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온전한 주권국가가 아니다. 불구다. 남북 관계와 한-미 관계 탓이다. 과한 주장 같은가.
남북 관계부터 보자. 남과 북은 샴쌍둥이다. 하나도, 둘도 아니다. 묘한 사이다. 불편하다고, 싫다고 상대를 떼어놓으려 하다간 둘 다 죽는 수가 있다. 남과 북은 유엔에 별개의 회원국으로 가입한 국제법상 두 개의 독립된 주권국가다. 동시에 헌법에 ‘통일’을 지상 과제로 명시한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남북기본합의서 전문)다. 국가 건설 과정이 완료되지 않았다는 자기규정이다. 3년의 전쟁을 겪고 반세기 넘도록 분단을 극복하지 못한 남과 북은 서로를 ‘주적’으로 여기거나, ‘어떤 동맹국도 대신할 수 없는 한 핏줄’로 대한다. 극단을 달리는 이런 모순적 이중 관계는 한반도인들을 예외 없이 조울증에 빠뜨린다.
남은 북을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라고, 북은 남을 ‘미제의 식민지’라고 폄훼한다. 누워서 침 뱉기다. 그런데도 보수든 진보든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을 노래하며 눈물짓는다. ‘주적’ 북한과 ‘혈맹’ 미국이 맞서는 운동경기를 보며, ‘나도 모르게’ 북쪽을 응원하는 스스로를 발견하기도 한다. 보편과 이성은 교과서 속에 박제돼 있고, 특수와 감정은 살아 꿈틀댄다. 중도의 길은 좀체 열리지 않는다. 남북의 독재자들과 기득권 세력이 ‘적대적 공생’을 유지해온 역사의 비밀을 풀 실마리다. 1997년 대선을 앞둔 ‘총풍’ 사건, 1972년 7·4 공동성명 합의·발표 직후 남쪽에선 유신독재, 북쪽에선 수령제·주체사상 전일화로 정치적 피바람을 일으킨 역사는 ‘적대적 공생’의 민낯이다.
이제 한-미 관계를 보자. 미국은 한국의 유일한 동맹국이다. 한국전쟁 때 죽어가는 한국을 살렸다. 그 기억 때문인지 한국의 보수세력은 지금도 ‘우린 미국 없으면 망해요’를 입에 달고 산다. 애초 2012년에 돌려받기로 한-미 양국 정부가 공식 합의한 전시작전통제권을, 떼를 써 미국 손에 다시 쥐어준 이명박 정권의 선택은 한국 보수세력의 미국 의존 심리를 웅변한다. 주권의 핵심인 작전통제권이 없으면 온전한 주권국가로 여기지 않는 국제정치학이 한국에선 ‘듣보잡’이 된다. 경기도 평택 대추리에서, 제주 강정마을에서 한국의 경찰과 시민들이 피 터지게 싸워온 까닭 또한 ‘한국에서 미국의 특권적 지위’를 빼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
1980년대 중반 이후 한국 사회운동의 한 축을 이뤄온 ‘민족해방’(NL) 계열이 뜬금없이 하늘에서 떨어진 건 아니다. 직접적으론 1980년 5월 광주에서 자국민을 학살한 전두환 군사독재와 이를 묵인·방조한 미국의 존재, 더 깊게는 남북 관계와 한-미 관계의 불구적 본질이 자양분 구실을 해왔다. 남북 관계와 한-미 관계의 불구적 속성을 치유하지 못하는 한, ‘경기동부연합’이라 불리는 통합진보당 당권파의 이해하기 어려운 피해의식과 시대착오적 행태도, 틈만 보이면 ‘빨갱이 사냥’이라는 미친 바람을 일으켜 기득권을 강화하려는 ‘새누리-조·중·동 동맹’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안팎이 서로 맞물린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안을 밖으로 밀어내려 하기보다, 밖을 품어 안을 넓혀야 실마리가 풀린다. 힘들고 괴롭더라도 손발이 맞지 않는 파트너와 2인3각의 ‘따로 또 같이’ 걷기로 평화의 땅을 넓히는 것 말고, 이 극단의 땅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앵톨레랑스(불관용)를 멀리하고, 톨레랑스(관용)의 벗이 되려 애써야 하는 까닭이다. 오늘, 이 글을 쓰는 이유다.
이제훈 편집장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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