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1 총선에서 한국 유권자들의 54.3%는 투표권을 행사했다. 유권자의 45.7%가 불참한 선택의 결과가 새누리당 152석, 민주통합당 127석, 통합진보당 13석, 자유선진당 5석, 무소속 3석이다. 앞으로 4년, 한국의 입법부는 이 역학관계에 따라 작동한다.
의석 분포로 보면, 18대 국회에 비해 불균형이 많이 해소됐다.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의 의석수가 크게 늘었다. 야권의 약진이다. 그런데도 ‘야권의 자멸, 새누리당의 대역전승’이라는 평가가 많다. 이명박 정부 4년의 실정과 폭정에 지친 민심의 이반으로 연초만 해도 여당이 100석도 건지기 어려우리라는 전망이 많았던 사정 탓이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다. 여론조사·출구조사, 각 정당 등 어느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이변’이다. 결과적으로, 2010년 6·2 지방선거 이후 한국 정치를 뒤덮은 ‘정권심판론’의 파괴력이 이번엔 제한적이었다. 왜?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의 ‘나는 이명박과 다르다’는 주장을 유권자들이 일정하게 받아들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당명과 정강정책을 바꾸고, 경제민주화를 주장하는 김종인 전 의원과 4대강 반대 목소리를 높여온 이상돈 교수를 비대위원으로 내세워 ‘차별화’를 꾀한 박 위원장의 행보가 화장발 사기인지 진지한 변화의 노력인지, 사람마다 판단이 다를 터. 여야의 의석수만 보면, 서울 등 수도권에서는 사기라는 판단이, 호남과 제주를 제외한 비수도권에서는 ‘변화 노력’이라는 평가가 많았다고 할 수 있다. 새누리당은 수도권과 경제적 강자 중심의 발전 전략을, 야권은 지역 균형과 약자 배려의 발전 전략을 강조해온 점을 고려하면, 정치학 이론의 ‘이익 정치’에 부합하지 않는 역설적 선택이다. 수도권-비수도권 사이에 확인된 정치적 균열은 얼핏 1950~80년대 ‘여촌야도’의 재래를 연상케 한다. 일시적 현상인지 ‘박정희 향수’의 영향인지, 새로운 모종의 추세인지 깊은 고민이 필요한 대목이다.
다만 정당득표율 측면에서 보면, 4·11 총선 결과는 다르게 읽힌다. 범보수 진영과 범진보개혁 진영의 득표율이 대략 5 대 5다. 절묘한 균형이다. 12월 대선과 관련해 함의가 큰 수치다.
여야의 셈법과 별개로 4·11 총선의 과정과 결과는 한국 정치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정치적 다원성의 약화, 진영 논리의 강화가 그것이다. 1당과 2당의 의석이 전체의 93%다. 진보신당·녹색당 등 ‘미래의 가치’를 주창한 소수정당은 유권자의 외면으로 해산 뒤 재창당의 길을 걸어야 한다.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이, 정책과 비전의 경쟁이 존재감을 상실했다. 대신 상대 진영을 ‘적’으로 규정하고 죽기살기식 정치적 동원과 네거티브 캠페인이 난무했다. 그 와중에 헌정질서 파괴 범죄인 불법사찰 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망실됐다.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계속”이라는 클라우제비츠의 말처럼, 전쟁은 정치일 수 있다. 그러나 정치는 전쟁이 아니다. 전쟁은 외부의 적을 향해 동원 가능한 모든 자원을 퍼붓는다. 내부의 비판과 다원적 공존의 호소는 이적 행위로 간주된다. 정치가 전쟁을 닮아가면 민주주의는 질식한다. 이 점에서 지금 한국 정치의 추세는 위험하다.
어찌됐든 4·11 총선 결과에 담긴 유권자의 선택을 두고 옳고 그름을 따지는 건 부질없는 짓이다. 대의제를 골간으로 하는 현대 민주주의 정치체제는 주기적 선거를 통해 기존 정치를 평가하고 미래를 설계한다. 그러므로 선거의 알짬인 유권자의 선택은 언제나 옳다. 아니 옳다고 간주하는 게 대의제 민주주의의 출발점이다. 4·11 총선 결과에 담긴 민심의 갈피를 깊고 넓게 이해해 실천하는 정치세력만이 12월 대선에서 민심의 바다에 이를 수 있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이제훈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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