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4월26일 경남 의령군 궁류면의 오지마을에서 우범곤 순경이 총기를 난사해서 반나절 만에 주민 56명을 사살하고 35명에게 총상을 입히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국 경찰 사상 최악의 대량살상 사건이 발생했다. 오지로 좌천당한 데 따른 불만과 사귀는 여인과 결혼할 수 없던 것에 대한 불만 때문이었다고 하지만, 일개 순경이 평소 알고 지내고 같이 술 마시던 동네 사람들을 이렇게 무참히 살해한 것은 단지 그가 총을 가진 사람이었다는 사실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아무리 성질이 고약한 순경이었기로서니 아무 죄 없는 시골 주민들을 자신의 화풀이 대상으로 삼은 것은 당시 한국 경찰들이 민간인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갖고 있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실제 주민들 증언에 의하면, 우 순경은 이 지서에 온 뒤 주민을 상대로 활동비를 갈취했고, 이장을 지낸 사람들은 경찰과 공무원들에게 술 받아다주는 것이 주요 일과였다.
‘강남 유흥가 대통령’이 된 ‘산골 대통령’
지난 4월22일 검찰은 서울 강남의 룸살롱 사장 이씨에게 총 2억500만원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로 이아무개(42) 경사 등 4명을 구속 기소했다. 이들은 서울지방경찰청 여성청소년계에 근무하며 2007년 4월부터 2010년 2월까지 총 40회에 걸쳐 2억500만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또 지난 4월14일 이 경사 등에 이어 이씨에게서 평균 5천만원씩 1억5천만원 상당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현직 경찰 3명을 추가 구속했다. 경찰은 2010년 이씨의 경찰 로비 의혹을 조사해 전·현직 경찰관 63명이 이씨와 통화한 사실 등을 밝혀내고 이 중 39명을 징계 처분한 바 있다.
시골 동네 이장이 순경들에게 막걸리를 받아주거나, 강남 룸살롱 사장이 경찰에게 수십억원을 상납하는 일은 전혀 다른 때에 다른 곳에서 발생한 완전히 동일한 사건이다. 과거의 ‘산골 대통령’이라는 제왕적 권력이 오늘의 부자동네 제왕, 즉 ‘강남 유흥가 대통령’이 된 것이다. 경찰이 그런 범죄를 저지른 것은 일선 경찰이 민간인이나 업자들의 조그만 꼬투리를 잡아서 겁박한 다음 그들을 얼마든지 괴롭힐 수 있는 권한을 지녔고, 말단 경찰의 권한 남용을 막을 견제장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찰의 부정부패는 피의자를 마구 대하는 반인권적 행동, 일상적 불법과 동전의 다른 면이다. 경찰의 모든 구속, 수사, 공권력 집행은 오로지 법에 의거해야 하는데 자의적 법 집행을 해도 그것이 견제·감시되지 않는다면 권력 남용의 부산물인 부패를 막을 길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 권위주의 시절에 멀쩡한 사람을 잡아다 족치거나 고문해온 경찰은 종종 그들의 약점을 잡아서 상납을 받았고, 정보과 형사들은 ‘요시찰인’들을 사찰 대상에서 빼주는 대가로 돈을 챙기기도 했다. 마땅히 구속 수사해야 할 사람을 수사하지 않거나 그 대가로 돈을 챙기고, 마땅히 보호해야 할 사람을 비인도적으로 처우한다면 그처럼 무서운 범죄가 없다. 한국 경찰의 이력에는 직무유기, 사건 은폐와 거짓말, 공갈과 협박, 부인, 말 바꾸기, 증거인멸, 재산 약탈 등 수많은 범죄 기록이 있다.
그러면 무엇이 국민 보호와 법 집행의 최전선에 서 있어야 할 경찰을 이렇게 탈법과 불법의 대명사로 만들었을까? 누가 그들을 ‘국민의 지팡이’가 아니라 ‘국민의 몽둥이’로 만들었을까? 분명 이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산골 대통령’이나 ‘강남 유흥가 대통령’이 될 수 없다. 자신이 소지한 흉기를 힘없는 사람들에게 휘두를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해주고, 그들에게 아래보다는 위를 쳐다보고 움직이게 만든 당사자는 바로 이 땅의 실질 권력이었다.
권력에 복종하지 않으면 적으로 간주
1970년 3월14일, 당시 치안국장 정상천은 부하 경찰들에게 “자기를 국가와 국민에게 동시에 매여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국가기관에만 봉사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면 탈선하기 쉬워요”라고 경고했다. 이 발언을 들은 전 인하대 교수 박찬웅은 “우리는 국민을 국가로 보고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위하는 것을 국가를 위하는 것으로 아는데, 이들은 박정희와 그 일당을 국가로 보고 정권에 반대하는 국민을 역적으로 본다”고 일갈했다. 즉 국가만 보지 말라는 치안국장의 지적은 역설적으로 한국 경찰이 얼마나 권력자만 쳐다보며 활동해왔고 의롭게 발언하는 국민을 적으로 간주했는지 역설적으로 보여주었다.
권력에 복종하지 않는 국민을 적으로 간주하는 행동은 지난 한 세기 동안 경찰이 보여준 일관된 특징이었다. 헌병경찰 제도를 실시한 일제하에서 식민통치에 조금이라도 불만을 품으면 헌병 분대장이 구류·태형·벌금을 내릴 수 있었다. 경찰에게 공손하지 않는 태도를 취하거나, 심지어 그들을 빤히 쳐다보다가 잡혀 들어가서 매를 맞고 업혀 나오기도 했다. 이들은 조선인들에게는 사법권과 행정권을 마구 행사할 수 있는 저승사자였다. 해방된 나라에서도 그 관행은 반복됐다. 일반 시민들에 대한 경찰의 무차별적 신체 구속이 사회문제가 되어 경찰청장이 모든 경찰을 대상으로 “법치국 인민의 거택은 절대 불가침이다. 법률에 정한 규정에는 군경이라도 무단침입을 불허한다”고 지시를 내릴 정도였다. 그런데 무단침입 정도는 약과였다. 수사 과정에서 피의자의 뺨을 때리거나 발로 차는 것은 다반사였고, 1980년대까지 파출소에서 뻣뻣한 자세를 보이면 “뭐냐, 당신은” 같은 반말이 그대로 날아왔다.
경찰이 일반인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된 것은 이런 이유에서 비롯됐다. 고 박경리 선생은 “경찰서의 파란 등불만 봐도 떨렸다”고 해서 이승만 정권을 온 국민을 떨게 한 ‘경찰국가’로 기억하고 있다. 1960년 이승만의 하야를 요구하는 4·19 학생 데모가 발생했을 때 저항하는 약자를 적으로 여긴 폭력경찰의 발톱은 또 한 번 드러났다. 당시 온갖 선거 부정의 전위대 역할을 한 경찰은 항의하는 어린 학생들에게 마치 조준 사격 하듯이 총을 쏘았다.
서울 용산 참사 이후 국회 청문회에서 여당인 당시 한나라당 정의화 의원은 김수정 서울지방경찰청 차장을 향해 “그 행위(시위)를 하는 자는 꼭 무슨 적군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 그분들도 대한민국 국민 아니냐”고 따졌다. 김 차장이 “모든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지만 자신의 의사가 관철 안 된다고 살상 무기를 들고…”라고 답하자, 정 의원은 “체포라는 목적이 달성될 수 있도록 신체에 위해를 가하지 않는 게 대한민국 공무원인데 이라크도 아니고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도 아니고, 의원들의 질문에 그렇게 답변할 수 있느냐. 여당 의원이지만 견딜 수 없다”고 김 차장을 호되게 꾸짖었다. 박지원 민주당 의원도 “김 차장의 답변 태도가 너무나 당당하다. 김 차장에게 질문하지 않으려 했는데 답변 태도를 보고… 우리 국민이 억울해서 어떻게 살겠느냐. 그러면 안 된다”고 호통을 쳤다.
폭력집단과 공조·밀월관계
권력자가 적으로 규정한 사람을 ‘적’으로 대하는 경찰의 태도는 권력자와 한편인 폭력집단과 밀월관계를 유지한다. 한나 아렌트는 폭력집단이 공권력을 대행 보조하거나, 공권력과 공조관계를 유지하는 사회, 그리고 공권력이 폭력집단을 동원해 저항운동을 탄압하는 사회가 바로 파시즘 혹은 전체주의 국가라 했다.
한국 경찰은 실질 권력, 그리고 그들의 하수인 정치깡패와 조폭, 그들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해주는 업자들의 뒤를 봐주는 처지에 서서 이들의 불법을 묵인했다. 1957년 4월15일 진보정당 창당대회에서 테러단이 침입해 난장판을 만들었다. 당시 진보당은 테러단을 퇴장시키든지 체포해달라고 경찰에 부탁했으나, 경찰은 들은 척도 하지 않은 채 오히려 대회를 해산시키려 했다. 테러단이 유유히 사라져도 그들을 체포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1987년 통일민주당 창당대회에서 일단의 깡패들이 난장판을 만들었다. 이른바 ‘용팔이 사건’이었다. ‘용팔이’ 김용남이 전국 15개 지구당에서 깡패 2천여 명을 동원해 기물을 파괴하고 난동을 벌였다. 경찰은 정당 내부의 일이라며 팔짱 끼고 구경만 했다. 관악 지구당에서는 무려 9시간 난동을 부렸으나 경찰은 개입하지 않았다.
1980년대 이후 지금까지 도심의 모든 철거 현장에서 경찰은 용역의 폭력을 수수방관하거나 마지못해 수사하는 시늉만 했다. 건설업체가 고용한 용역반원들이 주민을 폭행하면 경찰은 구경하거나 심지어 그들과 같이 작전을 하기도 했다. 한겨울에는 철거를 하지 않아야 하고, 잘못하다가 사고가 발생해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상황에서는 철거와 진압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인륜이자 도덕의 원칙이고 헌법의 원칙에도 맞지만 경찰은 폭력적 철거에서 방조자·집행자 구실을 했다.
한국 경찰은 언제나 실질 권력의 의중에 따라 움직이며 누가 적이고 우리 편인지의 기준에 따라 수사를 하고 작전을 펼쳐왔다. 권위주의 정권일 때는 진압하라고 직접 명령하지 않더라도 ‘법질서를 확립해야 한다’ ‘빨리 사태가 수습되면 좋겠다’는 권력자의 우회적인 의사표시가 나오자 말자 경찰은 즉각 행동에 들어간다. 경찰 총수는 무리한 진압 작전을 통해 발생하는 ‘부수적 피해’가 자기 책임이 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오히려 진압을 못하면 문책당할 것임을 알게 된다. 수사할 때 인권침해를 한 죄는 묻지 않아도 진압을 잘못한 책임이 엄중할 경우 경찰은 예외 없이 권력자의 의중에 따라 움직인다. 이명박 정부 들어 발생한 용산 참사가 대표적이다. 디도스 등 여러 사건의 수사에서 보여준 경찰의 ‘이해할 수 없는’ 늑장·부실 수사는 사실상 무마용 수사의 의혹이 짙어서 그것은 모두 ‘이해할 수 있는’ 행동인 셈이다.
상급자한테 받은 폭력, 민간인들에게
경찰의 대민폭력은 경찰조직 내 반민주·반인권 관행과 연결돼 있다. 경찰의 무리한 실적주의가 인권침해를 야기한다며 경찰청장에게 반기를 들었다가 파면당한 전 강북경찰서장 채수창은 “언어나 물리력에 의한 것만 폭력이 아니다. 지휘권 확립이라는 미명하에 징계권과 인사권을 무자비하게 행사하는 것도 폭력의 일환이다”라고 말한다. 수뇌부가 부하 직원을 혹독하게 다루기 때문에 하위직은 폭력에 둔감해져서 서민들에게 폭력을 휘두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 순경 사건도 발생했다. 이는 과거 일본군과 경찰이 내부에서 하급자에게 가혹한 폭력을 행사함으로써 이들이 민간인들에게 그것을 그대로 돌려준 일을 연상시킨다. 조직 내에서 인간적 대접을 받는 경찰만이 민간인의 인권을 존중해줄 수 있는데, 한국 경찰에는 그런 조직문화가 없다.
지난 두 민주정부 아래에서 경찰은 자체 인권위원회도 만들고, 서울 남영동 박종철 고문 현장도 인권침해의 상징적 장소로 보존해 일반인들에게 공개했다. 경찰서 단위로 인권교육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 들어 이 모든 노력은 원점으로 돌아갔고, 경찰은 권위주의 시대로 회귀했다. 경찰이 권력자의 수족이 아닌 국민을 보살피는 존재가 될 때 우리는 ‘국민의 국가’에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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