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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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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검은 그림자’를 만드는 리더입니까

상사 향한 분노가 만든 수동공격성 ‘조직의 독버섯’

리더는 팀원 인정하고 격려하는 분위기 만들어야
등록 2017-05-18 10:55 수정 2020-05-02 19:28
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한 남성이 회사를 그만둬야 할지 계속 다녀야 할지 고민이라며 상담을 청했다. 그가 다니는 회사는 손꼽히는 대기업인데다 사원 복지도 썩 괜찮다고 했다. 더욱이 그는 대학 시절 내내 그곳에 입사하는 것을 목표로 공부를 해왔다. 입사 뒤에도 능력을 인정받아 비교적 승승장구하던 중에 문제가 불거졌다.

부서가 바뀌면서 새로운 상사와 일하게 된 것이 갈등의 시작이었다. 결이 잘 맞지 않거나 소통에 약간 문제 있는 정도였다면 “얼마든지 커버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상사는 자신의 스트레스를 오로지 아랫사람을 괴롭히는 방식으로 푸는 타입이었다.

이쪽에서 크게 잘못한 일이 없는데도 마구 야단을 치면서 “너 지금 한국말도 못 알아듣지? 영어, 아님 중국어로 말해줘?”라고 하는 건 기본이고, 보고서를 내던지며 “이거 쓰레기통에 버리고 싶지만 그러면 쓰레기통이 아까울 것 같다. 네가 씹어 먹을래”라며 윽박지르는 식이었다. 그나마 위로(?)되는 건 상사가 그런 행동을 그에게만 하는 건 아니라는 정도였다.

일을 게을리하거나 교묘하게 시기를 놓치거나

교묘한 방법으로 상사에게 반기를 드는 동료도 있었다. 상사 앞에선 잘 알겠노라고 시원스럽게 대답해놓고 실제로는 일에 진척을 별로 보이지 않는 식이었다. “잘해도 못해도 욕먹는 건 마찬가진데 굳이 힘 뺄 것 없지 않느냐?”는 이유였다.

결과적으로 그가 속한 부서는 생산성이 오르지 않았고 부서원 전체의 사기도 엉망이었다. 성정이 곧은 그로서는 상사의 행동 때문에 일이 그렇게 돌아가는 게 몹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상사가 시키는 대로 하자니, 그것도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상사와 직접 붙어서 해결하고 싶은 심정도 간절했다. 그러나 동료들이 말렸다. 우리도 참는데 너도 참고 대충 일하면 되지 않느냐는 거였다.

이런 식으로 회사생활을 하느니 뭔가 새로운 것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커져갔다. 일을 그만두는 것도 억울했다. 결국 갈등만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사정을 털어놓을 회사 임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상사를 비난하는 것으로 들릴까 선뜻 의논하기도 어려웠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니 문제의 상사가 인격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사람인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그는 아랫사람이 ‘수동공격성 심리’를 갖게 하는 전형적인 리더였다. 수동공격성 심리란 나보다 더 힘이 있는 상대방에게 분노를 간접적 방식으로 나타내는 것을 말한다. 누군가에게 정당하게 인정받지 못하거나 지나치게 억압당한다고 느끼면 화가 나는 게 사람 마음이다. 이때 상대방이 나와 동등한 힘을 가졌을 때는 내 편에서도 정당하게 분노를 표출할 수 있다. 하지만 상대방이 훨씬 더 힘이 센 경우에는 이야기가 다르다. 그러다보니 무의식적으로 일을 게을리하거나, 교묘하게 시기를 놓치거나, 창의적 아이디어가 떠올라도 모른 체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분노를 간접적으로 표현하게 된다. 그것이 수동공격성 심리다.

나는 이것을 ‘눈에 보이지 않지만 서서히 스며들어 조직을 파괴시키는 검은 그림자’라고 일컫는다. 일단 이 그림자가 스며들면 느리지만 계속 틈이 벌어져 결국 조직에 치명적 결과를 불러온다. 앞서 상담을 청한 남성이 속한 부서도 이미 이 그림자에 잠식당했다고 봐야 한다. 그것도 한 사람의 독단적인 상사로 인해서. 나는 그에게 수동공격성 심리와 그와 동료들이 겪는 괴로움에 대해 설명했다. 회사 내에 사정을 털어놓을 만한 임원이 있다고 했으므로 그에게 도움을 청해볼 것을 권했다.

더불어 같이 발전할 수 있는 성품과 능력

임원은 그의 이야기를 듣고 적절한 조처를 취했다. 문제의 인물을 불러서 알아듣게 이야기한 다음 그에게 자신의 분노를 적절한 방법으로 표출할 수 있게 상담받도록 한 것이다. 더 다행스러운 건, 상사가 분노조절 장애가 있긴 했지만 두뇌는 명석해 곧바로 임원의 충고를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이 이야기는 적절한 선에서 마무리됐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다. 리더십에 꼭 필요한 것이 있다. 바로 리더의 인격적인 성숙이다. 개인적 역량뿐만 아니라 리더가 여러 사람과 더불어 같이 발전할 수 있는 성품과 능력이 있는지도 중요하다.

인간의 성숙함은 무엇으로 확인할 수 있을까. 미국의 정신과 의사 칼 메닝거가 주장하는 기준은 다음과 같다.

현실의 문제를 건설적으로 해결하는 능력,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 긴장과 불안에서 자유로워지는 능력, 받기보다 주는 것에 더 만족감을 느끼는 여유, 호혜적 인간관계를 꾸준히 지속하는 능력, 본능적·적대적인 에너지를 창의적·건설적인 에너지로 전환하는 능력, 그리고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 가운데 몇몇 능력만 갖추어도 우린 어느 정도 성숙한 인격에 다가갈 수 있다.

심리 평가에 또 다른 기준도 있다. 의지력과 결정력을 나타내는 ‘자율성’과 다른 사람의 자율성도 인정해주는 ‘연대감’의 합으로 한 사람의 인격적 성숙을 평가한다. 이때 한쪽만 커서는 곤란하다. 예를 들어 자율성만 높고 연대감이 낮은 사람은 독불장군식 행동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자율성은 낮고 연대감만 높을 때는 자기 자리는 없고 타인을 위한 자리만 있을 수도 있다. 그러면 스스로는 자기보다 타인을 위해 희생한다고 생각하지만 객관적으로는 다른 사람 눈치를 보며 전전긍긍하는 사람으로 비칠 가능성이 더 높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내 인생은 내가 만들어간다는 책임감, 목적의식, 자기훈련과 더불어 다른 사람을 인정해주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정신과적으로 말하는 성숙함이다.

인간관계에서 자신의 진짜 모습 알 수 있다

리더십에서 성숙함이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수동공격성 심리와 연관돼 있다. 성숙함을 갖춘 리더는 수동공격성이라는 검은 그림자가 기업이나 조직에 스며드는 것을 처음부터 방지할 수 있다. 그뿐 아니라, 팀원을 인정하고 격려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다 함께 발전하는 계기를 만드는 데도 앞장선다.

인간관계는 중요하다. 혼자 있을 때는 누구나 다 잘 지낼 수 있다. 시험을 봐야 진짜 자기 실력을 알 수 있듯, 인간관계에서 우리는 비로소 자신의 진짜 모습을 알 수 있다. 자신뿐 아니라 남도 존중하는 사회, 그런 사회를 만드는 리더가 많을수록 우리는 성숙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양창순 마인드앤컴퍼니 대표·신경정신과 전문의 *양창순의 ‘마음비추기’를 마칩니다. 필자와 글을 아껴주신 독자분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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