2시간30분
버스: 영주여객(문의 054-633-0011)
철도: 철도공사(문의 054-639-2256)



■ 여행 정보
소백산 자락길 정보
영주문화연구회: 054-636-5636, 소백산 자락길 홈페이지 www.sanjarak.or.kr, cafe.daum.net/sbsrle
영주시청: tour.yeongju.go.kr


볼거리 관련 정보
선비촌 관광안내소: 054-637-8586
소수서원 관광안내소: 054-639-6259
부석사 관광안내소: 054-638-5833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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