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 참사를 배경으로 한 영화 이 오스트레일리아로 간다. 교민 사회의 초청으로 10월26일 상영된다. 그런데 오스트레일리아 연방경찰이 주최자를 찾아왔다. 시드니 총영사관에 재외 선거관리 임무로 파견돼 있는 강아무개 검사 영사가 “위협을 받고 있다”고 신고해 주최자에게 주의 통보를 하려고 찾아왔다는 것이다. 주최자는 외교관 보호법에 대한 설명과 경고를 받아야 했다. 강 영사는 에 목소리로 출연한 그때 그 검사다. 그는 재판 내내 철거민에 대한 집요한 혐오를 감추지 않았던 대표적 검사였다. 스스로 겁박돼 신변의 위협을 느꼈나? 맥락 없고 개연성 없는 두려움은 그가 쓴 공안의 비뚤어진 안경 때문일 것이다.
불법 사람 외침 “법을 지켜라”
이들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분명하다. 법이라는 공정한 룰에 의해, 불법 사람과 합법 사람이 가려진다. 참사의 배경이 되었던 용산에서도 철거민은 늘 불법 사람이었다. 당시 용산구청장은 철거민들을 가리켜 ‘세입자가 아닌 떼잡이들’이라고 했다. 그랬던 용산구청장이 105억원을 챙긴 용역업체와 친분이 두터웠다고 하니 누가 이권에 날아오는 떼잡이인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이토록 법을 신뢰하는 이들은 힘이 없는 존재를 혐오한다. 그래서 이들은 평범한 세입자들의 절규를 경찰특공대의 몽둥이로 진압할 수 있다. 쌍용차 노동자들을 공장 옥상 위에서 방패로 찍을 수 있다. 유성기업과 SJM에서 용역 폭력이 난무해도, 정상적 기업 활동을 위한 합법적 행위로 보호한다. 그런데 반대편에 선, 힘없는 자들에게 법은 무용지물이다. 2004년 노동부, 2010년 대법원, 2012년 또다시 대법원 판결로 불법 파견이 확인된 현대자동차 비정규직들은 아직도 불법 파견 상태다. 법 이행을 촉구한 노동자들은 오히려 감옥에 가고 해고됐다. 그런 울분을 참지 못한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 2명이 온몸에 밧줄을 감고 송전탑에 올랐다. 그들의 요구는 간결하다. “법을 지켜라.”
지난해 3월 포브스가 발표한 삼성 이건희의 재산은 9조6216억원이었다. 올해 최저임금 95만7220원을 받는 노동자가 84만 년 동안 숨만 쉬고 일하면 벌 수 있는 돈이다. 조선 역사 5천 년, 지구 역사를 다시 써야 할 차이다. 그런 차이만으로도 버거운 세상에 법조차 야무지게 편파적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머물지 않는다. 10월5일 제주도 강정을 출발한 ‘2012 생명평화 대행진’이 11월3일 서울시청 광장에 도착할 때까지 걷고 있다. ‘노동자, 구럼비, 쫓겨나는 사람이 하늘’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상경하고 있다. 그들이 만나는 사람들은 온 세상 박해받는 모든 이들이다. 송전탑 싸움 중인 경남 밀양 주민들, 대형마트로 고통당하는 중소상인, 쫓겨난 해고자, 파헤쳐진 4대강과 함께. 그들이 만난, 원전 23호기를 막으려고 고압 송전탑 건설 현장에서 싸우는 경북 청도의 할머니 말씀. “면사무소고 지서고 아무 소용 없더라. 다 한전 편만 든다. 내 오늘 면사무소 가서 고함 한번 칠 끼다. 두고 봐라. 내가 고함 치나 못 치나.” 열아홉에 청도로 시집와서 70해 동안 삼정리에서 살아온 할머니는 우박에 감 농사 다 망쳐서 할 일도 없으니 열심히 싸울 거라고 한다.
어떤 길을 갈 것인가
강 영사가 에 대처하는 방식이 있듯이 ‘두 개의 길’이 있다. 타인의 아픔 위에 디디고 서서 침묵과 외면을 선택하는 길. 빼앗긴 것을 되찾으려는 다른 길. 더 이상 목숨을 걸고, 85호 크레인과 송전탑에 오르지 않아도 되는 세상은 어떤 길일까.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어떤 길을 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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