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한 전쟁’의 그늘… 제2차 대전의 승전국들은 독일 포로들을 어떻게 대접했는가
몇년 전 개봉한 스필버그의 영화 는 한국에서 거의 ‘명화’의 급에 올랐다. 필자는 그 영화를 떠올릴 때마다 하워드 진(Howard Zinn)이라는 미국의 저명한 진보적 사학자가 말한 소감이 생각난다. 그는 교과서나 매체의 어떤 선전보다 그러한 입체적이고 감성적인 선전물은 큰 효과를 지닌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때의 미국 병사에 대한 인간적인 동감을 유발함으로써 미국 참전의 정당성을 좀더 공고하게 만들 수 있다는 말이다.
미국 재벌과 나치의 협력

일단 한번 ‘정당한 전쟁’이라는 전례가 생기면 그 다음의 살육극도 정당화하기 쉬워진다. 그래서 “사담 후세인은 오늘의 히틀러”라는 말을 매체에서 자주 등장시켜 이라크와 파쇼 독일을 동일시하는 것으로 이라크에 대한 깡패적인 침략을 손쉽게 합리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본인이 제2차 세계대전을 정당한 전쟁으로 믿고 참전한 뒤에야 그와 그 전우의 피눈물이 미국 제국의 팽창을 도왔다는 사실을 깨달은 민중 사학자 하워드 진다운 평론이었다.
‘정당한 전쟁’…. 체제가 상이했던 미국과 소련 사이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역사나 진보 사상에 별 관심 없이 보통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자국의 참전을 “정당하다”고 보는 데 별 의심이 없었다. 과거의 소련에서 그러한 ‘의심’을 공개적으로 표현한 사람이면 아마도 반역자 대접을 받거나 정신병원에 실려갔을 것이다. 진주만을 공격한 일본이나 소련 국경을 공격한 히틀러를 물리쳐 ‘세계를 해방시킨’ 우리의 군대는 절대선이라는 것이 양쪽 체제의 ‘시민 종교’에 가까운 신성한 믿음이다. 이 사이비 종교를 전파시키는 교육이나 매체, 대중 문화 작품들은 ‘절대악’이 어떻게 해서 미국과 소련을 침공할 정도로 커졌는지 보통 묻지 않는다. 전쟁 동안에도 미국 재벌들과 히틀러의 독일이 적극적으로 무역·협력했다는 사실이나, 1910년의 일제에 의한 ‘한일 합방’은 미국이 필리핀의 미국에 의한 식민화의 인정을 대가로 허용해준 것이었다는 사실 등은 절대 다수의 미국인들이 전혀 모르는 것이다.
‘절대선’의 이면을 따지는 것은 더욱더 금기시된다. 북한이나 동구권에서 소련 군대가 저지른 학살이나 성범죄, 금품 갈취 등은 현재의 러시아에서는 몇명 안 되는 역사학자 외에는 알지 못하는 사항이다. 그 본질로서 네개의 신흥 산업국가인 독일·일본과 미국·소련의 세계 패권 싸움에 불과한 살육극의 일방적인 미화에는, 패배한 쪽이 감행한 온갖 반인륜적 범죄들이 가장 많이 ‘공헌’한다. 그러나 전쟁의 정당성을 그토록 믿고 의심치 않은 미국과 소련이 과연 ‘범인’을 ‘징벌’했을 뿐인가 패배한 쪽의 범죄에 비해서 승리한 쪽의 범죄가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을 뿐이지 자신만만한 승자의 손도 결코 깨끗하지 못했다.
수백만명의 노동을 아주 효율적으로 착취한 끝에 그들을 대량 살육한 히틀러의 ‘죽음의 공장’. 제2차 세계대전 시절의 수용소들은 이미 근대에 내재된 폭력성의 상징이 된 지 오래다. 치밀하게 계획된 히틀러의 수용소에 비하면, 전쟁 막바지에 승승장구하는 미군이 라인강 근처에 1945년 초에 조급하게 세운 ‘임시 간이 수용소’들은 말 그대로 ‘전근대적’이었다. 독일군과 달리 수인(囚人)의 장기적 노동 착취에 무관심했던 미군은 도주 방지용 철책만 세웠을 뿐 아무런 시설도 건설하지 않았다.
미·소 주도 전범재판소의 한계

포로 착취를 하지 않은 듯한 미군의 조치를 꼼꼼히 들여다보면, 철책 뒤에 가둬놓은 약 92만명의 포로들 중에 사망자들이 되도록 많이 나와 식량이 절약되는 것을 바란다는 결론밖에 내릴 수 없다. 화장실 만드는 것도 허락하지 않아 철책 뒤의 비좁은 공간은 똥오줌의 바다이자 유행병의 온실로 변하게 되었다. 병에 걸려 죽어가는 독일 포로들에게 미군쪽이 아무런 의료 서비스도 제공하지 않았던 것은 물론이다. 과밀(過密), 한데에서의 밤 추위, 유행병과 하루 600∼850칼로리의 저열량가 음식으로 몇 개월 사이 약 5만명의 독일 포로들이 비참하게 죽었다. 그들 중 대다수가 10대 후반의 새내기 징집 대상자이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어린 그들을 죽게 만든 미군이야말로 진정한 ‘전범’들이었다. 그러나… 고대 라틴 속담대로, “승자는 심판을 받을 일이 없다”는 것이다. 승자인 미·소 주도의 전범재판소는 승자 자신들의 문제를 원칙적으로 다루지 않았다. 독일인들에게는 레마겐(Remagen)등과 같은 10만명씩 집어넣은 당시 미군의 라인강 근처 ‘임시 간이 수용소’의 명칭들은 ‘민족 비극’으로 들리지만, 교육·매체에서 접해본 적 없는 대다수의 미국인들에게는 모르는 이야기다.
단순히 ‘살려주기 부담스러워서’ 수만명의 독일 포로들을 죽게 만든 미군과 달리, 전쟁통에 파괴가 심한 프랑스는 소련과 마찬가지로 독일 포로들의 노동 착취를 적극적으로 도모했다. 1945∼48년에 수십만명의 독일 포로들에게 장시간 무보수의 ‘인간 힘의 이상’의 노동을 강요한 프랑스는 피착취자들에게 비인간적인 생활 여건을 제공했다. 결국 과로로 인한 만성 피로에 유행병까지 겹쳐 약 16만명이나 되는 포로가 그 노동현장에서 죽은 것으로 추산된다.
그 이유 중 하나로 프랑스 당국이 의도적으로 일반 포로들에게 식량 공급량을 비현실적으로 적게 했던 것을 꼽기도 한다. 일각에서는 일반 포로를 굶기면서 그들이 프랑스의 유명한 ‘외인부대’에 지원 입대하는 것을 유인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바로 그때 프랑스는 현대사의 대표적인 ‘더러운 전쟁’인 베트남 독립운동 세력과의 전쟁의 초기이었으며, 외인부대는 파월병의 골간 부대 중 하나였다. 이와 같은 ‘의도’를 확인하기 쉽지 않지만, 그 외인부대에 많은 독일 포로 출신들이 섞여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포로들이 ‘공짜 노동력’뿐만 아니라 ‘총알받이’로까지 쓰였다는 것이다.
프랑스보다 독일 포로를 훨씬 더 많이(약 238만명) 잡은 소련에서는 5∼6년 동안 착취당했던 그들의 노동력은 아예 ‘전후 복구의 주요 원동력’으로 꼽혔다. 필자가 살았던 상트페테르부르크(레닌그라드) 아파트 근처에 독일 포로들이 1940년대 후반에 지은 아파트 단지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한다. 소련 전국에 걸친 그러한 ‘독일인의 마을’들이 과연 몇천개가 될 것인가?
소련군 잔혹성의 상징, 네메르스도르프
그러나 건설현장에서 사역을 당한 포로들은 그나마 행운아들이었다. 시베리아의 광산으로 보내진 경우엔 살아서 돌아오는 경우가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 소련에서 노동 착취를 당하면서 죽은 42만3168명의 독일 포로 대부분은 거기에서 과로와 열량 부족, 병으로 죽어갔다. 이처럼 포로들을 자국을 위한 노동에 이용한다는 것- 더군다나 혹사하면서 대량으로 죽게 만드는 것- 이 국제법인 제네바 협약에 어긋난다는 사실을 프랑스나 소련 당국이 과연 몰랐을까 뻔히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구한말 개화파 지식인들이 좋아했던 속담대로, “수천권의 만국공법(萬國公法·국제법) 책이 대포 한 문에도 못 미친다”는 것은 제국주의가 지배하는 현 세계의 현실을 말해준다.
‘해방군’을 자처한 소련군의 잔혹성의 상징이 된 곳은 프로이센 동부의 네메르스도르프(Nemmersdorf)다. 독일 도시 중에선 1944년 10월 소련 군대의 손에 처음 들어간 곳이다. 그 인구 중에서는 살아남은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여성들을 수십번씩 강간하여 죽인 뒤 시체를 사격장 표적물로 쓰고, 도망치는 아이들을 탱크로 깔아뭉개는 잔혹성은 일부 소련 장교마저도 경악케 했다. 그때 다른 독일 도시에서 비슷한 장면을 목격한 젊은 장교 솔제니친은, 그 일이 계기가 돼 소련 정권의 도덕성을 처음으로 심각하게 의심하게 됐다고 했다. 그 뒤 사상범으로 투옥됐다가 출옥 뒤 등의 작품으로 스탈린주의의 실상을 폭로한 솔제니친의 반(反)정권 투쟁의 여정은 그렇게 시작됐다.
인간 생명을 홍모(鴻毛)로밖에 여기지 않는 제국주의 국가들이 세계를 나누어 먹는 시대에, 근대국가에 의한 어떤 살육도 ‘정당한 전쟁’으로 볼 수 없다. 상대 국가가 반인륜적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을 자국의 프로파간다가 이용한다 해도, 억압 체제를 위주로 하는 근대국가 중에 인륜을 존중하는 나라가 원칙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유일한 ‘정당한’ 투쟁이 있다. 비인간성의 원천인 자본주의와 근대국가, 계급사회를 극복하기 위한 비폭력 투쟁이 그것이다.
연합군쪽과 독일 등에 의한 제2차 세계대전 때의 학살에 대한 종합 정보(http://members.iinet.net.au/~gduncan/massacres.html)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군의 "독일인 말살 정책"에 대한 본격적인 논문(http://serendipity.magnet.ch/hr/bacque01.htm)
1945년 라인강 근처의 한 독일인 포로 수용소를 지켰던 미군의 수기 (의도적인 "아사 유발 작전" 증명): http://serendipity.magnet.ch/hr/german_pow.htm)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종합 사이트(http://www.ibiblio.org/pha/).
박노자 ㅣ 오슬로국립대 교수· 편집위원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단독] ‘검찰도 내사 착수’ 알게 된 김병기, 보좌관 폰까지 “싹 다 교체 지시” [단독] ‘검찰도 내사 착수’ 알게 된 김병기, 보좌관 폰까지 “싹 다 교체 지시”](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6/0111/53_17681320293875_20260111502187.jpg)
[단독] ‘검찰도 내사 착수’ 알게 된 김병기, 보좌관 폰까지 “싹 다 교체 지시”

관세로 장사 망치고, 공무원들은 내쫓겨…‘일상’ 빼앗긴 1년

이란 시위 사망자 최소 538명…“정부가 학살 자행”

“임무 완수, 멋지지 않나”…김용현 변호인, 윤석열 구형 연기 자화자찬

구속 심사 앞둔 전광훈 “감방 갔다 대통령 돼 돌아오겠다”
![이 대통령 지지율 56.8%…“한중 정상회담·코스피 상승 영향” [리얼미터] 이 대통령 지지율 56.8%…“한중 정상회담·코스피 상승 영향” [리얼미터]](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6/0112/53_17681746949907_20260112500199.jpg)
이 대통령 지지율 56.8%…“한중 정상회담·코스피 상승 영향” [리얼미터]

홍준표 “인성 참…욕망의 불나방” 배현진 “코박홍, 돼지 눈엔 돼지만”

“약 사와라” 거절하자 보복…법 사각지대서 ‘갑질’에 우는 하청 노동자들
![바이야이야~ [그림판] 바이야이야~ [그림판]](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original/2026/0111/20260111502099.jpg)
바이야이야~ [그림판]

이혜훈 차남·삼남, 아동센터·방배경찰 ‘맞춤형 공익근무’ 특혜 의혹
















![[단독] 서울시가 세운3-2·3구역 용적률 올리자, 한호건설 예상수익 1600억→5200억원 [단독] 서울시가 세운3-2·3구역 용적률 올리자, 한호건설 예상수익 1600억→5200억원](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6/0109/53_17679679801823_20260108503886.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