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네온사인의 간판에 붓글씨로 쓴 한자가 뒤섞인 풍경은 홍콩의 ‘포스트모던’을 상징한다. 여기에 사는 젊은이들은 ‘홍콩, 차이나?’라고 자신의 정체성을 묻는다. 윤운식 기자
극단적인 도시. 그러나 그 극단적인 것이 아름다운 도시. 한쪽에는 100층은 가볍게 넘어 보이는 마천루가 홍콩섬의 좁은 길을 따라 빽빽이 늘어서 있다. 그러나 그 100층 높이의 빌딩을 지을 때 여전히 홍콩은 대나무로 ‘아시바’를 쌓는다. 건축 일을 하는 친구에게 물어보니 꼭 그래야 하는지는 모르지만 ‘전통’이라고 한단다. 길거리로 나가보면 홍콩 거리는 거대하다고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 없는 네온사인 간판들로 뒤덮여 있다. 위압감을 넘어 무서움을 느낄 정도의 크기다. 그 거리에 붓글씨로 쓰인 간판이 나란히 걸려 있다. 한국에서는 이제 시골에서도 볼 수 없는 붓글씨 간판이다. 네온사인과 붓글씨가 공존하는 곳이 바로 홍콩이다.
15년 전 처음 홍콩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나는 이 도시의 극단성에 단박에 매료됐다. 대만의 타이베이를 거쳐서 홍콩에 도착했다. 타이베이는 땅에 납죽이 엎드린 소박한 도시였다. 반면 홍콩은 하늘 위로 치솟은, 아니 하늘 위에 떠 있는 ‘라퓨타’, 공중 도시였다. 소박함과 겸손함으로 꾸미지 않은 뻔뻔한 도시였다. 그 ‘뻔뻔함’은 빅토리아만의 야경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밤이 되자 빅토리아만으로 마천루들 위 초국적 기업의 거대한 광고판이 형형색색의 네온사인을 떨구었다. 건물들 역시 온갖 불빛을 하늘로 쏘아올렸다. 엄청난 에너지 낭비. 대놓고 보여주는 초국적 기업들의 광고. 그러나 그 야경은 아름다웠다. 그날 나는 홍콩의 활동가에게 이런 말을 했다. “자본주의가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고.
홍콩의 극단성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면 소박한 어촌 마을과 시골이 펼쳐지고, 그들 사이사이로 자전거로와 산책로가 끊이지 않고 이어져 있다. 특히 홍콩국제공항과 연결된 홍콩에서 가장 큰 섬인 란타우는 홍콩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적막함을 느끼기에 가장 좋은 곳이다. 나는 홍콩에 갈 때마다 란타우에 올라 홍콩섬을 바라보며 ‘비동시성의 동시성’ 혹은 ‘숭고’의 묘한 쾌감에 젖곤 한다. 아름답고 매력적인 불협화음이다. 홍콩은 정말 포스트모던하다. 역설적인 순수함을 간직한 도시다.
그 순수함은 정치적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뼛속까지 자본주의라고 스스로를 고백하던 젊은이들이, 2005년 세계무역기구(WTO)에 반대하는 한국 농민들의 시위가 홍콩에서 있은 이후 속도에 압도당한 자신들의 삶을 돌아보았다. 사람은 땅을 딛고 살아야 한다며 손 위에 씨앗을 들고 맨발로 빌딩숲 사이를 침묵 속에 걸으며 재개발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렸다. 홍콩은 여전히 톈안먼 항쟁을 기억하고 희생자를 추모하는 전세계에서 가장 큰 집회가 열리는 도시다. 그리고 6월이면 중국 베이징 정부의 홍콩 통치에 반대하며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하는 대규모 행진이 열리는 정치적으로 뜨거운 도시다.
홍콩은 상하이나 베이징처럼 중국의 한 도시가 아니다. 홍콩은 중국으로 환원되지 않는 특이성을 지녔다. 홍콩이라는 이름은 중국 전체와 대응한 의미와 가치를 갖는다. 홍콩이 중국의 한 도시가 되는 날이 홍콩이 죽는 날이다. 그래서 이 ‘포스트모던’한 도시는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중국에 맞서고 있다. 그래서 홍콩의 친구들은 이렇게 말한다. “I am chinese, ‘BUT’ I am HongKong People!” ‘BUT’의 의미와 가치, 역설을 품고 있는 도시가 바로 홍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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