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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화 아닌 선거연합

등록 2012-11-03 11:59 수정 2020-05-03 04:27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지난 1년 동안 한국 정치를 흔든 ‘안철수 현상’의 주인공 안철수 후보가 대선에 출사표를 던진 지 40여 일이 지났다. 그동안 유력 후보 3명의 지지도는 부침을 거듭했다. 그간의 변화를 요약하면, 박근혜 후보는 몇 번의 위기에도 지지율을 유지한 반면 야권 후보들은 오히려 퇴보한 듯하다. 안철수 출마 선언 직후인 9월19~20일 SBS-TNS 조사에서는 야권 단일후보로 안철수 후보가 나설 경우 48.2%로 박근혜 후보에 6.2%포인트 우세, 문재인 후보가 나설 경우 42.3%로 2.6%포인트 열세였다. 한 달 뒤인 10월17~18일 같은 기관 조사에서는 안철수 후보로 단일화될 경우 47.3%를 얻어 2.6%포인트 우세, 문재인 후보로 단일화될 경우 43.2%를 얻어 4.3%포인트 열세로 나타났다. 박근혜 후보는 하락한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문재인 후보는 상승한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안철수 후보도 모호하다. 누구도 어젠다 제기 등을 통해 주도권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단일화만 되면 정권이 교체될 수 있다는 낙관론이 만연한 듯하다.

여론조사에 대한 자의적 해석이 낙관론을 조장하는 측면이 적잖다. 안철수 출마 선언 이후 실시된 여론조사 중 박근혜-안철수 양자 구도에서 안철수 후보가 열세인 조사가 한 번도 없었다. 박근혜-문재인 양자 구도를 가정할 때도 문재인 후보가 우세를 보인 조사가 종종 있었다. 이러한 결과로 야권 지지층 내에서 후보 단일화만 되면 정권 교체가 가능하다는 낙관주의가 퍼진 듯하다. 하지만 여론조사는 단순한 선호도에 불과하다. 내가 지지하는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투표장에 가는 행위와는 책임감, 무게감 차원에서 질적으로 다르다. 그래서 투표율이 중요한데, 투표율이 높은 고연령층에서 절대적 지지를 얻는 박근혜 후보가 오히려 우세하다는 시뮬레이션 분석이 나오고 있다.

여론은 흐름이 중요하다. 지난 한 달, 야권 후보들의 지지도가 답보상태 또는 다소 하락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게다가 야권 지지층의 내부 응집력도 많이 약화되고 있는 듯하다. 이는 대선 흐름에서 정치적 역동성이 약화되고 있다는 의미다. 선거에서 역동성이 약화될 경우 불리한 쪽은 변화를 추구하는 세력이고, 유리한 쪽은 현상 유지를 원하는 측이다. 거대한 변화의 에너지가 차고 넘쳐야 할 선거 공간이 답답한 공기로 고착돼 있을 때 기대를 걸었던 대중도 하나둘 지쳐 퇴장할 수 있다.

낙관론을 부추기는 또 하나의 요인은 안철수·문재인 후보 간 단일화가 이루어지면 두 후보의 지지층이 다 따라올 것이라는 가정이다. 하지만 10월16~17일 -엠브레인 조사에서 문재인·안철수 중 누구로 단일화되든 이탈률이 30%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달 전인 9월20일 조사에서는 13%-21.7%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양쪽 지지층의 화학적 결합은커녕 오히려 이질성만 더 강화되고 있다.

고착 상태가 지속되자 문재인·안철수 후보 진영 안에서 초조감이 높아지고 있다. 대선시계가 빠르게 돌아가며 후보 단일화 요구도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밀려서 하는 단일화는 야합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변화에 대한 열망을 모아내려면 후보 단일화가 아니라 선거 연합과 연대가 필요하다. 가치와 정책에 기반을 둔 연대를 통해 상호 간 차이를 존중하는 가운데 더 많은 이들이 정치의 장으로 들어오는 연대, 정치엘리트 상층에 국한된 연대가 아니라 정치 공간의 확장으로 이어질 수 있는 대중의 연대가 필요하다. 정권 교체 지상주의 아래서 다른 가치들이 무시당하지 않고 더 많은 에너지, 더 많은 열망을 포용할 수 있는 연대가 말이다.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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