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31일 서울중앙지법 민사33부(부장 이우재)는 실천문학 등 출판사 4곳, 홍세화씨 등 저자 18명이 “국방부의 불온서적 지정으로 언론·출판의 자유 등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을 침해당하고 저자 및 출판사의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를 판결했다. 법원은 국방부가 베스트셀러가 포함된 책 23종을 ‘불온서적’으로 지정하고 영내 반입을 금지한 것은 국민 기본권 침해가 아니며, 저자 및 출판사에 대한 명예훼손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을 내렸다.
‘불온’ 딱지 붙이면 모두 따르라?
법원은 국방부의 불온서적 선정이 ‘군의 정신전력을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국방부의 태도에 손을 들어주었다. 현행 군인 복무 규율 제16조 2는 “군인은 불온유인물, 도서, 도화, 기타 표현물을 제작 복사 소지 운반 전파 또는 취득하여서는 아니되며 이를 취득한 때에는 즉시 이를 신고하여야 한다”고 돼 있다. 그런데 ‘불온’의 규정이 불명확하고 광범위해서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해 위헌적 요소가 있다는 이유로 전·현직 군법무관 5명이 2010년 이 조항이 헌법상 명확성 원칙과 과잉금지 원칙 등에 위반된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이에 대해서도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6 대 3 의견으로 군대 안에서 ‘불온서적’을 소지할 수 없도록 한 규정은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당시 헌재는 “불온서적을 금지한 군인 복무 규율은 군인의 정신전력이 저해되는 것을 막기 위한 정당한 목적을 갖고 있다”며 “불온서적을 금지하는 것은 옳으며, 해당 조항으로 달성되는 공익이 군인의 알 권리라는 사익의 제한보다 크다”고 적시했다
국방부 장관이 시중에 널리 읽히는 교양서적조차 반자본주의의 요소가 있다고 일단 ‘불온’ 딱지를 붙이면 모든 병사는 무조건 그것을 따라야 한다는 이야기다. 불온서적 반입을 제한하면 군인의 정신전력이 강화된다는 논리다.
사전을 찾아보면 ‘불온’이라는 단어는 “통치계급 또는 기성세력의 입장에서 보아 사상·태도 등에 맞서고 대립하는 기질이 있음”으로 돼 있다. 즉 불온의 여부는 확실히 권력을 가진 사람의 자의적 판단에 좌우되고, 권력자가 자신의 명을 거역할지 모르는 모든 하급자에게 그 낙인을 붙일 수 있게 돼 있다. 불온은 전형적인 전근대적 정치적 용어이지 법적인 용어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도 한국의 법원과 헌재가 불온의 기준이 무엇인지 말하지 않은 채, 국방부의 불온 판정이 군인의 정신전력 유지에 도움이 되며, 군인의 기본권을 제약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책 읽고 판단할 수 있는 권리를 사적 이익이라고 보는 것은 단어 문장 하나를 엄밀하게 따져야 할 법원이 약자인 군인의 관점보다는 명령자의 정치적 판단에 손들어주는 법률 외적인 판단을 했다는 비판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국방부·법원·헌재의 결정은 단지 영내에서 군인들이 다양한 서적을 읽을 자유와 권리를 누리는 문제가 아니라, 군대 내에서 실제 병사들이 인간이나 시민으로서 어떤 대우를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국가의 태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일방적 명령 문화가 구타 만연시켜
그 결정이나 판결은, 병사는 상관의 명령에 복종하고 국가의 이데올로기에 일방적 충성을 보여야 전투에서 일사불란한 행동을 취할 수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군주의 군대, 일제시대 천황의 부하인 황군(皇軍)이 연상된다. 이런 군대에서 병사들이 인간이나 시민으로 누릴 수 있는 자유와 권리는 극도로 제한될 수밖에 없다. 군인의 정신전력이 장관과 상관의 명에 복종함으로써 달성된다는 생각은, 판단하고 행동하는 인간으로서 시민으로서 군인의 존재를 부인한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군의 특수성이 과도하게 강조되면, 병사는 전투를 위한 하나의 소모품, 생각하지 않는 기계로 취급될 수 있다. 부당하거나 불법적인 명령에도 복종해야 한다는 논리까지 나아갈 수 있다. 군대 내에서 정당한 명령이란 국회 입법 사항인 형법의 실질적인 내용에 해당하는 명령을 의미하고 군인의 일상생활 준칙을 정하는 사항은 포함되지 않지만, 실제로는 일상의 명령 복종 문제로 인해 군대 내에서 구타와 폭언 등 인권침해가 일어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최근에는 많이 개선돼가고 있지만, 한국 군대에서 병사들의 지위나 처우는 참담한 수준이다. 군대 내에서 발생한 사망사고는 대부분 여기에 기인한다. 1950년 이후 2005년까지 6만여 명의 군 입대자가 사고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사망했고, 그중 1만2천여 명이 자살했다. 이승만 정권 시절에는 1년에 1500∼2500명, 박정희 정권 때는 1300∼1500명이 죽었고,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300∼500명이 죽었다. 군 피해자, 군 정신병원에 입원한 장병 수는 연간 1천여 명이다. 2001년에는 1057명, 2002년에는 915명이었다. 전체 사망자 수는 줄어들고 있으나 자살 비율이 1998년 40%를 기점으로 2006년에는 60%까지 높아지고 있다. 군대 내 자살자 중 70% 이상은 병사다. 2002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탈영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는 병사가 34.6%였고 ‘자살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는 병사도 14%에 달했다.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은 주로 구타·가혹행위·언어폭력을 당한 이들인데, 이를 보면 군대 내의 자살은 사실상 군의 조직문화가 만들어낸 결과임을 알 수 있다
살날이 구만리 같은 청년들, 가족을 이끌어가야 할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아들 6만 명이 전투 상황도 아닌 평화시에 군에 가서 목숨을 잃거나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는 이 엄청난 일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1개 사단 병력 규모 이상의 군인들이 비전투 상황에서 자살로 생을 마쳤다는 이야기다. 이걸 보면 현 정부의 주요 인사들을 비롯한 엘리트층이 기를 쓰고 군 면제를 받은 사실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진실을 규명했듯이, 과거에는 이 많은 사망사고 중 정말 자살했는지, 타살을 자살로 처리했는지 확인할 수 없는 경우도 많았다. 군은 구타나 가혹행위로 인한 타살 의혹이 현저해도 외부와 가족의 접근은 차단한 채 자살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군대 내 자살, 개인 책임 아닌 구조 문제로 봐야
사병으로 복무한 모든 한국 남성이 너무도 잘 아는 일이지만, 일방적 명령·복종 문화는 군대 내에서 구타를 만연케 한다. 2011년 1월27일 경찰 자체 조사에 따르면, 입대 6개월이 안 된 전·의경 230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91명이 ‘구타나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답했다. 이 가운데 손이나 발로 직접 맞았다고 답한 전·의경 수는 69명이고, 나머지는 각종 가혹행위를 당했거나 상습적인 욕설에 시달린 경우다.
군 복무 중 사망사고와 군 의문사 사고의 중심에는 인권침해가 있다. 구타·가혹행위 같은 인권침해뿐만 아니라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건강권 침해, 사망사고 이후에는 수사 및 조사 부실로 인한 유가족의 알 권리 제한, 보상청구권 침해 등이 빈발했다. 지난 1월12일에는 급성백혈병에 걸린 사병이 병원만 옮겨다니다 끝내 숨진 사건이 있었다. 사망한 그 사병의 부모는 처음 고통을 호소할 때부터 병명을 파악하기까지 열흘이 걸려 치료할 수 있는 시기를 놓쳤다며 안타까워했다. 육군 관계자는 “육군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조처를 절차에 따라 신속하게 취했다”며 “병명을 빨리 알아내지 못한 것은 안타깝지만 조처상의 부주의나 태만 등 문제는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민단체 쪽은 “군 의료체계가 여전히 환자 중심주의를 외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사병이 군대 내 병원을 우선 거쳐야 한다는 절차를 내세운 것은 행정편의주의일 뿐이다”라고 비판했다. 군 쪽의 규정상 틀린 것은 없었을지라도 말단 병사의 목숨을 존중하지 않는 군대문화가 만들어낸 결과가 아니고 무엇일까.
과거나 지금이나 군의 태도는 군대 내 자살은 개인의 책임이고, 사고사는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이다. 최근 산업재해보상법도 자살을 폭넓게 산업재해로 인정하고 있고, 국가는 안보로 야기되는 이익을 향유할 뿐만 아니라 안보 영역에서 야기되는 위험을 함께 인수해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에 자살은 업무상 사망으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가 점점 지지를 얻고 있다. 설사 구타와 가혹행위의 관련성이 없다고 하더라도 군대 내 사망은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징집됐고 군대의 통제성과 폐쇄성, 사병에 대한 낮은 처우, 상·하급자 간의 계급성 등 구조적인 문제와 연관돼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그 대부분의 사고는 군 복무 중 개인의 기본권이 극도로 제한돼 있는 데서 발생했고, 한국 군대 내에서 병사의 기본권이 보장됐다면 막을 수 있었던 사건들이다.
병사들을 생각 없는 기계, 부속품, 국가가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는 자원으로 보는 생각은 일제 식민지 시기에 가장 심했고, 전쟁을 거쳐 21세기에 들어선 지금까지 남아 있다. 이승만 정부는 전쟁 초기의 병력 손실을 보충하려고 15∼17살의 소년들을 전쟁터로 내몰았다. ‘6·25 참전 소년지원병’이라고 부르고 있으나 실제로는 강제징집을 은폐하는 것이다. 군은 대통령 긴급명령(1950년 8월4일)에 그 근거가 있다고 얼버무렸지만, 대통령 긴급명령도 정규군을 동원하는 조처는 아니었다. 무려 2만5천 명의 소년들을 정규 군인으로 입대시켜 2500명 전사, 3천 명 전상을 입었다고 하는데, 군은 아직 이들의 참전 현황을 제대로 밝히지 않고 있다. 총알받이로 동원된 이후 살아난 사람에게 남은 것은 참전유공자증과 달마다 나오는 소액의 위로금이 전부고, 그나마도 노무현 정부 들어 시행됐다.
권리 보호 없이 애국심이 생길까
물론 군의 특수성은 인정돼야 하고, 군인의 권리 제한은 불가피한 점이 있다. 그러나 제한 조처는 방법이 효과적이고 적절해야 하며,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 독일 군인의 지위 및 권리와 의무에 관한 법률은 군인법인데도 “군인은 다른 시민과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 그 권리는 법률에 근거한 의무를 통해 군 직무에 필요한 범위 내에서 제한된다”고 돼 있다. 의무와 희생만이 유일한 미덕인 것처럼 간주하고 권리 보호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면 군인들이 자긍심과 애국심을 가질 수 있을까. 군인은 ‘제복 입은 시민’(Citizen in Uniform)의 지위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병사에게 인간으로서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보장해주는 것이 진정한 정신전력 강화가 아닐까.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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