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계에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논쟁이 몇 가지 있다. ‘펠레 vs 마라도나’, ‘메시 vs 호날두’ 같은 ‘당대 최고’ 논쟁도 그중 하나다. 그리고 유독 한국에서 자주 벌어지는 논쟁이 이른바 ‘박까’와 ‘박빠’의 싸움(?)이다. 단어에서 자연스럽게 예상되듯 박빠는 ‘박지성을 빠는 사람들’을, 박까는 ‘박지성을 까는 사람들’을 뜻한다. 이 싸움은 특히 온라인에서 더 치열하게 전개된다. 한때 인터넷 기사에 달리는 댓글들을 보며 ‘세상에는 박지성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구나’라고 느낀 적이 있다. 그래서 직접 주위의 누군가에게 그런 의견을 가지고 있는지 물어보면, 정작 박까를 찾기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보이지 않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훨씬 자유롭게 또 극단적으로 박까가 되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여기서 박까가 옳은지, 박빠가 옳은지에 관한 결론을 내리려는 것은 아니다. 그럴 수도 없다. 박지성은 어느 시점을 지나며 당사자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한 명의 스포츠 선수를 넘어, 시대의 아이콘이 되었다. 대중이 그를 지지하는 사람과 지지하지 않는 사람으로 나뉘는 것은 어찌 보면 피할 수 없는 국면이다. 누구보다 본인 스스로가 그런 상황을 감수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박지성의 행보를 두고 지지와 반대로 의견이 갈리는 가장 큰 화두는 그의 이적 문제. 그는 일본을 거쳐 네덜란드로 갔고, 네덜란드에서 잉글랜드로 갔다. 그 어떤 이적 하나 다를 것 없이 적응 과정은 혹독했고, 사람들은 그때마다 그의 선택을 두고 각자의 의견을 개진했다. 그것은 대중의 자유다. 그런데 그 논쟁을 볼 때마다 늘 기억나는 순간이 있다. 2008년 잉글랜드로 이적한 지 4년차를 맞던 그를 맨체스터에서 만났을 때, 그는 맨유의 핵심 선수로 아주 좋은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스스로 ‘감옥’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힘든 네덜란드에서 어려운 시간을 어떻게 감내했느냐고 묻자, 박지성은 “내가 그 힘든 상황에서 돌아가도 한국은 나를 따뜻하게 받아줄 거라는 믿음 때문에 버틸 수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다시 4년. 박까들이 좀더 막강한 위력을 얻은 듯한 분위기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떠나 퀸즈파크 레인저스로 간 박지성은 지금 프리미어리그 ‘꼴찌’ 팀의 주장이 됐다. 자신을 믿고 영입한 감독은 성적부진으로 경질 압박에 시달리고 있고, 박지성은 주장이 될 그릇이 아니라며 리더십도 도마에 올랐다. 돈을 보고 이적했다는 일갈부터 적잖은 나이 때문에 기량이 다했다는 단정까지. 모든 사람이 똑같은 목소리로 ‘박지성 예찬론’을 펴지 않는다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고 당연한 사실이다. 까는 사람에게나 빠는 사람에게나 어찌됐든 그가 참 이야깃거리 많은 선수인 것만은 분명하다. 어떤 종목이든 이런 선수가 존재한다는 것은 축복이 아닐까. 어쩌면 박빠와 박까의 자유 속에서, ‘박지성’이라는 스포츠 아이콘의 드라마는 더 농밀하게 영글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SBS ESPN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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