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30일 새벽,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이 세상을 하직했다. 그는 1970∼80년대 군사독재하에서 온몸을 던져 저항했던 한국 민주화운동의 아이콘이다. 1985년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 사건으로 구속돼 온갖 종류의 고문을 당하고, 그 고문 후유증으로 인해 파킨슨씨병을 앓아오다가 64살이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이승의 끈을 놓아버린 것이다. 김 상임고문은 서울 남영동 515호실에서 폭력혁명주의자, 공산주의자임을 자백하라는 강요를 받았다. 결국 그는 공안 당국이 불러주는 소설 같은 혐의를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학살과 고문을 정당화하는 나라
1986년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그를 고문했던 이근안은 2008년 5월 충남 태안 지역 ‘제1기 아버지학교’에 특별강사로 나서, 자신은 빨갱이만 잡았는데 정권이 바뀌니 역적이 돼 있었다며 억울한 심경을 토로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심문(고문)은 예술이다”라며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했던 그는, “지금 당장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똑같은 일을 할 것이다. 당시 독재시대 상황에서는 애국이었으니까, 애국은 남에게 미룰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며 자신의 행위를 미화했다.
한국 교회는 이런 이근안을 목사로 만들어주었다. 설사 극악한 고문범죄를 자행한 사람이라도 하나님 앞에서 회개를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목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 기독교는 고문한 사실을 부인하고, 공식적으로 과거 일에 대해 반성과 사과를 한 적이 없을뿐더러 오히려 그것이 애국행동이었다고 큰소리를 치는 사람을 목사 예우까지 해주었고, 태안 군민들은 그를 강사로 초청했다. 부산 시민들은 김근태 상임고문을 고문할 때 지휘 라인에 있던 안기부 대공수사단장 정형근을 세 번이나 국회의원으로 당선시켰다. 그도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을 지내는 등 건재하고 있다.
이근안의 말과 행동은 영화 (원작 이청준의 ‘벌레 이야기’)에 잘 그려졌다. 주인공 신애는 유괴범에게 아들을 잃은 뒤 그 죄책감 때문에 기독교 신앙의 길로 들어서는데, 신앙을 통해 치유를 경험한 신애는 자신의 아들을 유괴해 살해한 유괴범을 용서하기로 마음먹고 교도소로 찾아간다. 그러나 자신이 유괴해 살해한 아이의 엄마가 왔음에도 그 살인범은 뉘우치는 기색이라곤 눈곱만치 보이지 않은 채 자신은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 평안하게 살고 있다고 말한다. 이 살인범은 바로 5·18 광주 학살을 반성하지 않는 신군부의 모습 그 자체다. 그들은 1980년 광주에서 대량학살극을 벌인 것도 성에 차지 않아 집권 뒤 수많은 고문을 통한 간첩 조작 사건을 지휘했다. 전직 군 장성, 전직 장관, 전직 의원, 전직 국가기관의 ‘큰 어른’으로 대접받으며 그들 중 상당수는 오늘날 대형 교회의 원로 장로나 집사의 예우를 받고 있다. 그들의 ‘하나님’은 어떤 죄과를 어떻게 용서했는지 알 수 없으나, 그들은 과거 반인륜적 범죄에 대한 자신의 책임에 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이근안처럼 “그때는 그게 애국이었다”라고만 암묵적으로 말하지 않고 “지금 봐도 그것은 애국이었다”라고 말한다. 국제사회에서 유대인 대량학살(Holocaust)을 부인하는 것은 범죄로 간주된다. 그런데 학살과 고문을 단지 부인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미화하고 정당화하는 이 나라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
결국 이들에게는 그들을 받아준 하나님 외에도 칭찬과 격려까지 해주는 ‘더 높은 하나님(반공이데올로기)’이 있다는 얘기다. 그들을 용서하고 받아준 하나님은 그저 정신적 위로만을 주지만, 그들의 행위를 정당화해주고 미화해주는 하나님은 정치적·신체적·제도적·물질적·사회적 지위와 안식까지 보장해준다. 이 세속정치를 관장하는 하나님은 김근태를 고문하도록 허용해주었을 뿐 아니라 지금까지 한국인들의 생사여탈권을 쥐어왔다.
‘젖먹이도 징그러워 한 빨갱이’
한국전쟁을 전후해 이 하나님은 ‘의심되는’ 민간인을 마구잡이로 죽이도록 해주었다. 1949년 12월24일, 경북 문경의 첩첩산중에 있는 석달마을 주민 86명이 국군에게 무참히 학살당했다. 군인들은 민가에 불을 놓고서 뛰쳐나오는 주민을 닥치는 대로 사살했고, 마을 뒤 산모퉁이에 숨어 있던 청년들과 하굣길의 어린이들까지 사살했다. 희생자의 70%는 20살 이하의 청소년이거나 노인들이었다. 10살 이하의 어린이도 22명(25%)이나 되었다. 현장 생존자인 채의진에 의하면 “이놈들, 빨갱이 밥 해주고 돼지 잡아서 주었지? 우리는 국군이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 끔찍한 학살사건을 조사하던 당시 미군 쪽은 “군인들이 마을 주민들에게 추궁했던 공산주의자들과의 내통 혐의는 군인들이 뒤집어씌운 누명이었고 확인사살까지 있었다”고 기록했다. 이 학살의 진상은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당시 한 언론에서는 이 사건을 “공비의 최후적 만행으로서 국군을 가장하고 부락에 침입하여 살인·방화 등을 감행한 사건”이라고 보도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사망한 사람들의 호적에는 이들이 공비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거꾸로 적혀 있다. 2007년 진실화해위원회는 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해 석달마을 사람들이 군에 학살당한 사실을 밝혔는데, 진실화해위원회가 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현재까지 공비에 의해 죽은 사람으로 공식화되고 국군의 범죄는 확인되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전쟁을 전후해 공비 토벌 작전에 투입된 군인이나 경찰은 좌익이다 싶으면 재판도 없이 ‘즉결 처분’(학살)했다고 한다. 한 군인은 부락 내부 주민들 간의 사감으로 사람들이 ‘저놈 빨갱이’라고 지목하면 곧바로 즉결 처분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기억한다. “당시는 무법 상황이라서 빨갱이로 지목되면 중대장·소대장 선에서 즉결 처분해도 문제되지 않았고, 군인들도 중대장·소대장의 명령으로 즉결 처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토벌 작전에 지장이 있고 대상이 빨갱이라서 나중에 즉결 처분했다고 보고하면 문제되지 않았기에, 그것은 연대본부까지 보고할 사안이 아니었고, 현장에서 처분한 다음 서면 보고도 안 하고 구두 보고 정도 하면 되는 일이었다.”
한국전쟁 때 경북 청도에서 경찰과 서북청년단 출신의 호림부대 등은 빨치산과 내통한 혐의가 있는 청년들을 잡으러 갔다가 이들이 보이지 않으면 부모 등 가족 일부를 대신 잡아서 죽이기도 했고, 집을 불태운 뒤 남은 가재도구를 빼앗기도 하고, 가족을 두들겨 패기도 했다. 이 극악무도한 학살과 약탈이 모두 ‘빨갱이 소탕’의 이름하에 정당화됐고, 그 일에 가담한 사람들이 지금까지 한국에서 ‘애국자’로 돼 있다.
박완서가 말한 것처럼 한국전쟁 시기는 “빨갱이라면 젖먹이 어린것까지도 덮어놓고 징그러워하고 꺼리던 때”였다. 그래서 벌레처럼 취급당하지 않기 위해 “우리 식구의 사고와 행동은 오로지 빨갱이냐 아니냐의 문제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었다”(박완서, ‘엄마의 말뚝2’). 빨갱이로 지목되는 것은 사실상의 사형선고, 즉 인간으로서의 존재를 부인당하는 것을 의미했고, 타인을 그렇게 지목하는 사람이나 집단 뒤에는 ‘상(上) 하나님’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상 하나님’은 빨갱이 잡는 일에 나선 이력이 있다고 주장하면 학살범·고문범·폭력범 등 반인륜적 범죄는 물론, 재산탈취범·학원비리범·사기범·조세포탈범·강간범까지 애국자라고 칭찬해주고 온갖 지위와 권력과 부를 안겨다준다.
‘상 하나님’의 대행자, 법원
속세의 심판자, 법원이 ‘상 하나님’의 대행자다. 김근태의 재판을 담당한 서성 판사는 제1회 공판기일까지 단독결정으로 가족면회를 금지했다. 말로는 김근태가 경찰에서 묵비권을 행사했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고문 증거를 인멸할 시간을 벌려는 것이 아니고서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다음에 그는 제1회 공판기일부터 방청권을 발행해 가족과 주변 민주화 인사들의 방청을 방해했다. 그는 김근태 진술의 진위를 판단하는 가장 핵심적 증거인 고문 사실을 고의적으로 회피했고, 김근태가 적은 탄원서를 변호사들이 열람하지 못하게 따돌리기까지 했다. 서성 판사의 원심법원은 공소 제기 절차가 법령을 위반했으므로 공소 기각 판결을 내려야 한다는 변호인들의 주장을 그 이유도 밝히지 않은 채 배척함으로써, 결국 김근태가 주장했듯이 그 재판은 고문경찰과 그들에게 명령을 내린 자들을 비호한 것이었고, 이후에도 고문이 계속될 수 있게 보장해주었다. 고문 사실이 명백했기에 법원과 검찰의 기본 양심을 믿으려 했던 ‘순진한’ 김근태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결국 그는 재판이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고, 당신들이 아무리 똑똑해도 우리를 이길 수 없다고 큰소리치던 고문경찰들의 말을 새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고문이 죄가 아니라 빨갱이인 것이 죄이고, 정권과 언론이 한번 빨갱이라고 지목하면 다시 회복할 수 없는 죄인이 되는 현실을 처절하게 체험했다.
아무런 검증이나 항변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정권, 검찰이나 경찰, 언론이 특정 인사나 집단을 빨갱이로 지목하기만 하면 빠져나올 여지가 없어진다는 걸 잘 아는 우리 사회의 부패·비리 집단은 그것을 100% 활용했다. 과거 문민정부의 사정 대상 1호로 지목됐고 학교공금 횡령과 부정 편입학 혐의로 법정에 선 상지대의 김문기 이사장은, 1986년 7월 교수 채용 과정에서 금품을 수수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이것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면서 농성하는 학생들을 빨갱이로 몰았다. 그는 자신을 추종하는 학생들과 직원들에게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라고 적힌 유인물을 제작해 학생들의 농성장 주변에 몰래 뿌리고 신고한 다음, 경찰병력을 요청해 학생들을 연행해가도록 했다.
오빠가 좌익으로 몰려 죽게 된 상황에서 박완서는 “어머니에게는 아들이 살았느냐 죽었느냐가 문제지 빨갱이냐 흰둥이냐는 문제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진실과 사랑의 눈으로 보면 ‘상 하나님’은 바로 사람 잡는 괴물임을 금방 알 수 있다. 이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자신과 가족을 짓밟고 모든 것을 빼앗아간 무서운 하나님은 우상에 불과하고 실체가 없는 허깨비임을 알아챌 수 있다. 현재와 과거에 지은 죄가 많은 사람일수록 더욱더 ‘상 하나님’의 힘에 기댄다는 사실도 쉽게 알아챌 수 있다.
‘괴물이 사람 잡는 이야기’
그런데 아직도 일부 정치가나 언론은 입만 열면 이 ‘상 하나님’에게 매달린다. 2011년 7월20일치 는 ‘해군기지 부지가 좌파단체 해방구로’라는 헤드라인을 달았고, 또 다른 날에는 “제주가 좌파 종북세력의 투쟁 최일선이 돼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옛날에는 이렇게 소리 지르면 그들의 하나님은 “그들을 죽여도 좋고, 고문해도 좋다”고 했지만, 지금은 머뭇거리며 그냥 경찰력만 출동시켜서 잡아가라고 한다. 그게 불안하니까 그들은 더욱더 “하나님, 저들은 좌파입니다. 종북입니다”라고 외치고 있다. 우리 후세대는 ‘괴물이 사람 잡는 이야기’를 희극 장르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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