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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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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등록 2007-12-28 00:00 수정 2020-05-03 04:25

▣ 홍기빈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

NEVER SAY DIE. 죽는 소리 마라. 당신 12월19일 저녁에 술 마셨는가? 국민들 원망했는가? 대한민국이 실망스러운가? 한국의 운명이 어찌될꼬 하면서 의 진청우(금성무)처럼 애상에 젖었는가? 혹시, 이민갈까 하는 소리까지 했는가?

온갖 감정적, 논리적 호르몬의 막가는 분출을 잠깐 누르고 돌아보자. 5년 전에는 ‘노란 바람’이 있었다. 10년 전에는 국제통화기금(IMF) 사태가 있었고, 이회창씨가 김영삼 허수아비를 불사르는 진풍경이 있었다. 그리고 15년 전에는 민자당 합당의 사생아로 나온 김영삼씨가 대통령이 되었다. 그리고 20년 전에는 온 국민이 달려들어 물과 불에 목숨을 잃어가며 만들어준 절체절명의 ‘어시스트’를 김씨 성 가진 두 양반이 죽을 쑤어 개를 준 바 있다. 그래, 별의별 일이 다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버텼고 여기까지 왔다. 그러니 007이든 747이든 대통령이 된들 별일 있겠는가. 너무 걱정하시는 것은 좀 쓸데없이 간장만 혹사하는 게 아닐까.

나태와 안일을 털어버릴 때

아니다. 근거가 있다. 사람들은 ‘우리’를 싫어한다. 50% 더하기 13% 정도가 한목소리가 되어 “꺼져라, 진보 개혁!” 하고 외친 셈이 아닌가. 이런 정도의 압도적인 숫자가 대선에 나온 적이 있었는가. 그래서 두렵다. ‘우리’는 이제 왕따가 되었고,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이참에 한 큐에 다 쓸어버리자고 막갈 기세다. 이 정도라면 지난 20년간의 파란만장한 한국 정치에서도 보지 못한 초유의 사태다. 이제 대한민국은 어디로 갈까. 나는 또 어디로 갈까. 그러니 어찌 취하지 아니하리오….

근데 잠깐 물어보자. 노무현 정권이 이라크 파병에 대연정 운운할 때 당신은 무얼 했는가? 김대중 정권이 IMF 핑계로 사방을 마구 ‘잘라’댈 때 얼마나 몸으로 버텼는가? 김영삼 정권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한다고 나댈 때는 뭐라고 할 생각이나마 했던가? 우리는 그저 코스닥에 열광했다가 부동산에 열중했다가 중국 펀드로 몰려갔다가 우리 애들 특목고 못 들어갈까봐 핏대를 올리며 살지 않았나? 그러면서 비정규직을 무시하고 시민운동을 정권의 앞잡이로 매도하며 혼자 고고한 듯 떠들지 않았는가? 그런 ‘호세월’이 얼마나 가기를 기대했던가? 이런 날이 올 줄 정말 몰랐나?

그래서 말인데, 정말 잘됐다. 이제 우리는 지난 십 몇 년간의 온갖 나태와 관성과 안일을 털어버릴 준비를 할 기회를 만났다. 흙 묻은 운동화를 털고, 잊어버릴 뻔한 소주병 쑤시는 법을 기억해내고, 보도블록을 어떻게 쓰다듬어줘야 해체되는지도 다시 떠올릴 때가 되었다. 진짜 상대를 만났다. 박근혜나 이회창이 되었다면 ‘독재자의 딸’ 어쩌고 ‘차떼기’가 어쩌고를 안주 삼아서 또 5년을 헛되이 보냈을 것이다. 정동영이 되었으면 ‘좌파 신자유주의’를 논하며 또 시대의 아이러니를 핑계 삼아 담배와 술만 작살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우리의 새 대통령은 돈을 알고 비즈니스를 알고 5년·10년짜리 계획을 세울 줄 알며, 만인을 ‘성공시대’로 몰아칠 줄 아는 분이다. ‘최선진 금융기법’도 알고 한반도를 쭉 째서 물을 흘릴 계획도 세우고 있으며 이 모든 것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자본 축적과 경제성장률로 연결되는지를 또 아는 분이다. 한마디로, 이 땅에 꼭 맞는 ‘한국형 신자유주의’ 파라다이스를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할 실행력을 가진 분으로 보인다.

5년 동안 우리는 무척 바쁠 것

나태와 안일에 젖은 우리 시민들을 위해 이보다 더 훌륭한 파트너가 어디 있을까. 당신, 지난 몇 년 혹은 몇십 년간의 우리의 늘어져 있던 삶이 오늘을 있게 한 원동력인 줄 인정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되짚어 나를 너를 우리 전체를 함께 새로 젊게 만들 에너지를 아직 느끼고 있는가. 그렇다면 무서울 게 무언가. 오히려 이렇게 말하자. 이건 최고의 기회다. “더 이상 좋을 수 없다.” 만세. ‘삶의 허무와 권태’ 따위는 우리에게 없을 것이다. 최소한 5년간 우리는 살아남으랴 개개랴 어쩌면 또 한편으로 싸우랴 무척 바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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