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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지도 싱겁지도 않은 균형감 충만한 제주맛

맛집 전문 박미향 기자의 제주 소울푸드…멸치국 찾아갔다 우연히 만난 ‘꽁치김밥’
등록 2012-08-25 16:03 수정 2020-05-03 04:26
고슬고슬 지은 밥에는 간을 하지 않는다. 소금을 뿌린 꽁치를 굽는다. 이 둘을 합쳐 김에 말면 끝이다. 짜지도 싱겁지도 않은 매력적인 맛. ‘마이 소울 시티’ 제주를 부르는 맛이다. 한겨레 박미향

고슬고슬 지은 밥에는 간을 하지 않는다. 소금을 뿌린 꽁치를 굽는다. 이 둘을 합쳐 김에 말면 끝이다. 짜지도 싱겁지도 않은 매력적인 맛. ‘마이 소울 시티’ 제주를 부르는 맛이다. 한겨레 박미향

버스커버스커의 노래 를 들을 때마다 장어와 각종 해산물이 풍부한 전남 여수가 그립기만 하다. 성시경의 도 한달음에 제주도산 다금바리(일명 자바리) 곁으로 달려가고 싶은 욕망을 부채질한다. 바다와 밤은 낭만을 새끼줄처럼 엮는다. 사람들이 바다를 여행지로 찾는 이유다. 하지만 물결을 따라 춤추는 신선한 먹을거리 때문에 바다가 좋은 이도 있다. 지난 7월 탱탱한 생선들을 찾아 제주도를 찾았다.

제주도 하면 우리는 흔히 먹을거리가 풍부한 곳으로 생각한다. 오해다. 예로부터 제주도는 척박한 땅, 부족한 물, 잦은 태풍으로 농사짓기가 어려웠다. 제주도의 전통 밥상인 ‘낭푼밥상’을 들여다보면 소박하기 이를 데 없다. 나물 몇 가지, 고봉밥과 국 정도다. 다만 국은 ‘육지 것들’에게는 신기하기만 하다. 톳냉국, 몸(모자반)국, 멜(멸치)국, 보말국, 구살(성게)국, 각재기(전갱이)국…. 그 신기한 맛은 혀끝에서 마술을 부려 순대 같은 긴 식도를 타고 내려가 위장 깊은 곳에 박힌다. 뿌듯함이 역류한다. 땅 위의 모든 것을 호프집 오징어처럼 바짝 구워버리는 정오에 그 국들을 찾아나섰다.

몇 년 전에 찾았던 서귀포시 멜국집으로 향하는 택시는 신이 나 춤을 쳤다. 하지만 도착하자마자 땅이 꺼지고 하늘이 무너졌다. 꼬불꼬불한 뇌의 주름이 확 펴지며 혼돈에 빠졌다. 멜국집은 공사가 한창이었다. 일꾼들에게 주인장 소식을 물으니 퉁명스러운 답만 돌아온다. 세탁소 주인에게도 물었다. “팔고 다른 데 갔나, 할머니 대신 아들이 한다던가.” 알쏭달쏭한 답이 돌아온다. 큰 기대 없이 사는 것이 행복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었다.

절망은 희망의 변곡점이다. 걸어서 5분 거리에 제주 매일올레시장이 있었다. 재래시장은 여행에서 꼭 찾는 순례지다. 여수 교동시장에서 만난 가오리, 붕장어, 정어리는 ‘큰 웃음’을 주었다. 옳다구나! 마치 놀이동산 아치처럼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제주 매일올레시장으로 쑥 들어갔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맛난 향기에 취해가던 차, 눈동자가 야구공만 하게 커지는 순간을 맞이했다. 까만 김 밖으로 머리와 꼬리가 삐죽 나온 ‘꽁치김밥’이 나타났다.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의 심정이 이러했으리라!

고슬고슬 지은 밥에는 간을 하지 않는다. 소금을 뿌린 꽁치를 굽는다. 이 둘을 합쳐 김에 말면 끝이다. 하지만 세상사 쉽기만 한 일은 없는 법! 꽁치의 모양이 다치지 않게 뼈를 쏙 빼는 게 기술이다. 주인장은 “신기해하는데 원래 횟집에서 일하는 이들이 싼 꽁치로 배고플 때 만들어 먹은 것”이라고 말한다. 그야말로 횟집 ‘새참’이다. 일꾼들의 땀방울이 빚은 맛이다. 짜지도 싱겁지도 않다. 수학 그래프에서 마이너스와 플러스 사이에 위치한 ‘0’처럼 균형감 충만한 맛이다. 그날 멜국을 잃어버렸으나 꽁치김밥을 얻었다.

한겨레 esc팀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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