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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게임은 공부의 적일까?

게임과 성적의 상관관계
등록 2010-11-03 17:05 수정 2020-05-03 04:26
동작구 사당동의 한 PC방에서 어린이들이 게임을 즐기고 있다. 한겨레 강재훈 선임기자

동작구 사당동의 한 PC방에서 어린이들이 게임을 즐기고 있다. 한겨레 강재훈 선임기자

얼마 전 서울시 교육청에서 초등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 5천 명을 대상으로 게임 이용 시간이 학업성적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연구한 결과를 발표했다. 놀랍게도 초등학생이 게임을 하루에 1시간 더 할 때마다 국·영·수의 학업성취도가 100점 만점에서 2.38점가량 떨어진다는 것이다. 만일 하루에 4시간씩 게임을 한다면 점수가 평균 10점 가까이 떨어지는 셈이다. 이 보고서는 한부모 가정인 경우 하루 컴퓨터 게임을 즐기는 시간은 71분으로, 양쪽 부모가 있는 학생보다 19분이 많다는 결과도 곁들였다.

이 설문 결과를 접하면서 몇 가지 상반된 의문이 생겼다. 그렇다면 게임을 1시간 이상 안 하면 그 시간에 공부해서 성적이 2.38점이 올라갈까? 게임이 아니라 축구를 1시간 하거나 놀이터에서 1시간 놀아도 성적이 2.38점이 떨어질까? 게임을 1시간 하고 축구도 1시간 하면, 성적이 4.76점 떨어질까? 아니면 2.38점만 떨어질까? 양쪽 부모가 모두 없는 학생은 그렇지 않은 학생에 비해 게임을 38분 더 할까?

서울시 교육청에서 발표한 자료가 타당성을 가지려면 적어도 이런 의문점에 대한 비교 데이터가 나왔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지 않으면 초등학생의 학업성취도 저하의 모든 책임이 게임 이용에 있는 것으로 매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어느 학생이라도 게임을 과도하게 하면 학업성취에 지장을 받을 수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반적 가정 혹은 잠재적 가능성에 불과하다. 설문 결과와는 반대로, 어느 학생은 게임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가벼운 마음으로 학업에 매진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도 있다. 아니면 성적 저하가 실제 게임을 하는 것과 상관없이 학업성취가 저하될 수밖에 없는 여러 학습 환경에 기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연구 결과의 언론 발표 내용들은 게임 이용과 학업성취 저하의 관계를 ‘가정’하기보다는 거의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청소년의 게임 이용과 학업성취의 관계는 단순한 도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다양한 변수가 있다. 통상 말하는 청소년의 ‘게임 과몰입’의 정의도 단순히 게임 시간만의 문제가 아니라 심리 상태, 이용 환경, 게임 텍스트에 따라 가변적이다. 게임을 통해 학습능력 향상, 공동체 이해, 놀이의 즐거움 등 장점을 취할 수 있는 가능성도 여전히 많다. 청소년의 게임 과몰입을 탓하고, 그로 인해 성적이 떨어진다고 불안에 떨기 전에 먼저 이들이 왜 게임을 좋아하고, 왜 게임을 할 수밖에 없는지를 고려해야 한다.

현재 한국의 게임 과몰입에 대한 인식과 대책은 대체로 책임전가 수준에 머물고 있다. 정부는 위헌 소지가 높은 청소년 게임 이용 ‘셧다운제’를 무리하게 도입하려 하고, 청소년단체에서는 청소년의 문화적 감성과 또래문화의 특이성에 대한 이해 없이 무조건 게임업계를 향해 돈벌이에 혈안이 돼 있다고 비난한다. 게임업계 역시 정부와 청소년단체에 끌려다니면서 정작 중요한 게임의 문화적 의미와 가치의 확산보다는 손쉬운 제도적 타협을 원하고 있다. 삼자가 좀더 문화적 관점에서 고민하면 게임도 즐기면서 창의적 감성을 높이는 대안이 있을 것이다. 정말 게임 과몰입을 조금이라도 해결하고 싶고 우리 아이들 공부도 잘하게 하고 싶다면, 성적 저하를 운운하며 거세 공포를 확산하는 방식의 ‘규제 담론’보다는 놀면서 학습하는 방식의 ‘몰입 담론’이 더 유효하다. 게임은 공부의 적이 아니라 즐거운 친구라는 사실을 왜 모를까?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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