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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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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사찰, 용산참사…박근혜, 님의 침묵은?

등록 2012-07-11 18:20 수정 2020-05-03 04:26

지난 3월13일 부산에서 열린 지역 민영방송 초청 토론회에 참석한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박정희 정권 시절 고생한 민주화 인사들에게 먼저 다가갈 생각이 없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산업화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피해를 입은 분들께 항상 죄송한 마음을 가져왔다. 그분들께 제가 사과를 드린다”고 답했다. 그 전에도 박근혜는 이 문제를 몇 번 언급한 적이 있는데, “제가 진심으로 사과드리는 것은 민주화를 위해 순수하게 헌신한 분들인데 또 한 부류의 세력이 있고 이들은 친북의 탈을 쓰고 나라의 전복을 기도한 사람”이라며 “이는 분명 잘못된 것 아닌가. 이것이 혼동되면 진심으로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사람들에 대한 모욕”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법 운운하며 책임 피해가기
그런데 2007년 1월23일 ‘인민혁명당(인혁당) 재건위’ 사건 관련자들에게 법원이 최종적으로 무죄를 선고했는데도 그녀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 뒤에도 “인혁당 문제는 불행한 일이고 돌아가신 분들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도 “법원에서 정반대의 두 가지 판결을 내렸고 그렇다면 뭐가 진실인가. 역사적 진실은 한 가지밖에 없다. 앞으로 역사가 밝혀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결국 박정희 정권의 간첩 조작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즉 박근혜는 민주화 관련 인사들의 탄압에 대해서는 ‘본의 아니게’ 피해를 입게 됐으므로 죄송하다는 의사표현을 했으나, 인혁당 건에 대해서는 과거 법원과 현재 법원의 판결이 배치되기 때문에 ‘역사에 맡기자’고 말한다. 지금의 뒤집힌 판결을 신뢰하기 어렵고, 인혁당 재건위 관련자들은 단순한 민주화운동가가 아니라 좌익 관련자이기 때문에 자신이 어떤 사죄의 의견을 표명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정수장학회 문제에 대해서도 비슷한 태도를 견지했다. 정수장학회가 장물이라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반격에 대해 “이게 ‘장물’이고 법에 어긋난 일이라면 벌써 오래전에 끝장이 났겠지요”라고 하며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태도를 고수했다. 2007년 6월 진실화해위원회가 “부일장학회 헌납 사건은 중앙정보부에 의해 강제로 이뤄진 것으로, 정수장학회는 헌납 주식을 국가에 원상 회복하고 국가는 재산을 원소유주에게 반환하라”고 권고했지만, 그녀는 “노(무현) 정부에서 정수장학회를 어떻게 해보려고 했는데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졌다”며 진실화해위의 결론을 노 정부의 의도로 규정한 다음 박정희 정권이 부일장학회를 강제로 빼앗은 것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그런데 서울중앙지법 민사17부(부장판사 염원섭)는 부일장학회 설립자인 고 김지태씨 유가족이 정수장학회와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낸 반환청구 소송에서 “김기태씨가 주식을 기부하기에 앞서 중앙정보부 부산지부장이 권총을 차고 와 겁을 주고, 관세법 위반 등으로 군 검찰이 구속 기소했다가 기부 승낙서에 날인한 뒤 공소를 취소한 사실” 등을 들어 “김씨가 국가의 강압에 의해 5·16장학회에 주식 증여의 의사표시를 했음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법원이 반환청구의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판단한 것은 아쉬운 대목이지만, 박정희 정권이 강제로 빼앗은 점은 분명히 인정했다. 그런데도 박근혜는 자신은 이미 이사장이 아니니 할 말이 없다고 말한다.
김종인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은 야권에서 박근혜 전 위원장에게 유신체제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일종의 연좌제이며 지나친 정치적 행위라고 비판했다. 과연 그럴까? 박근혜가 자연인 박정희의 단순한 생물학적 딸일 뿐이며 아버지 박정희의 정치적 유산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존재라면 이 말은 맞다. 박근혜는 육영수 여사 사망 뒤 어느 정도 퍼스트레이디로서 역할도 했다. 물론 당시의 정치적 결정에 개입할 수 있는 정도의 연령대는 아니었기 때문에 유신체제의 모든 정책에 대해 책임질 위치에 있지는 않다. 그러나 과연 그 시절 5년의 청와대 경험과 박정희의 딸이라는 위치가 유력 대통령 후보인 그녀의 오늘을 만드는 데 가장 결정적인 요인이었다는 점을 누가 부인할 수 있을까? 그녀가 과거 인도의 인디라 간디, 파키스탄의 베나지르 부토, 버마(미얀마)의 아웅산 수치, 필리핀의 코라손 아키노 등과 마찬가지로 아버지의 후광을 입어 정치적으로 유명해진 여성의 대열에 있다는 것은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다. 상속은 얻고 부채는 지지 않는다는 말이 성립할 수 있을까?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의 야무지게 다문 입술에서 과거에 대한 침묵을 읽는 사람도 있다. 박 전 위원장이 지난 4월,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에서 회의를 마친 뒤에 나오고 있다. 한겨레 강창광 기자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의 야무지게 다문 입술에서 과거에 대한 침묵을 읽는 사람도 있다. 박 전 위원장이 지난 4월,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에서 회의를 마친 뒤에 나오고 있다. 한겨레 강창광 기자

미국의 ‘부수적 피해’ 연상시키는

앞의 토론회에서 그녀는 ‘민주화’ 대신 ‘산업화’라고 분명히 표현했다. 그것은 우리는 국가 수립과 산업화의 역사만 있지 민주화의 역사는 없다는 1950년대식 극우의 사고방식과 같다. 즉 유신 시절은 산업화 시대였고, 그 시절 국가폭력의 피해자들은 산업화의 피해자란 이야기다. 권력의 집행은 정당했으나 그 과정에서 불의의 피해를 입게 됐다는 것인데, 산업화 시대임을 고집하는 그녀의 태도는 미국이 자국의 공중 폭격이나 지상군의 작전 과정에서 제3세계 민간인들이 피해를 입은 사실을 지칭할 때 주로 말하는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의 개념을 연상시킨다. 그것은 전형적인 가해자의 개념이다. 군사작전은 정당하고 합법적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의도하지 않은 피해가 발행했다는 이야기다.

과연 그런가? 유신 시절 수천 명의 학생과 무고한 민간인들이 긴급조치와 반공법의 사슬에 걸려 고난을 당했다. 그중 상당수는 민주화운동에 가담한 학생이 아닌 무지렁이 노동자, 농민, 보통의 시민들이었다. 2007년 진실화해위원회는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기소된 589건의 사건을 모두 조사했는데, 그중 282건(48%)이 음주 대화나 수업 중 박정희·유신체제를 비판한 경우에 해당돼 가장 많았다. 유신 반대, 긴급조치 해제 촉구 시위, 유인물 제작과 같은 학생운동 관련 사건보다 훨씬 많았다. ‘막걸리 보안법’이라고 해서 술 먹다가 홧김에 박정희가 무력으로 집권했다고 욕했다가 잡혀가 감옥을 살고, 그 일로 가정이 파괴되고 인생이 망가진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이들 모두 정권에 의해 ‘본의 아니게’ 피해를 입은 것이 아니라 정권의 의도와 기획의 피해자들이었다.

그 상처는 지금도 계속된다. 일부 사람들은 법원의 재심 결정으로 복권도 되고 보상도 받았지만, 한번 읽어버린 혈육은 결코 되살아나지 못하고, 한번 망가진 인생은 복원되지 못했다. 헌법재판소에서 이미 위헌 판결이 난 긴급조치가 그녀가 그리 강조하는 ‘법’으로서의 자격을 갖추고 있었으며, 긴급조치의 시행이 산업화와 무슨 관련이 있는가? 사람들은 유신 시절의 국가폭력으로 인혁당 재건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만 주로 거론하는데, 실제로는 북한에 억류돼 사상 교육을 받았다는 이유로 간첩 조작의 희생양이 된 납북 어부, 북한에 한번 갔다 오면 모든 전과를 없애주겠다는 거짓 약속에 속아 비인간적인 훈련과 처우를 감내해야 했던 북파공작원 등 민주화는 물론 산업화와 전혀 무관하게 박정희 정권의 희생양이 된 수천~수만 명의 억울한 민중이 있었다. 박근혜를 비롯해 박정희 유산의 단물을 누리는 사람들, 당시 입법·사법·행정부의 요직에 있던 사람들은 이 피해자들에게 무릎 꿇고 백배사죄를 해도 모자랄 지경이다.

일본에도 과거사 책임 못 묻는다?

이 모든 사건의 최종 명령자이자 지휘자였던 사람이 박정희다. 비록 소수의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정말 무고한 사람들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한 야만적인 폭력 체제의 중심에 있던 사람이 공식 사과나 반성도 없이 대권을 쥐겠다고 하는 나라는 3류 국가가 아닌가? 실제 아버지의 후광으로 정치적으로 성공한 앞의 여성들이 활동한 나라는 모두 한국보다 적어도 민주화에서는 뒤처져 있는 나라들이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이 박정희가 한 것이고, 자신은 그 과정에서 아무런 결정권도 행사하지 않았으니 책임질 수 없다는 말이 과연 타당할까? 정수장학회와 법적으로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니 현 이사장에게 물러나라고 할 자격이 없다는 말이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 세간의 평가에 따르면 정수장학회의 실제 가치는 수조원을 웃돈다. 이 돈에서 나온 부수적 힘과 영향력은 무엇이며, 오늘의 박근혜는 과연 어떤 점에서 정수장학회의 힘을 자신의 정치 자산으로 삼고 있는가? 박근혜는 이사장으로 재직한 1995년부터 2005년까지 10년간 2억5천만원가량의 연봉을 받았다고 한다. 주위의 별다른 지원도 받지 못하고 어려운 시절을 겪어야 했을 때 그녀를 경제적으로 지탱해주고 활동을 가능케 한 것은 바로 정수장학회였고, 알려지지 않은 그녀의 수많은 사조직들, 현재 그녀의 가장 중요한 조직적 기반은 바로 정수장학회 출신의 4만 명과 과연 무관한지 물을 필요가 있다. 즉 박근혜의 현 정치적 기반의 중요한 부분을 정수장학회가 제공했는데, 불행히도 그것은 부친인 박정희가 사실상 강탈해서 딸에게 남겨준 것이었다. 비록 정수장학회가 사회적으로 환원된다고 하더라도 10년 동안 이사장으로 재직한 그녀의 경력은 남는다.

일본의 전후 세대는 한국이나 중국에서 과거사 반성을 요구하면, 왜 아버지·할아버지 세대의 일로 우리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 묻는다. 그런데 이에 대해 다카하시 데쓰야 도쿄대 교수는 일본인으로서 책임이 있다고 잘라 말한다. 그가 강조하는 일본인이란 혈통으로서의 일본인이 아니라 정치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일본인이다. 정치공동체의 구성원인 모든 일본인, 즉 전후 세대 모두는 일본 국가가 국민에게 주는 각종 혜택의 수혜자라는 것이다. 그리고 주권자로서 일본의 정치에 참여하기 때문에 결정 과정에 책임을 가진 주체라는 것이다. 서경식 도쿄경제대 교수도 이 점을 강조하며 만약 일본 젊은이들이 과거 세대의 책임을 지지 않겠다고 말하려면 우선 식민지 지배로 얻는 기득권을 포기하고, 여권을 찢어버리고, 국민으로서의 특권을 포기하고, 자발적으로 난민이 될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말한다. 정치공동체의 일개 구성원도 이런 책임이 있는데, 과거 권력의 핵심에 있던 사람의 책임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박근혜는 대선에 앞서 유신 피해자들에게 백배사죄하고 정수장학회를 사회에 환원해야 하지만, 그렇다 해도 그녀는 결코 자신이 얻은 엄청난 상속의 혜택만큼 책임의 몫을 완전히 청산하기 어렵다.

박근혜 시계는 여전히 70년대

그런데 그녀가 다가오는 대선의 유력한 대권 후보이므로 사실 더 중요한 것은 유신시대의 국가폭력을 보는 그녀의 관점, 그리고 지금 정부에서 진행되는 폭력을 대하는 그녀의 관점이다. 민주화 인사에 대한 폭력은 안타깝지만 ‘좌익’을 처형한 것은 정당하다는 생각은 그녀의 사고가 1970년대 유신 시절의 시간대에 머물러 있음을 말해준다. 이것은 왜 그녀가 자신도 총리실 민간인 사찰 대상이 됐으면서도 그 불법사찰에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으며, 서울 용산 참사 등 이 정권하에서 저질러진 폭력에 대해 일절 발언하지 않는지 설명해준다. 노동자·빈민들의 생존을 위한 항의를 불법으로 몰아 탄압하는 것이나 무고한 사람을 테러범·좌익·종북으로 몰아 죽이거나 정치적으로 매장하는 것은 여전히 정당하다고 보기 때문일까? 그런 일을 지시하고서 자신의 부친처럼 국가 안보와 질서 유지를 위해 불가피하다고 말할 작정인가? 자신이 집권해도 그렇게 하겠다는 것일까?

성공회대 사회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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